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인천 개항 교섭 경과를 외무경에게 보고함
연월일고종 17년(1880년, 淸 德宗 光緖 6年, 日本 明治 13年) 12월 7일  
인천 개항에 관한 건
부속서 1. 명치(明治) 13년 12월 31일자 윤자승 예조판서에게 보낸 공사 서한
2. 경진(庚辰) 12월 초일일자 윤자승 예조판서의 답장
3. 1월 4일 하나부사(花房) 공사와 예조참판 김홍집과의 대화
공신(公信)제5호
인천 개항 일건(一件)(제1회)
국서(國書)를 봉정(奉呈)한 일 단계가 끝나고 주차론(駐箚論; 공사의 駐京)도 아울러 마무리 지었으므로 인천 개항 담판으로 넘어가려 했는데, 마침 세밑이라서 별지 ‘이(イ)’호와 같이 12월 31일에 조회하고 ‘로(ロ)’호와 같은 회답이 있은 정도입니다.
신년의 3일을 보내고 3일 오후에 김굉집(金宏集)을 만나 “예조판서 자신이 말해야 하지만 참판은 차관(次官)이고 게다가 특별히 강수관(講修官)으로 일본 공사와 토론하여 강수(講修)하도록 명을 받고, 또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왔기에 특별히 이 일을 담당할 까닭도 있으므로, 일에 지장이 없는 한 감히 그와 상의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진술하고 내일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곧 1월 4일 김굉집이 내관(來館)하여 담판했는데, 별지 ‘하(ハ)’호와 같습니다. 그 후 오늘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부산에서 보낸 파발(조선인)이 돌아가는 기회에 급히 이를 상신합니다. 나머지는 나중의 서신으로 차례차례 상신하겠습니다. 경구(敬具)
명치(明治) 14년(1881) 1월 6일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韾) 님
(부속서 1) 이(イ)호
간략히 아룁니다. 인천 개항을 논의하는 일이 몇 년 동안 결정되지 않아, 이번에 본 사신이 단서를 찾아서 그 일을 종결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언제 만나서 상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짜를 정하여 알려주시길 청합니다. 경구(敬具).
명치(明治) 13년 12월 31일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예조판서 윤자승(尹滋承) 합하(閤下)
(부속서 2) 로(ロ)호
회답합니다. 삼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강수관(講修官)에게 왕복하고 강수관이 정부에 대신 품의해서 상확(商確)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경구(敬具).
경진(庚辰) 12월 초일일
예조판서 윤자승 인(印)
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합하
(부속서 3) 하(ハ)호
명치(明治) 14년 1월 4일, 강수관 예조참판 김굉집이 내관(來館)하여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대화
낭청(郞廳) 이조연(李祖淵), 전 판찰관(辦察官) 현석운(玄昔運), 이시와타 테이(石幡貞) 배석. 아라카와 도쿠지(荒川德滋) 통역
인천 개항 일건 담판(제1회)
공사: 인천 개항과 관련하여 작년에 귀 정부에서 이의를 제기하신 취지는 자세히 우리 정부에 주장하고 평의(評議)를 다하였지만, 남양(南陽)과 교동(喬桐) 모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 밖에 근기(近畿)에는 적당한 항구가 없습니다. 만약 남양에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해만(海灣)이 있어 조선 정부가 지정해준다면, 다시 그 현장을 탐색하여 적부를 정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천 외에 달리 개항할 곳이 없습니다.
오직 인천을 여는 데 장애가 없도록 숙의(熟議)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인천을 열면 이롭지 해롭지 않다는 따위는 작년에 본 사신이 논할 바를 이미 다 논했습니다. 지금 다시 중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하니 귀 정부에서 숙고하여 속히 동의해주시는 회답을 얻어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병자년(1876)에 조약을 체결한 이래 이미 6년이 지나도록 개항 문제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한탄할 일이 아닙니까?
