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대리공사의 수행원 곤도 마스키, 제물포나 월미도를 임시로 개항할 것을 요청하는 서계를 보내옴
연월일고종 16년(1879년, 淸 德宗 光緖 5年, 日本 明治 12年) 5월 25일  
대리공사 수행원이 제물포(濟物浦)나 월미도(月尾島)를 임시로 개항할 것을 억지로 청하는 서계(書契)
인천(仁川)을 개항하는 일에 대해서 귀 정부에서 말씀하시기를 지역이 경성(京城)과 가까워 인심이 불안해하고 있어 실로 사세가 난처하며, 강화(江華)·부평(富平)·남양(南陽)·수원(水原) 네 고을도 또한 같다고 하시었고, 전라도와 충청도 두 도에서는 아직 마땅한 좋은 항구가 없으니 다시 찾아보기 바란다고 하신 것이 합하(閤下)께서 매번 우리 공사를 만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릇 우리 정부에서 측량선을 파견하여 전라도·충청도·경기도 세 도의 해안을 탐색해온 것이 지금까지 3년인데, 전라도와 충청도에는 좋은 항구가 없고 오직 인천만이 그나마 통상에 편리하다고 하여 그곳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귀 정부에서는 인심 때문이라고 하며 사양하시면서 강화 등 다섯 고을도 아울러 거절하시려고 합니다. 생각하건대 경기도 해안에서 이 다섯 고을을 제외하면 그밖에는 하나의 해만(海灣)도 있지 않으니, 귀 정부의 뜻은 오직 경기도에 개항하는 것을 거절하려는 데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조규(條規) 제5관에 실려 있기를 5도 가운데 통상하기 편한 항구를 택하기로 하였으니 경기도에서 개항하는 것은 병자년 2월에 이미 인준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거절하고 있으니 식언에 가까우며, 하물며 이미 좋은 항구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 전라도와 충청도에 다시 가서 찾아보라고 하시는 것은 그를 배척하겠다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도리가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양국의 교제를 유지함에는 변통(變通)하는 도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공사가 일찍이 제물포(濟物浦), 혹은 월미도(月尾島)를 임시로 개항하자고 했던 까닭입니다.
지금 귀 정부에서 인심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핑계로 삼는 것은 비단 체면을 잃는 것일 뿐만 아니라 조규의 본뜻을 어기는 것 역시 큽니다. 무릇 나라에 정부가 있는 것은 그 백성을 통할하기 위함이니, 그런 까닭에 정부가 명령하는 것을 백성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귀 정부에서 조규를 강정하면서 개항과 통상(通商), 화친(和親)의 도리로 하였습니다. 4년 동안 실천하면서 교제하는 정분은 날마다 두터워지고 민심이 돌아간 바가 이미 이와 같습니다. 가령 불행히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백성이 있다면 일깨우고 선도하여야 하는 것이 귀 정부의 책임입니다. 큰 원망을 품은 불령한 무리가 있지 않고서야 천하만국에 그 정부를 받들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귀 정부에서 이를 핑계로 삼는 것은 정화(政化)가 미치지 않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니 누구인들 양해할 수 있겠습니까. 합하(閤下)께서 또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인심을 잃어 경기도에서 개항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하늘의 뜻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었는데, 그렇다면 병자년의 약조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이러한 말은 모두 정부의 체면을 잃는 것이니 합하께서 어찌 그렇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말씀하시기를 전라도와 충청도의 해안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신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과연 좋은 항구를 얻을 수 없다면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임시로 제물포나 혹은 월미도를 개항하여 우리 공사의 말처럼 한다면 가령 다른 해에 항구를 옮기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조약의 뜻은 대체로 시행되어 교제함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것이 부득이하다면 먼저 정한 그 땅에 대해서 개항하는 기한을 며칠 늦추고서 인심을 깨우치는 방안은 어떻겠습니까. 의논이 서로 대치하고 정의는 점점 막혀간다면 재앙의 단서가 그에 따라 열릴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근심되는 일입니다. 합하께서는 고명하신 뜻으로 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메이지(明治) 12년 7월 14일
대리공사(代理公使) 수행원 곤도 마스키(近藤眞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