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을 총관으로 삼다 ( 668년 06월21일(음) )

〔8년(668) 6월〕 21일에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을 대당대총관(大幢大摠管)001001 대당대총관(大幢大摠管): 6정 가운데 왕경에 주둔한 정군단인 대당(大幢)의 총관(摠管)을 임명한 것으로 보건대. 대당대총관은 이때에 편성한 행군군단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참고로 문무왕 원년(661)에 행군군단을 편성할 때에 각 행군군단의 지휘관을 장군 또는 총관이라고 불렀으나, 이때에 편성된 행군군단의 지휘관은 총관으로 통일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당의 총관제를 수용하여 정착한 사실로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2쪽).닫기으로, 각간 김인문(金仁問)·흠순(欽純)·천존(天存)·문충(文忠)과 잡찬 진복(眞福)·파진찬 지경(智鏡)·대아찬 양도(良圖)·개원(愷元)·흠돌(欽突)을 대당총관(大幢摠管)002002 대당총관(大幢摠管): 6정 가운데 왕경에 주둔한 정군단인 대당(大幢)을 지휘한 총관을 이른다. 대당총관으로 임명된 장수가 9명이나 되어 특별히 많은데, 이는 문무왕 원년(661)의 행군 편성 당시 대당·상주(上州)·하주(下州)에 각각 3명씩 총 9명의 장수가 임명된 것을 감안할 때, 상주와 하주의 장수들이 대당으로 흡수·통합되었다고 파악하기도 한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3쪽). 대당총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8년(661) 2월조 참조.닫기으로,003003 각간 김인문(金仁問) … 대당총관(大幢摠管)으로: 종래에 문무왕 5년(665)에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폐지한 이후, 문무왕 원년(661)에 상주장군(上州將軍 또는 총관摠管), 하주장군(下州將軍 또는 총관摠管)이 이때 대당장군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3쪽).닫기 이찬 진순(陳純) 또는 ‘춘(春)’으로도 되어 있다.·죽지(竹旨)를 경정총관(京停摠管)004004 경정(京停): 본서 권제40 잡지제9 직관하(下) 무관조에 경정이란 군단 명칭이 보이지 않으며, 또한 『삼국사기』의 다른 기록에서도 경정에 관한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이로 보아, 경정은 문무왕 8년(668) 고구려정벌을 위하여 임시로 편성한 군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된다. 현역으로 복무하는 정남(丁男) 이외에 군역의 의무가 있었던 왕경 거주 정남들을 임시로 징발하여 편성한 군단이 바로 경정이었다고 보인다(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223쪽).닫기으로, 이찬 품일(品日)·잡찬 문훈(文訓)·대아찬 천품(天品)을 귀당총관(貴幢摠管)005005 귀당총관(貴幢摠管): 귀당(貴幢) 군단을 지휘하는 총관이다. 귀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원년(661) 7월 17일조 참조.닫기으로, 이찬 인태(仁泰)를 비열도총관(卑列道摠管)006006 비열도총관(卑列道摠管): 비열(卑列)은 비열홀(比列忽)을 가리키며, 함경남도 안변(현재 북한의 강원도 안변)에 해당한다. 비열도총관은 비열도 방면으로 향하는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르는 것이다. 비열도총관은 임명된 장수가 1명뿐이며 ‘도(道)’로 끝나는 중국식 행군명을 취하고 있어 다른 군단들과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비열도총관에 임명되는 김인태는 백제 멸망 후 7,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유인원(劉仁原)과 함께 사비에 주둔했고, 이후 유인원과 더불어 당(唐)나라 고종(高宗)으로부터 비열도를 따라 평양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유인원의 부장(副將)으로서 당군(唐軍)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리라는 것이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4~136쪽).닫기으로, 잡찬 군관(軍官)·대아찬 도유(都儒)007007 도유(都儒): 박도유(朴都儒)를 말한다. 문무왕 8년(668)에 대아찬으로서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이 되어 고구려 정벌에 참가하였다. 그러다 신라의 병기를 훔쳐 한 주(州)의 땅을 습격하려던 모의가 들통이 나서 주살당하였다.닫기·아찬 용장(龍長)008008 용장(龍長):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에 임명되었다. 9월 25일에는 대아찬으로서 국원사신(國原仕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닫기을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009009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 한성주는 한산주(漢山州)라고 부른다. 이때 한성주의 주치(州治)는 한강 이북의 서울특별시에 위치하였다. 한성주행군총관은 한성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된 행군군단의 총관을 말한다. 한산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6년(659) 10월조 참조닫기으로, 잡찬 숭신(崇信)010010 숭신(崇信): 숭신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잡찬으로서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대아찬 문영(文穎)·아찬 복세(福世)011011 복세(福世): 복세는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비열성주행군총관에 임명되었고, 신문왕 5년(685)에는 대아찬으로서 청주(菁州) 총관이 되었다.닫기를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012012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 비열성주는 비열홀주(比列忽州)를 가리킨다. 