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일본 변리공사, 영국군함 플라잉 피시호에서 난을 피해 일본으로 가고 있다고 상주함
연월일고종 19년(1882년, 淸 德宗 光緖 8年, 日本 明治 15年) 6월 12일  
일본국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삼가 아룁니다.
제가 앞서 우리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귀 국에 주차한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았으니 무엇을 헤아리겠습니까. 이번 달 23일 난민들이 청수관(淸水館)을 방화하니 수원(隨員)들이 힘을 다해 방어하다가 밤이 되었는데, 귀 조정이 파병하여 구원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였으나 끝내 그러한 일은 없었으므로,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서 대궐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숭례문(崇禮門)이 닫혀 있어 부득이하게 인천부로 피할 수밖에 없었고, 인천부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으나 인천부 군사 또한 난적과 합세하여 다시 피습해 오므로 수원들이 많이 죽였으며, 형세가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재차 제물포로 피하여 배를 탔는데, 다행히 영국 군함을 만나 지금 귀국하여 본국에 보고하려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제가 명을 받들어 서울에 주재하여 갑자기 이러한 변란을 만나 돌연 귀국하게 되었으니 매우 유감이며, 수원 중 비록 생사가 확실하지 않은 자가 있어도 성상의 주의가 미치는 곳에서 반드시 각자가 목숨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에 특별히 이러한 사유를 아뢰며, 가까운 날에 다시 건너와서 알현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성상(聖上)의 열람을 바라며, 아울러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명치(明治) 15년(1882) 7월 26일
영국군함 플라잉 피시호[飛魚號]에서
일본국 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삼가 아룁니다.

출전    · 『舊韓國外交文書』 1, 日案 1, 고종 19년 6월 12일, 문서번호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