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조선 주재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나가사키에서 임오군란 발발 상황을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에게 전신으로 보고함
연월일고종 19년(1882년, 淸 德宗 光緖 8年, 日本 明治 15年) 6월 16일  
경성 폭동사변 정보에 관한 건
전신(電信)
이달 23일 오후 5시 격도(激徒) 수백 명이 갑자기 봉기하여 공사관을 습격하여 시석(矢石)과 총환(銃丸)을 날리고 방화하여 불태웠다. 진력하여 방어한지 7시간이 지났지만 정부의 원병이 오지 않았다. 한 쪽을 돌파하여 왕궁으로 가려해도 성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인천으로 후퇴하여 휴식하는 중에 인천부의 병사가 또 갑자기 봉기하여 습격했다. 순사 2명이 즉사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외에 사상자가 있다. 겨우 뚫고나와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26일 남양 앞바다에서 영국 측량선 플라잉 피시를 만나 친절한 대접을 받았다. 부상자까지도 무사하다. 지금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위의 23일엔 격도가 왕궁 및 민태호(閔台鎬)와 민겸호(閔謙鎬) 집도 습격했다고 들었다. 특히 인천의 사건도 있으므로 부산과 원산도 방심하기 어렵다. 보호선 반조함(磐城艦)이 지금 원산에 있다. 이외에 1척을 바로 부산으로 파견하여 보호함과 아울러 그 후의 경성 상황, 국왕 및 정부의 변화와 안위 여부를 문의하기 바란다. 경성에서 앞으로 처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호위함과 호위병이 없어서는 안 된다. 진퇴 명령을 기다린다. 곤도(近藤) 서기관, 미즈노(水野) 대위 외 24명이 나가사키에 귀착했다. 호리모토(堀本) 중위 외 8명의 생사는 알 수 없다.
7월 30일 오전 12시 30분
나가사키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님

출전    · 『日韓外交資料集成』 제2권 「壬午軍亂」 문서번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