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인천 개항에 대한 담판에 대한 내용을 보고함
연월일고종 18년(1881년, 淸 德宗 光緖 7年, 日本 明治 14年) 1월 22일  
인천개항 담판에 관한 건
부속서(附屬書) 2월 18일 인천개항 담판 대의(大意)
인천개항 일건에 대한 담판은 몇 차례 진행되었지만 똑같은 말뿐이라서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8일의 담판 때 “일찍이 15개월이라 한 것은 본 사신이 받은 훈령에서 정한 기한이기 때문에 가령 사정을 참작하여 특별히 연기를 도모하여도 내년을 넘길 수는 없다”라고 명시(明示)해둔 취지는 지난 10일자 별신(別信) 제2호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 10일이 지나더라도 아무런 통보도 없어 지난 18일에 강수관(講修官)을 방문하여 재촉하였습니다. 그때 담판한 대의(大意)는 별지(인천개항 일건 담판 제5회)처럼 내년 안으로 개항에 착수하는 것을 넌지시 승낙하는 어투가 분명하였습니다.
위의 담판 중에 미곡수출 금지의 건이 있어 숙고했습니다. 원래 경기도는 쌀 생산이 많지 않아 멀리 충청·전라·경상도에서 운수(運輸)하는 것에 의지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가령 금지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격은 현재 부산의 시세에 비하면 3, 4할이나 저렴하기 때문에 이것의 수출을 허용하면 그 가격이 갑자기 등귀(騰貴)하여 경성의 수많은 빈민들을 풍년이 들어도 기아로 울게 할 것입니다. 끝내 빈민과 부자 사이에 쟁투(爭鬪)를 일으키고, 따라서 일본 영사(領事)와 지방관 사이의 쟁론(爭論)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필경 결원(結怨; 서로 원수가 되거나 원한을 품음)하는 일이 많아질 뿐입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겨우 몇 만석의 쌀을 산다고 하더라도 대계(大計)로 득실을 따지면 손해일 뿐만 아니라 이는 양국 교제의 본뜻과도 어긋납니다.
또한 인천항은 견포류(絹布類)·일용품류·기물류(器物類)의 매입이 많을 것이고, 우피(牛皮)·우골(牛骨)·비단류를 다량으로 수출할 것입니다. 특히 얼음덩이 같은 것은 차차 제조법을 개발하면 아마 수출이 성대할 것입니다. 이를 남쪽 바다의 여러 항구로 운반할 수 있다면 번듯한 장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미곡수출 금지는 인천항에 한해서 들어주시도록 품의할 생각으로 말을 누그러뜨려 대답해두었는데, 김굉집이 갑자기 부산도 똑같이 금지할 생각이라고 얘기하므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엄하게 거절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일단 담판할 것입니다. 그 때 인천에 한해서 얘기하면 미곡수출 금지를 들어줄 심산이고 인천개항 기한의 약정안을 협의한 다음 다시 품의를 거쳐 결정할 생각입니다. 미정이지만 부산까지 돌아가는 파발 편이 있어 우선 근황을 이와 같이 보고합니다. 경구(敬具)
명치(明治) 14년 2월 20일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님
(후략)

출전    · 『日本外交文書』 14, 문서번호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