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개벽 제35호  
발행일1923년 05월 01일  
기사제목飛行將校 徐日甫君  
필자在北京 K生 記  
기사형태문예기타  
飛行將校 徐日甫君
在北京 K生 記
(이 글을 小春兄을 通하야 故國에 게신 同胞들에게 들임)
小春兄님 數年 前부터 北京 空中에는 飛行機가 縱으로 橫으로 날아 단니엿슴니다. 其中에는 져- 南苑飛行場으로부터 남다른 經綸과 希望을 가득히 싯고 「푸로펠라」를 두르며 한 마일 두 마일 漸漸 높히 떠- 멀리 故國의 江山을 바라보며 시름업시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이 잇셧슴니다. 그 사람이 곳 徐日甫君임니다. 君은 故國이 잇는 方向을 자세이도 알지마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보이지 안이하는 것을 大端히 설허하얏슴니다. 그리하야 볼 수 잇는 대로 놉히 떠보려고도 無限이 애를 썻슴니다. 그러나 마음과 가티 눈에는 잘 보이지 안이하얏슴니다. 그는 다시 눈으로 볼 생각을 하지 안이하얏슴니다. 다못 마음으로 故國에 게신 父母兄弟들이 엇던 强有力한 者에게 좃기여 險惡한 山谷으로 들어가며 猛烈한 火焰 속에 빠지는 그림을 그려 노코 다시 그들의 哀呼하는 울음소리를 듯고 눈물 흘리는 光景을 보고 全身의 氣運이 總動하야 아- 가티 웁시다! 가티 죽읍시다!를 부르지즈며 「푸로펠라」를 어즐러히 흔들며 단 바람에 모라가서 險山烈火 속에 一脉이 尙存한 父母兄弟들의 손길을 마주 붓들고 新生의 途를 求하려 하얏슴니다. 그러나 不幸이 그 타고 잇는 飛行機는 果然 그의 心中에 나타난 故國의 父母兄弟들을 맛나 보게 할만한 힘이 不足하얏슴을 깨달엇슴니다. 그리하야 지금까지 鐵石가티 튼튼하는 筋肉이 별안간 棉花가티 부들부들 하야저서 힘업시 飛行場으로 돌아 돌아 한숨- 쉬고<84> 同學하는 동모에게 붓그럼을 못 이기는 듯이 얼골이 붉으레하야지는 것을 우리는 보군 하얏슴니다.
小春兄님 이 徐君은 두 번을 죽엇섯슴니다. 其後에 다시 살아낫슴니다. 한번은 敎授가 뒤에 타고 君은 압헤 타슬 때에 飛行機는 不幸히 떠러졋슴니다. 그래서 君은 暫時 죽엇다가 다시 살아나고 敎授는 永遠히 죽고 말엇슴니다. 그때에 모든 사람들은 이러케 말하얏슴니다. 「飛行機에는 압헤 타는 것이 安全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 뒤에는 君이 뒤에 타고 敎授는 압헤 타슬 때에 飛行機는 또 不幸히 떠러졋슴니다. 그때에도 敎授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永歸의 客이 되고 君은 2日 後에 다시 蘇生하얏슴니다. 이때에 모든 사람은 또 말하얏슴니다. 「徐君은 天生의 飛行家라고」. 이로부터는 徐君 스스로도 信念이 鞏固하얏다 하지마는 우리들은 참으로 그져 죽지는 안이할 徐君이라고 튼튼히 미더 왓슴니다. 그러나 그때에 徐君이 月餘를 治療하는 동안에 北京 空中에 날아 단이는 飛行機는 우리의 눈에 그리 貴여워 보이지 안이하얏슴니다. 그 「푸로펠라」 소리는 우리의 귀에 대단히 역하게 들리엿슴니다. 그 飛行機는 우리들의 希望하는 何等의 關係가 업는 것을 늣긴 까닭으로 그리한 것임니다.
小春兄님 얼마 後에 君은 또 飛行場으로 차저 들어갓슴니다. 이때까지 外部의 傷處는 거의 完治되얏지오마는 그 精神은 아직도 如前히 回復되지 못하얏슬 때임니다. 그러나 君은 참으로 勇敢스럽게 一面으로는 그 부끄럼과 (勿論 自己의 過失로 떠러진 것은 안이요 다못 機械의 故障과 敎授의 失策으로 因함이지만) 一面으로는 우슴을(飛行機 너는 부서저도 나는 부서지지 안는다 하는 생각으로) 먹음고 다시 飛行機에 타기를 請하얏슴니다.<85> 그때에 모든 同窓들과 敎授들은 만히 留挽하얏슴니다. 아직 精神이 不足한 嬚이 잇스니 좀 더 治療한 後에 타라고. 그러나 君은 終是 듯지 아니하고 其於히 타기를 强請하얏슴으로 結局은 徐君이 손으로 잡아 둘dm는 「표로펠라」소리를 우리의 귀로 다시 듯게 되얏슴니다. 徐君이 타고 나는 飛行機 나래를 우리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얏슴니다. 그리하야 「아- 飛機야- 徐君아! 너는 다시 떠러지지 말어라」라고 祝願함을 마지 아니 하엿슴니다.
