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인천 개항에 관해 과거 회의했던 취지를 송부하며 회답을 요청함(花房義質→예조 판서 沈舜澤)
연월일고종 16년(1879년, 淸 德宗 光緖 5年, 日本 明治 12年) 6월 14일  
발신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수신심순택(沈舜澤)
인천(仁川) 개항에 관한 회의 취지 송부와 회답 요구
[발신] 일본 대리공사(代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수신] 예조 판서(禮曹判書) 심순택(沈舜澤)
고종 16년 6월 14일
서기 1879년 8월 1일
본론만 말씀드립니다. 본관은 일찍이 개항을 연기하는 약조안을 기초하면서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였으나, 귀 정부에서는 도리어 이전의 논의를 고집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27일 회의에서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답에서 또한 이전 논의를 고집하고 있으니 더욱 조규(條規)의 본뜻을 잃는 것임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에 양일의 회의 취지를 기록하여 귀 정부에 제공하여 참고하시게 하니, 다시 숙고해주시고 회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올립니다.
메이지(明治) 12년 8월 1일
대리공사(代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예조 판서(禮曹判書) 심순택(沈舜澤) 합하(閤下)

부록 1. 서해안 개항에 관한 회의 취지
7월 27일 회의 취지
귀국 서해안을 개항하는 일은 우리 정부에서 연년 탐색하고 있으나 좋은 항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경기도 인천(仁川) 한 곳이 통상하기에 조금 편리하여 일찍이 그곳을 지정하였는데 귀 정부에서는 인심이 불안해하고 사세가 불편하다는 것을 핑계로 경기도 해안과 더불어 그곳을 사절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규(條規) 제5관에 경기도 운운하며 명백한 글이 실려 있는데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으니 이치상 약속을 위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귀 정부에서 혹은 사리를 오해하고 계신 것이 아닌지 진실로 우려됩니다. 그런 까닭에 일찍이 귀국에서 불편하다고 하시는 항목들을 시험삼아 들어 하나하나 변론하여 깨달으시고서 약속에 부합하실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귀 정부에서는 오히려 이전의 말을 한층 더 강하게 하시면서 명확한 답을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본관은 양쪽의 의논이 서로 대치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연기할 것을 약정하는 안건을 기초하여 말씀드리기를, 조선 정부에서는 인심을 깨우치는 데 힘쓰고,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좋은 항구를 탐색하여 대신할 만한 곳이 있으면 대신하고, 없으면 끝내 인천으로 충당하자고 하였으니, 그 뜻은 양쪽에 모두 편한 방법을 찾자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 정부에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시고 설사 허락한다 하더라도 대소의 인심이 크게 놀라 분명히 의외의 근심이 생길 것이라고까지 하시었습니다.
20개월 후도 바로 오늘이고, 7년간도 또한 오늘입니다. 허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모든 일은 마땅히 경과를 따라야 하며 임시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강제할 수 없는 것을 강제하거나 책망해서는 안 될 것을 책망한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 말과 같다면 장차 조약은 어디에 둘 것입니까. 수호조규는 본래 양국의 협의로 이루어진 것이고 주상(主上)의 비준(批准)을 거친 것입니다. 경기의 개항이 다른 네 도와 다름없다면 그 좋은 항구가 있는 곳으로 지정하는 것은 진실로 이의를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 정부에서 갑자기 말씀하시기를 허락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무릇 그것을 약속한 것이 협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 또한 협의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한 개 도를 제외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경과에 대해 논의한다면 조규는 양국이 교제하는 큰 경과이니 이미 사의가 경과를 거쳤음을 알 수 있는데 오히려 또한 그것을 거절하면서 약속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의외의 근심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건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진정시키고 그것을 제어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인 것입니다. 만약 불량하고 경화된 백성이 효유를 해도 듣지 않으며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키면 마땅히 형법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귀국 정부가 형법을 놔두고 죄를 묻지 않으면서 약조를 지킬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인심만을 걱정한다면 이는 불량한 백성을 풀어두는 것으로 멋대로 횡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인들 개탄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귀 정부에서 조약을 보호할 힘이 없다고 하신다면 이는 비단 귀국의 근심일 뿐만이 아니니, 본관은 우리 정부에서 힘을 합쳐 보호하고 지켜내겠다고 한다면 또한 감히 사양하실 수 없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양국의 사무는 약속을 따르고 정의(情誼)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일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강요한다고 하거나 책망한다고 하는 것은 무고가 아니라면 망령된 것이니 본관이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부록 2. 서해안 개항 연기 약조안의 회의 취지
8월 1일 회의 취지
개항 연기 약조안의 논의에 대해 귀 정부에서는 전라도와 충청도 또한 다섯 도 가운데 있으니 가령 경기도 한 도를 제외하더라도 또한 약속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었는데, 어찌 이렇게 심하게 기만하시는 것입니까. 수호조규(修好條規)는 본래 양국의 협의로 이루어진 것이며 주상의 비준(批准)을 거친 것이니, 한 나라가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관은 누차 지킬 것을 논하였던 것인데 귀 정부에서는 살피지 않으시고 마음대로 경기 한 도를 제외하시면서 그것이 약속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삼남(三南)은 땅이 넓은데 어찌 좋은 항구가 하나도 없겠느냐고 하십니다. 본관이 이에 말씀드리기를 다른 도를 탐색해보아서 구할 수 있으면 그곳으로 대신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끝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문의한 것이 지금까지 여러 번이었는데 이전의 말씀을 거듭하실 뿐 한 마디도 명쾌한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양국이 사안을 의논하는 것은 본래 이치를 미루고 의리를 다하여 유감이 없게 하도록 힘써야 할 것인데 접대함이 이와 같으니 사신의 왕래 또한 유익함이 없겠으며 조약은 위배될 수 있어 오랫동안 서로 합의하고자 했던 것도 다시 무위가 되었으니, 양국이 어찌 이렇게 되기를 원하였겠습니까. 본관이 받은 명이 중하니 부득불 귀 정부에 이에 대해 질의합니다.

출전    ㆍ『舊韓國外交文書』 1, 日案 1, 고종 16년 6월 14일, 문서번호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