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를 돌이키다 ( 661년 04월19일(음) )

여름 4월 19일에 군사를 돌이켰는데, 대당(大幢)과 서당(誓幢)이 먼저 가고 하주(下州)의 군사는 맨 뒤에 가게 되었다. 빈골양(賓骨壤)361361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지역이다.닫기에 이르러 백제의 군사를 만나 서로 싸웠지만 패하여 물러났다. 죽은 사람은 비록 적었으나 병기(兵器)와 짐수레를 잃어버린 것이 매우 많았다. 상주(上州)와 낭당(郎幢)은 각산(角山)362362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부근의 지명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1쪽 주 260) 참조). 《삼국사기》 권37, 잡지(雜志)6, 지리(地理)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삼국사기》 권27, 백제본기5 무왕(武王) 6년 2월조에 ‘각산성(角山城)’이라는 기록이 있다.닫기에서 적을 만났으나 진격하여 이기고, 드디어 백제의 진지에 들어가서 2천 명의 목을 베었다. 왕은 군대가 패배하였음을 듣고 크게 놀라서 장군(將軍) 금순(金純)363363 금순(金純)은 흠순(欽純)의 오기(誤記)이고,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6 의자왕(義慈王) 20년조 이후 백제 부흥운동에 관한 기사 중에 나오는 신라 장군 김흠(金欽)을 김흠순(金欽純)과 같은 인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닫기·진흠(眞欽)364364 661년(무열왕 8)에 이찬(伊湌)으로서 장군이 되어 사비성(泗沘城)의 구원에 참전하였으며, 같은 해인 문무왕(文武王) 원년 7월에 하주총관(下州摠管)이 되었으나 662년 8월에 대당총관(大幢摠管) 진주(眞珠)과 함께 병을 핑계로 나라 일을 소홀히 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고, 그 일족까지 멸하였다.닫기·천존(天存)·죽지(竹旨)를 보내서 군사를 증원하여 구원케 하였으나 가시혜진(加尸兮津)365365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나루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 《삼국사기》 권42, 열전(列傳)2 김유신전(金庾信傳) 중(中)에는 ‘가혜성(加兮城)’ 또는 ‘가혜진(加兮津)으로 기록되었다.닫기에 이르러서 군대가 물러나 가소천(加召川)366366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가천(加川)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닫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이에 돌아왔다. 왕이 여러 장수들이 싸움에서 패배하였으므로 벌을 논하였는데, 각기 차등있게 하였다.

註 361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지역이다.
註 362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부근의 지명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1쪽 주 260) 참조). 《삼국사기》 권37, 잡지(雜志)6, 지리(地理)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삼국사기》 권27, 백제본기5 무왕(武王) 6년 2월조에 ‘각산성(角山城)’이라는 기록이 있다.
註 363
금순(金純)은 흠순(欽純)의 오기(誤記)이고,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6 의자왕(義慈王) 20년조 이후 백제 부흥운동에 관한 기사 중에 나오는 신라 장군 김흠(金欽)을 김흠순(金欽純)과 같은 인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
註 364
661년(무열왕 8)에 이찬(伊湌)으로서 장군이 되어 사비성(泗沘城)의 구원에 참전하였으며, 같은 해인 문무왕(文武王) 원년 7월에 하주총관(下州摠管)이 되었으나 662년 8월에 대당총관(大幢摠管) 진주(眞珠)과 함께 병을 핑계로 나라 일을 소홀히 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고, 그 일족까지 멸하였다.
註 365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나루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 《삼국사기》 권42, 열전(列傳)2 김유신전(金庾信傳) 중(中)에는 ‘가혜성(加兮城)’ 또는 ‘가혜진(加兮津)으로 기록되었다.
註 366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가천(加川)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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