小春兄님 이 徐君이 斯學에 얼마나 熱心하야 왓다 하는 것은 지금 나의 구타여 말코저 하는 일이 안임니다. 이 우에 말슴한 몃 가지 말을 보아도 歷歷히 斟酌하시리라고 밋슴니다. 그런데 君으로부터 斯學에 着手하기까지의 經過는 大畧 말슴하야 들이겟슴니다. 君이 當初에 故國을 떠날 때에는 君의 平生에 容恕하지 못할 한 敵이 잇섯슴니다. 그 敵을 退治함에는 銃 한 자루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야 某處에 가서 軍人이 되얏슴니다. 그러나 其後에 이것만으로는 大端히 不足한 것을 깁히 늣기게 됨에 마츰 露西亞 地方에 가서 機關銃을 처음으로 보앗담니다. 그리하야 이것을 배우지 안흐면 안이 되겟다고 곳 砲工을 學하얏슴니다. 그러나 거긔에는 모든 設備가 完全치 못하야 이런 技術을 배우기에 滿足치 못함을 恨嘆하든 中에 歐洲 戰亂이 일어나며 空中飛戰이 猛烈한 成功을 奏하는 것을 듯고 다시는 이것이 아니면 곳 自己의 所願을 일우지 못하리라 결심하고 비로소 北京에 와서 이 航空學校를 차저 들어 斯學을 硏究 學習하게 되얏담니다. 그리하야 數年동안에 참으로 千辛萬苦를 備嘗하고 지난 겨을에 이 學校를 卒業하얏슴니다. 80餘의 同窓 中에서 40餘 人이 가티 卒業하얏는대 이 中에도 가장 成績이 良好하얏슴니다.<86>
小春兄님 徐君이 航空學校를 卒業한 것은 여러 가지의 意味로써 우리들은 滿腔의 誠意를 기우러 祝賀함을 마지 안이 함니다. 지난 1月에는 當地에 잇는 우리 留學生會의 主催로 北京大學 第2院에서 祝賀會가 열리엿슴니다. 當時에 나는 공교히 參席하지 못한 故로 그때에 狀况은 자세히 알지 못함니다. 마는 큰 盛况을 일우엇다는 말은 들엇슴니다. 其後 2月 11日에는 當地에 在留하는 여러 人士들의 主催로 北京 天道敎傳敎室에서 祝賀會가 잇섯슴니다. 이 때에 모힌 사람은 모다 60餘 人이엿슴니다. 崔東旿氏의 司會로 開會하고 留燕 少年俱樂部員들의 고흔 목소리로 祝賀하는 노래가 잇셧슴니다. 그 담에는 銀으로 만든 徽章을 授與하얏슴니다. 이때에 徐君은 이것을 바드며 눈물이 비오듯 하얏슴니다. 크나큰 手巾이 다 저젓슴니다. 이것을 볼 때에 나는 空然히 가슴이 흔들-리며 눈물이 눈瞳子를 沉沒식힙듸다. 한참동안 나의 世上은 아주 朦朧한 地境으로 들어가고 말엇슴니다. 이러할 즘에 韓興李光金在熙 外 諸氏의 熱誠잇고 鄭重하고 意味잇는 祝辭가 次例로 잇셧슴니다. 이때에 全 會場의 空氣는 果然 悲壯하얏슴니다. (兄님 나의 생각뿐은 이것을 드른대로 본대로 엿주엇스면 조켓다고 함니다마는 나의 記錄하는 것 뿐으로는 兄님의 案下에까지도 到着되리라고 밋지 못하고 또는 大畧이라도 엿즈엇스면- 하나 말슴한 사람들의 意思를 그저 取捨하기는 마음에 許치 안이하는 故로 만흔 遺憾으로 아옵니다) 그 다음에는 徐君의 答辭가 잇섯슴니다. 君은 옷자락에 차고 잇든 그 徽章을 잡아 뜻어 왼便 손에 놉히 들고 雄壯한 목소리로 이러케 말하얏슴니다. 『이것은 나의 처음 밧는 賞임니다. 特別히 軍人 에게는 賞과 罰을 주는 것이 公正하여야 第一 軍紀가 嚴肅하고 또는 果敢한 勇氣를 培養하는 것이 됨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주는 이 賞은 결코 公正한 것이라고 하지 안슴니다.<87> 웨 그러냐? 하면 나는 이 航空學校를 卒業한 것 뿐으로는 이러한 賞을 밧기에 大端히 부끄러운 까닭으로써 임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航空學校에서 授業하는 첫날부터 결정한 마음 - 이것을 成功하기 前에는 결코 이런 賞은 나의 所有物이 안임니다. 이것은 돌이어 나의 가슴을 亂刀질 하는 거와 갓슴니다. 차라리 내가 엇던 陣中에서 싸호여 죽은 뒤에 棺에라도 너허주면 (죽은 뒤에는 아모 것도 모르긴 하지만) 그것을 나에게 賞 주는 세음이 되리라고 밋슴니다. 그러나 나는 엇더케든지 나의 마음에 잇는대로 速히 싸호여 죽을 생각만 잇슬 뿐이요 싸호는 마당에까지 이를만한 準備는 업슴니다. 이것은 여러분 父母兄弟에게 밋슴니다. 卽 眞正으로 나의 卒業을 祝賀하시는 이는 나에게 하로밧비 죽음의 길을 주시는 것이 가장 價値 잇는 祝賀인 줄 밋슴니다. 나는 諸般 形式의 祝賀를 그리 要求하지 안슴니다. 다못 飛行機를 타게 하야 주시는 祝賀가 잇기를 다시금 父母兄弟의게 願함니다. 나는 지금 飛行機를 타지 못하면 飛機病이 나서 죽을 것임니다』 그리하고 한참동안 무엇을 黙黙히 생각하고 잇다가 다시 말을 이여 여러 가지의 激切한 所願과 抱負를 만히 말하얏슴니다. 그러고는 곳 閉會하얏슴니다.
