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정을 상대등으로 삼고, 김명을 시중으로 삼다 ( 835년 02월(음) )

10년(835년) 봄 2월에 아찬 김균정(金均貞)273273 김균정(金均貞)은 애장왕 3년(802)에 이미 대아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김균정이 ‘아찬(阿湌)’으로서 상대등이 되었다고 한 것은 《삼국사기》의 잘못이라 하겠다. 한편 상대등에 보임될 수 있는 관등은, 시중과 병부령 등과 비교해 볼 때, 아마 대아찬 이상이었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쪽)닫기에게 벼슬을 내려 상대등으로 삼았다. 시중 우징(祐徵)이 아버지 균정이 재상이 되었음을 이유로 표를 올려 사직을 구하여, 대아찬 김명(金明)274274 흥덕왕의 아우인 충공(忠恭)의 아들로, 흥덕왕이 죽은 후 왕위쟁탈전에서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과 함께 자신의 매부인 김제륭(金悌隆)을 희강왕으로 즉위시켰다. 김명(金明)은 희강왕의 즉위와 동시에 상대등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고 838년 1월에 희강왕을 핍박하여 자살케 한 후 자신이 22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민애왕이다. 그러나 1년만에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김우징(金祐徵), 김양(金陽) 등에게 시해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쪽)닫기을 시중으로 삼았다.

註 273
김균정(金均貞)은 애장왕 3년(802)에 이미 대아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김균정이 ‘아찬(阿湌)’으로서 상대등이 되었다고 한 것은 《삼국사기》의 잘못이라 하겠다. 한편 상대등에 보임될 수 있는 관등은, 시중과 병부령 등과 비교해 볼 때, 아마 대아찬 이상이었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쪽)
註 274
흥덕왕의 아우인 충공(忠恭)의 아들로, 흥덕왕이 죽은 후 왕위쟁탈전에서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과 함께 자신의 매부인 김제륭(金悌隆)을 희강왕으로 즉위시켰다. 김명(金明)은 희강왕의 즉위와 동시에 상대등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고 838년 1월에 희강왕을 핍박하여 자살케 한 후 자신이 22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민애왕이다. 그러나 1년만에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김우징(金祐徵), 김양(金陽) 등에게 시해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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