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변리공사, 조선군을 파견하여 난병들을 진압해주기를 요청함(花房義質→동문사 경리사・경기도 관찰사)
연월일고종 19년(1882년, 淸 德宗 光緖 8年, 日本 明治 15年) 6월 9일  
발신花房義質
수신동문사 경리사・경기도 관찰사
양화진(揚花鎭)에서 동문사(同文司) 및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에 보내는 서신.
오늘 오후 5시에 난민 수 백 명이 공사관을 둘러싸고 방화하며 공격하였고, 관원이 사력을 다하여 방어한지 7~8시간이 지나도 끝내 귀 정부에서 군사를 보내어 구원해주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서 먼저 관찰사가 있는 감영에 가서 보호를 의뢰하고자 하였으나 응접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시 남대문을 통하여 대궐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이 봉쇄되어 열리지 않아, 부득이하게 인천부로 가기위해 양화진에서 길을 떠날 것이며, 이에 서신 1통을 써서 진장(鎭將)에게 부탁하여 전달해달라고 하는 것이니, 귀 정부에서는 속히 파병하여 폭도를 진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갖추어 올립니다.
명치(明治) 15년(1882) 7월 23일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동문사(同文司) 경리사(經理事) 이재면(李載冕) 각하.
동문사 경리사 조영하(趙寧夏) 각하.
경기도관찰사 김보현(金輔鉉) 각하.

출전    · 『近代韓國外交文書』, 제6권 「壬午軍亂1」, 문서번호 3(『善隣始末』 권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