강수관: 인천 개항 건은 지난해부터 귀 정부에서 바라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인심이 화합하지 못해 정부에서 상의한 후 이미 각하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또 졸자(拙者)가 저번 도쿄에서도 대략 그런 뜻으로 답변해두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몹시 바라는 것처럼 삼남(三南) 및 남양과 교동 중에서 적당한 곳을 선택하여 정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또 인천 얘기를 다시 꺼내니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본디 양국의 대사라 저 혼자의 견해로 답변할 것이 아닙니다. 또 그 난이(難易)와 이해(利害) 같은 것은 서로가 이미 작년에 다 논의했으므로, 이번에는 다만 귀국 정부에서 여전히 인천을 열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을 가지고 돈독히 조정에서 논의하고, 그런 후에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위의 대답이 끝나고 강수관이 “오늘 할 얘기는 이것뿐입니까?”라고 물었기 때문에, “다른 일은 다른 날을 기약하고 오늘은 이 한 가지에 그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다시 강수관이 묻기를 “공사(公事)는 공사라 하더라도, 일찍이 우리 두 사람은 소교(素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맑고 순결한 교유)가 있으니 사교(私交) 관계로 들어주길 원하는 일이 하나있습니다. 친밀한 정담(情談)이라 생각하고 들어줄 수 있습니까?”라고 하므로, “무엇인들 못 들어주겠습니까. 오직 속마음을 토로하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사설(辭說)이 매우 길어지는 중에 이조연(李祖淵)과 현석운(玄昔運)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으로 피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꺼려하는 것으로 보여 공사도 이시와타(石幡)를 눈짓으로 피하게 했는데 여전히 사설을 길게 얘기한 후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었다.
강수관: 국서 왕래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찍이 이의가 있었지만 저번에 거행하여 일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양국의 경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국서를 접수한 이상 공사 주차에 대해 다시 이의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조야의 의론(議論)이 자못 시끄러워 걸핏하면 돌을 던지는 난폭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지하려 해도 제지하기 어려워 걱정입니다.
귀국이 개항한 초기를 되돌아보면 일단 에도(江戶)에 주차한 각국 공사도 피하여 요코하마(橫濱)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한성(漢城)도 지금부터 각하가 바로 주차하면 실로 조야의 의론을 제지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게다가 일본 공사의 주경(駐京)을 명분으로 각국 모두 입경을 원하면 일이 매우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감히 일본 공사를 배척하려 하는 말이 아닙니다만, 주차시기를 늦추어주길 바랍니다. 원컨대 좋은 계책이 있기를 바랍니다.
공사: 귀 정부가 걱정하심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조야의 의론이 시끄러운 것도 필시 그러할 겁니다. 우리 정부도 귀국이 과연 이러할 것임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차가 매우 중요함은 몇 년 동안 본 사신이 상세히 논한 바로, 오늘날과 같이 화란(禍亂)이 초미에 닥친 때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귀국 의론이 하나로 정해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국서를 보내고 주차를 명받은 것입니다.  구미(歐美) 몇 나라가 작년엔 우리 정부를 경유하여 사신을 귀국에 보내려 했지만, 귀국은 물리치고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도 저들이 바로 귀경(貴京)에 가지 않도록 부산에서 조치하려 했지만, 귀 정부는 우리의 호의도 아울러 물리쳤기 때문에, 벌써 올해는 저들도 우리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귀경에 갈 기세입니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러시아[魯西亞]도 작년 중에는 귀국에 갈 것이라고 구미 각국이 지목한 바였는데, 지금까지 그 일이 없는 것은 우리 정부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꺼렸기 때문임은 러시아 공사가 일찍이 우리 외무경에게 말한 것입니다. 또 그 수사제독(水師提督)이 본 사신에게 말한 적이 있으니 분명합니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이러한 때에 즈음하여, 귀국의 내정(內情)을 참작한다고 하여 일본 공사가 헛되이 도쿄에 가만히 않아 있으면, 각국은 바로 일본을 경유하지 않고 귀경에 가서 그 바라는 바를 이루려할 것입니다. 러시아도 일본이 이와 같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꺼리는 바가 있어 질질 끌 리가 있겠습니까.
본 사신은 아직 귀국의 묘모(廟謨; 조정에서 세우는 국가 대사에 관한 계책)에 참여할 수 없지만, 이미 주차하여 귀경에 있으면 각국의 사신이 배를 타고 와서 귀경으로 나아가더라도 다소 도움을 주는 바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귀국의 부동의(不同意)를 알면서도 주차를 명받은 까닭입니다.
이들 일은 원래 영의정 각하께 특별히 면회를 요청하여 친밀하게 얘기하라고 명받은 것이지만, 오늘 서로 흉금을 열고 얘기하니 이 일만 숨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각하께 고하는 것입니다. 다시 영상 각하께 고하는 것은 자연히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와 같은 밀담(密談)이 세간에 누설되어 잘못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은 가장 꺼리고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지극히 신중해야 합니다.
강수관: 귀 정부의 마음 씀이 이처럼 주밀(周密)하고, 각국의 형세가 이처럼 절박함을 들었으니 우리 정부에서도 돈독하게 논의를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에 제의할 사정도 있으므로 다른 것은 후일을 기약하겠습니다.
위의 대화와 응답은 십 수회에 미쳤지만 그 요점만을 기록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부사 요시모토 기록

출전    · 『日本外交文書』 14, 문서번호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