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인천 개항에 대한 담판에 대한 내용을 보고함
연월일고종 18년(1881년, 淸 德宗 光緖 7年, 日本 明治 14年) 1월 30일  
인천개항에 관한 건
부속서 2월 25일 인천개항 담판 대의(大意)
명치(明治) 14년(1881년) 공신 제15호
인천개항을 내년 중에 착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어기(語氣)를 약간 드러냈음은 공신 제13호로 상신하였습니다. 그 후 두 차례 담판을 거쳐 오늘 28일에 별지(인천개항 일건 담판 제6회)의 대의(大意)처럼 올해 2월부터 기산(起算)하여 20개월을 기한으로 내년 9월에 개항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위의 기월(期月)은 추랭(秋冷)으로 향하고 한천(寒天)에 가까워 건축 등을 하기에는 자못 적절치 못한 시기이지만, 애초의 수호조규에서도 2월 하순에 조인하여 개항은 20개월을 기한으로 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루어지는 인천개항은 수호조규에 작용시켜보더라도 20개월을 기한으로 하는 등의 선례가 있어 저들도 거절할 말이 없고, 우리 쪽도 작년 10월에 받은 훈령에 “지금부터 2년을 넘을 수 없다”고 한 것에 비추어 더 이상 기월(期月)을 단축하는 것은 강담(强談, 자기의 요구에 따르도록 무리하게 상대편과 담판함)하기 어려운 뜻도 있어, 끝내 이런 경위로 결정한 것이니 양찰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천개항에 대한 자세한 계약 사항은 앞으로 담판이 마무리되는 대로 상신하겠습니다.
위의 인천은 서울과 70리 떨어져 있으며 영종도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한강 하류를 끼고 몇 개의 포대(礮臺)를 쌓은 ‘막중한 요지’라고 칭하여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매우 꺼리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크게 병위(兵威)를 보이지 않으면, 이곳에 항구를 여는 것은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으로 고심한 바였는데 오로지 온언(溫言)으로 유액(誘掖)하는 방법에 따라 담판을 시작한지 2개월 만에 마무리한 것은 시세(時勢)가 그렇게 한 것이라 해도, 생각건대 우리 황상의 유원(柔遠)하는 위령(威靈)과 묘당(廟堂)의 포용하려는 뜻을 관철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이 쉽게 이루어졌겠습니까. 이번 일은, 각하에게는 강화도조약의 대국(大局)을 마무리 지은 것이고 요시모토 또한 그 남은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인천개항의 기월(期月) 결정을 보고함에 임하여, 아울러 국가의 성대한 영광을 축하하며 특별히 우러러 칭송하는 몇 글자를 올립니다. 경구(敬具).
명치(明治 14년(1881년) 2월 28일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님
(후략)

출전    · 『日本外交文書』 14, 문서번호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