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인천 개항을 강하게 주장하는 서계를 다시 보내옴(花房義質→예조)
연월일고종 16년(1879년, 淸 德宗 光緖 5年, 日本 明治 12年) 7월 1일  
발신花房義質
수신예조
대리공사(代理公使)의 재차 답장
귀 정부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천(仁川)을 개항하는 것은 사세에 불편하다고 하시었기에 본관은 일찍이 말씀드리기를 반드시 그러한 까닭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문의하였더니 27일에 이르러 귀 정부의 말씀을 들었는데, 인천은 서울과 매우 가까워 특별히 방어해야 하는데 상업의 이익으로써 군무에 방해가 있을 수 없다고 하시었으니, 비로소 귀 정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23일에 예조 판서(禮曹判書)께 서계(書契)를 보내어 말씀드리기를, 통상의 땅은 반드시 무비(武備)가 필요하며 상민들이 본업을 편안히 하고 있다는 것을 구실로 삼는다면 군비(軍備)를 갖출 수 있으며 무역으로 이익을 얻는 것도 창성하게 될 것이라는 이치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요코하마(橫濱)가 도쿄(東京)에 있어서, 고베(神戶)가 오사카(大坂)에 있어서 요해처[咽吭]라고 칭해지고 있으며, 선박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으면서도 상업의 이익이 군무를 방해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귀 정부에서 이미 말씀하시기를, 가령 남양(南陽)이나 교동(喬桐)에 항구를 설치하면 설비가 거듭되어야 한다고 하시었는데, 교동이나 남양이 오히려 그러하다면 가장 가까운 인천에 설치한다면 그 이익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미 개항이 군비에 유익함을 알고서도 오히려 또한 방어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니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무릇 방수(防守)라는 것은 적국의 외환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귀 정부는 장차 우방(友邦)에 대비하시겠다는 것이니 누구인들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는 본관이 귀 정부에서 말씀하신 사세에 분명 불편함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상세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연기하는 약조안을 기초하여 변통(變通)하고자 힘쓰며 협의할 것을 도모하였습니다. 지금 귀하의 말씀을 들어보니 조금도 귀국에 불편함이 있지 않으니 곧바로 인천으로 하여 개항하는 것이 또한 무엇이 해가 되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본관이 기초한 약조안의 뜻은 양국이 모두 편안한 쪽을 도모해보자는 데에 있었으니 귀 정부에서 과연 상의해보고자 하신다면 이는 본관이 본디 소망하던 바이고, 장차 끝내 거절하신다면 화목함을 닦는 도리가 아니게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오늘의 논의는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답장을 청합니다.
메이지(明治) 12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