小春兄님. 이와 가티 徐君의 가슴으로부터 끄러나오는 熱情의 表現됨을 보고 나는 이럿케 늣기엿슴니다. 徐君이 果然 다른 결네의 피가 무든 飛行機를 타고 故國에 돌아들 때에는 우리 民族에게는 새로히 즐거운 幕이 열릴 듯이 보임니다. 또는 이 徐君의 피 무든 손으로 잡아둘은 「푸로펠라」소리를 드를 때에는 이미 도라가신 한아버지 한머니께서들도 應當 깃버 하실 듯이 생각함니다. 그러나 엇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런 成功이 잇기를 미들 수 잇슴닛가? 아마 不能한 일이겟지요! 그러치만은 다못 한 사람이라도 그 完全하고<88> 充實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곳 우리들의 責任이 안니겟슴닛가? 다시 말하면 新生을 圖謀하는 우리들의 반드시 行할 義務가 안이겟슴닛가. 무슨 일이든지 사람마다 能치 못할 일을 能히 하는 이가 잇다 하면 그는 그 사람뿐의 榮光이 안이겟슴니다. 곳 우리 同族의 榮光이 될 것임니다. 對外하야서는 그러면 그 榮光의 報酬로라도 그 사람의 그 技能을 徹底히 發揮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모엇보다도 조흔 일이겟슴니다. 萬一 그러치 못하면 이는 곳 이 社會에 잇서서 이른바 그 共存同榮의 眞意를 忘失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임니다.
兄님. 小春兄님. 지금 우리 朝鮮民族은 飛行機를 空中에 날리는 것 뿐으로는 즐겁다 할 時期는 안인 줄 암니다. (푸로펠라)를 두르는 것 뿐으로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줄 암니다. 다못 날아서 衝天은 못한다 하더라도 壞地는 할만한 氣槪가 잇서야 함니다. 또는 發動機를 잇게 하든지 업게 하든지 엇던 形式의 만드름이라도 잇서야 할 것 임니다. 우리가 지금 徐君을 祝賀하야 마지 아니 하는 것도 其 意味가 후자에 잇다는 것보다 前者에 잇다 하는 것이 可한 듯 함니다. 徐君 亦是 前者에 注力하는 사람인 듯 함니다. 그러하야 徐君은 每日 地圖를 펴처노코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할 길을 朱線으로 그리고 잇슴니다. 다 그려노코는 그 最終點의 一端을 주먹으로 힘잇게 치군 함니다. 이 주먹으로 치는 뜻과 가티 되면 乃終에는 沙漠이 되고 말자 함입니다. 兄님 故國에 게신 여러 父母兄弟들아 더불어 合心協力하야써 徐君으로 하야금 地圖에 그려 잇는 이 朱線을 밟어 快活히空中에 한번 날음이 잇도록 힘써 보십시오. 여긔에 對한 意見은 나의 알고져 하는 바이 안이오. 오직 賢明하신 兄님과 또는 여러 同胞들에게 紹介하야 매낄 뿐임니다. 只此敬頌 選安
記者曰 「第1 이 徐君이 許諾치 안는 方面과 또 內地 事情이 許諾치 안는 만흔 事故로 因하야 仔細히 紹介하야 들이지 못하는 것은 甚히 遺憾이나마 다시 後日을 期待할 밧게 別수 업슴니다.
編者曰 이 글은 느져도 지난 4月號에는 揭載되엿슬 것이나 編輯上 形便으로 이번 號에야 揭載되엿슴니다. 徐君의 赤心을 讀者 여러분에게 紹介하고 여러분의 赤心을 徐君에게 미루어 주는 그 點에 잇서는 때의 早晩이 잇슬 것이 아닐가 함니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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