품주를 집사부로 고치다 ( 651년 02월(음) )

2월에 품주(稟主)183183 조주(祖主) 또는 조주(租主)라고도 하였으며, 국왕의 가신(家臣)적 기국에서 비롯되었다. 품주가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품주에 속한 최초의 관직인 전대등(典大等)이 565년(진흥왕 26)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국가의 재정을 총괄하였으나 584년(진평왕 6)에 공부(貢賦)에 관한 일을 조부(調府)로 이관하면서 재정 지출에 관한 업무만 관장하였고, 651년(진덕왕 5)에 집사부(執事部)와 창부(倉部)로 분리되면서 폐지되었다(이기백, 「품주고」 《이상백박사회갑기념논총》, 1964 |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35~140쪽).닫기집사부(執事部)184184 651년(진덕왕 5)에 품주(稟主)를 개편하여 설치된 관청으로, 왕정의 기밀 사무를 담당하였다. 집사부는 진덕왕(眞德王) 대에 왕권을 배경으로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였던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 세력이 화백회의(和白會議)와 상대등(上大等)으로 대표되는 귀족 세력과 대항하여 왕권의 전제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한 것으로 이해한다(이기백, 「신라 집사부의 성립」, 《진단학보》 25·26·27, 1964《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52~153쪽). 829년(흥덕왕 4)에 집사성(執事省)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 집사성(執事省)조 참조.닫기로 고치고 파진찬(波珍湌)185185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에서 4위의 관등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에는 해간(海干)·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기록되었다.닫기죽지(竹旨)를 집사(執事) 중시(中侍)186186 집사부(執事部)의 장관으로, 대아찬(大阿湌)에서 이찬(伊湌)까지의 진골(眞骨) 귀족이 임명되었다. 중시는 왕의 행정적인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왕권의 방파제 내지는 전위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중대(中代) 전제왕권(專制王權)의 강화·유지에 큰 기능을 하였다(이기백, 「신라 집사부의 성립」, 《진단학보》 25·26·27, 1964《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64~167쪽). 747년(경덕왕 6)에 시중(侍中)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 집사성(執事省)조 참조.닫기로 삼아 기밀사무를 관장케 하였다.

註 183
조주(祖主) 또는 조주(租主)라고도 하였으며, 국왕의 가신(家臣)적 기국에서 비롯되었다. 품주가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품주에 속한 최초의 관직인 전대등(典大等)이 565년(진흥왕 26)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국가의 재정을 총괄하였으나 584년(진평왕 6)에 공부(貢賦)에 관한 일을 조부(調府)로 이관하면서 재정 지출에 관한 업무만 관장하였고, 651년(진덕왕 5)에 집사부(執事部)와 창부(倉部)로 분리되면서 폐지되었다(이기백, 「품주고」 《이상백박사회갑기념논총》, 1964 |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35~140쪽).
註 184
651년(진덕왕 5)에 품주(稟主)를 개편하여 설치된 관청으로, 왕정의 기밀 사무를 담당하였다. 집사부는 진덕왕(眞德王) 대에 왕권을 배경으로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였던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 세력이 화백회의(和白會議)와 상대등(上大等)으로 대표되는 귀족 세력과 대항하여 왕권의 전제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한 것으로 이해한다(이기백, 「신라 집사부의 성립」, 《진단학보》 25·26·27, 1964《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52~153쪽). 829년(흥덕왕 4)에 집사성(執事省)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 집사성(執事省)조 참조.
註 185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에서 4위의 관등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에는 해간(海干)·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기록되었다.
註 186
집사부(執事部)의 장관으로, 대아찬(大阿湌)에서 이찬(伊湌)까지의 진골(眞骨) 귀족이 임명되었다. 중시는 왕의 행정적인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왕권의 방파제 내지는 전위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중대(中代) 전제왕권(專制王權)의 강화·유지에 큰 기능을 하였다(이기백, 「신라 집사부의 성립」, 《진단학보》 25·26·27, 1964《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64~167쪽). 747년(경덕왕 6)에 시중(侍中)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사기》 권38, 잡지(雜志)7, 직관(職官) 상(上) 집사성(執事省)조 참조.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직>중앙관직
색인어
이름 : 죽지,관장
관서 : 품주,집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