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화요일》 몹시 춥고 흐림.


YMCA에서 업무를 보았다. 오후 3시에 니와 세이지로(丹羽淸次郞)003003 니와 세이지로(1865~1957)는 YMCA운동가로 일본 기독교계의 원로다. 도쿄YMCA와 일본YMCA동맹 총무 등을 역임하면서 15년 동안 일본YMCA의 1인자로 활동했다. 한일합방 직전 조선에 건너와 경성기독교청년회(서울의 일본YMCA)를 설립하고 초대 총무에 취임했다.닫기씨와 와타나베 노보루(渡邊暢) 씨004004 와타나베 노보루(1858~?)는 당시 총독부 고등법원장(1910~1923, 지금의 대법원장에 해당됨)으로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1916년 서울YMCA의 명예이사에 선임되었으며, 윤치호 등 조선 기독교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돌아가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닫기를 방문해 조선YMCA가 10만 엔을 모금해 기부하고자 하는 복음운동에 대한 당국의 입장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내게 동의했고, 그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카모토(岡本惠三郞) 경부(警部)005005 오카모토는 1916년 당시 경무총감부 경기도경무부 개성경찰서장이었다.닫기와 하시모토(橋本淸) 경부에게 한식 저녁을 대접했다. 오카모토 경부는 한식 “반찬”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고, 하시모토 경부는 앞에 놓인 음식을 모두 잘 먹었다. 두 사람에게서 신승희(申勝熙) 씨006006 신승희(1880~1919)는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악명 높았다. 신철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만주 펑텐에 출장갔다가 돌아온 뒤 독립운동관계로 천도교에서 5천원을 받고 3 1운동 거사계획을 묵인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19년 5월 15일 경성헌병분대 유치장에서 자살했다.닫기가 용산 헌병들에게 고문당해 죽었다는 서글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註 003
: 니와 세이지로(1865~1957)는 YMCA운동가로 일본 기독교계의 원로다. 도쿄YMCA와 일본YMCA동맹 총무 등을 역임하면서 15년 동안 일본YMCA의 1인자로 활동했다. 한일합방 직전 조선에 건너와 경성기독교청년회(서울의 일본YMCA)를 설립하고 초대 총무에 취임했다.
註 004
: 와타나베 노보루(1858~?)는 당시 총독부 고등법원장(1910~1923, 지금의 대법원장에 해당됨)으로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1916년 서울YMCA의 명예이사에 선임되었으며, 윤치호 등 조선 기독교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돌아가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註 005
: 오카모토는 1916년 당시 경무총감부 경기도경무부 개성경찰서장이었다.
註 006
: 신승희(1880~1919)는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악명 높았다. 신철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만주 펑텐에 출장갔다가 돌아온 뒤 독립운동관계로 천도교에서 5천원을 받고 3 1운동 거사계획을 묵인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19년 5월 15일 경성헌병분대 유치장에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