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戶曹判書 金華鎭이 입시하여 仁川府와 月尾島의 行宮 修改하는 일에 대해 논의함  
연월일정조 3년 1779년 04월26일(음)
◯ 같은 날 입시했을 때 호조판서 김화진(金華鎭)이 아뢰기를,
“인천부(仁川府)의 행궁과 영종진(永宗鎭) 월미도(月尾島)의 행궁에 본조(本曹)의 낭청을 보내 적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방관이 전례에 따라 거행할 일이라서 본조에서 고침으로써 전에 없는 폐단을 만드는 것은 부당합니다. 고칠 때가 되어 각읍(各邑) 공해(公廨)를 다시 짓는 일을 비국(備局)에 보고하면 물력(物力)을 보태주는 예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 예를 따라 거행하도록 해읍과 해진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리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