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창이 반란을 일으키다 ( 822년 03월(음) )

3월에 웅천주(熊川州) 도독 헌창(憲昌)이 아버지 주원(周元)이 왕이 되지 못함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國號)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세워 경운(慶雲) 원년이라 하였다. 무진(武珍), 완산(完山), 청주(菁州), 사벌(沙伐)의 4개 주 도독과 국원경(國原京), 서원경(西原京), 금관경(金官京)의 사신(仕臣), 여러 군현의 수령을 협박해 자기 소속으로 삼았다. 청주도독 향영(向榮)은 몸을 빼 추화군(推火郡)203203 현재의 경남 밀양지방이다. 경덕왕대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명되었는데, 여기서는 개명되기 전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2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군의 옛 이름이다. 이재호, 《삼국사기》 1, 솔, 1997, p384 밀성군(密城郡)은 본래 추화군(推火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다섯이었다. 상약현(尙藥縣)은 본래 서화현(西火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영산현(靈山縣)이다. 밀진현(密津縣)은 본래 추포현(推浦縣) 또는 죽산(竹山)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오구산현(烏丘山縣)은 본래 오야산현(烏也山縣) 또는 구도(仇道) 또는 오례산(烏禮山)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 형산현(荊山縣)은 본래 경산현(驚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 소산현(蘇山縣)은 본래 솔이산현(率已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삼국사기》 권제34, 지리 1, 신라 양주 밀성군)닫기으로 달아났고, 한산주(漢山州), 우두주(牛頭州), 삽량주(歃良州), 패강진(浿江鎭), 북원경(北原京) 등은 헌창의 역모 사실을 미리 알고 병사를 일으켜 스스로 수비하였다.


註 203
현재의 경남 밀양지방이다. 경덕왕대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명되었는데, 여기서는 개명되기 전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2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군의 옛 이름이다. 이재호, 《삼국사기》 1, 솔, 1997, p384 밀성군(密城郡)은 본래 추화군(推火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다섯이었다. 상약현(尙藥縣)은 본래 서화현(西火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영산현(靈山縣)이다. 밀진현(密津縣)은 본래 추포현(推浦縣) 또는 죽산(竹山)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오구산현(烏丘山縣)은 본래 오야산현(烏也山縣) 또는 구도(仇道) 또는 오례산(烏禮山)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 형산현(荊山縣)은 본래 경산현(驚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 소산현(蘇山縣)은 본래 솔이산현(率已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청도군(淸道郡)에 합쳐져 속하였다.(《삼국사기》 권제34, 지리 1, 신라 양주 밀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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