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연월일1950년 9월 15일  
출전부산일보 1950년 09월 17일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인천부근에서 하이트, 밀로스 특파원 16일발 AP 대한] 연합군 해병대와 보병대는 15일 대거 인천 해안에 上港하여 괴뢰군 수중의 대항구이며 연합군 전선까지의 敵보급선의 중심인 인천을 공격하였다. 일대수육 양면 작전을 계획한 맥아더장군은 이 지방 해안을 시찰한 다음 상륙을 진두 지휘하였다.
[인천 앞바다 해상에서 UP 뽀주 특파원 15일발 대한] 미해병대의 인천상륙의 지휘에 당한 기수에는 맥원수가 □□하여 작전을 시찰하고 있었다. 해병대의 상륙작전은 15일 새벽부터 개시되어 처음 월미도를 탈취, 계속하여 상오 5시 30분 인천 공격으로 나간 것이다.
▹ 돌입 30분 후에 2哩 전진!
[인천해안에서 벨만모린 특파원 16일발 AP 대한] 강력한 연합군 해병대와 보병대는 15일 인천시에 돌입하고 최초의 30 분 간에 약 2리 주요 시가를 전진하였으나 그들은 은폐된 적의 대포진지로부터 맹렬한 포격 하에 해안을 건너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연합군 함대는 아군전방에 군포격을 가하고 최후의 비행기는 때를 지어 괴뢰군 진지에 로켓트탄을 비오듯 퍼부었다. 흐린 하늘 밑에 흑갈색 포연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이 올라가 구름과 엉키었다. 이 무렵 가는 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하며 연합군은 상륙을 개시하였다.
상륙은 월미도공격으로부터 그 제1보를 내딛었다. 월미도는 해병대에 의하여 반시간의 교전 끝에 유린되었으며 공고하게 장비 된 同島는 인천항에 입구를 鳥望할 수 있는 동시에 항구설비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나 상륙에 2일 앞서 순양함 6척과 구축함 4척의 연합군 함대가 이 월미도의 방어에 함포 사격을 가하였던 것이다. 상오 6시 30분 해병대는 무시할 만한 손해로 앞을 다투어 상륙하고 3·4분 후에 월미도 마루에 UN기를 세웠다. 기는 인천시를 눈앞에 보며 최고소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동도 완전 상륙의 보고였던 것이다. 이것을 본 맥아더장군은 각 함선에게 다음과 같이 찬양방송을 하였다. “해병대는 오늘 아침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해병대가 상륙하니 해안은 함포사격과 포격에 의하여 산산이 부서져 있었으며 동 제1선 해병대가 破碎된 해안을 지나간 불과 15분도 못되어 전차가 행동하고 있었다.
▹ 서울 16粁에 육박 김포비행장과 시가도 점령
[대구에서 15일발 로이타 지급보 대한] 연합군 지상부대는 15일 김포시가 及 비행장을 점령 서울 16천 지점에 切迫하였다.

부산일보 1950년 09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