문무왕 8년(668)에 우수주(우두주)를 혁파하고 비열홀주를 설치하였다. 비열성주행군총관은 비열성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된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른다. 비열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2 신라본기제2 기림이사금 3년(300) 2월조 참조.닫기으로, 파진찬 선광(宣光)013013 선광(宣光): 선광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파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아찬 장순(長順)014014 장순(長順): 장순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순장(純長)015015 순장(純長): 순장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을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으로,016016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 하서주는 오늘날 강원도 강릉시에 해당한다. 하서주행군총관은 하서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한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른다. 하서주는 하슬라주(何瑟羅州)라고도 한다. 하서주(하슬라주)에 대해서는 본서 권5 신라본기제5 선덕왕 8년(639) 2월조 참조.닫기 파진찬 의복(冝楅)017017 의복(宜福): 의복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파진찬으로서 서당총관(誓幢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아찬 천광(天光)018018 천광(天光): 문무왕 8년(668)에 아찬으로서 서당총관(誓幢摠管)에 임명되었다. 9월 21일에 고구려 멸망 후 이적(李勣)이 보장왕 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갈 때 김인문·조주 등과 함께 입당하였다. 문무왕 13년(673) 7월에 파진찬으로서 시중(侍中)이 되었다.닫기을 서당총관(誓幢摠管)019019 서당총관(誓幢摠管): 서당을 지휘하는 사령관을 이른다. 서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8년(661) 2월조참조.닫기으로, 아찬 일원(日原)과 흥원(興元)020020 흥원(興元): 흥원은 문무왕 8년(668)에 아찬으로서 계금당총관(罽衿幢摠管)에 임명되어 고구려 정벌에 참전하였다. 9월 21일에 고구려 멸망 후 이적(李勣)이 보장왕 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갈 때 김인문·조주(助州) 등과 함께 입당하였다. 중신(衆臣)·의관(義官)·달관(達官) 등과 함께 진영에서 퇴각한 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얻었지만 사면을 받아 면직되었다. 신문왕 원년(681) 8월 8일 파진찬으로서 소판 김흠돌과 모반(謀叛)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을 당하였다.닫기을 계금당총관(罽衿幢摠管)021021 계금당총관(罽衿幢摠管): 계금당을 지휘한 사령관을 이른다. 계금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원년(661) 7월 17일조 참조.닫기으로 삼았다.

註 001
대당대총관(大幢大摠管): 6정 가운데 왕경에 주둔한 정군단인 대당(大幢)의 총관(摠管)을 임명한 것으로 보건대. 대당대총관은 이때에 편성한 행군군단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참고로 문무왕 원년(661)에 행군군단을 편성할 때에 각 행군군단의 지휘관을 장군 또는 총관이라고 불렀으나, 이때에 편성된 행군군단의 지휘관은 총관으로 통일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당의 총관제를 수용하여 정착한 사실로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2쪽).
註 002
대당총관(大幢摠管): 6정 가운데 왕경에 주둔한 정군단인 대당(大幢)을 지휘한 총관을 이른다. 대당총관으로 임명된 장수가 9명이나 되어 특별히 많은데, 이는 문무왕 원년(661)의 행군 편성 당시 대당·상주(上州)·하주(下州)에 각각 3명씩 총 9명의 장수가 임명된 것을 감안할 때, 상주와 하주의 장수들이 대당으로 흡수·통합되었다고 파악하기도 한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3쪽). 대당총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8년(661) 2월조 참조.
註 003
각간 김인문(金仁問) … 대당총관(大幢摠管)으로: 종래에 문무왕 5년(665)에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폐지한 이후, 문무왕 원년(661)에 상주장군(上州將軍 또는 총관摠管), 하주장군(下州將軍 또는 총관摠管)이 이때 대당장군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3쪽).
註 004
경정(京停): 본서 권제40 잡지제9 직관하(下) 무관조에 경정이란 군단 명칭이 보이지 않으며, 또한 『삼국사기』의 다른 기록에서도 경정에 관한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이로 보아, 경정은 문무왕 8년(668) 고구려정벌을 위하여 임시로 편성한 군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된다. 현역으로 복무하는 정남(丁男) 이외에 군역의 의무가 있었던 왕경 거주 정남들을 임시로 징발하여 편성한 군단이 바로 경정이었다고 보인다(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223쪽).
註 005
귀당총관(貴幢摠管): 귀당(貴幢) 군단을 지휘하는 총관이다. 귀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원년(661) 7월 17일조 참조.
註 006
비열도총관(卑列道摠管): 비열(卑列)은 비열홀(比列忽)을 가리키며, 함경남도 안변(현재 북한의 강원도 안변)에 해당한다. 비열도총관은 비열도 방면으로 향하는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르는 것이다. 비열도총관은 임명된 장수가 1명뿐이며 ‘도(道)’로 끝나는 중국식 행군명을 취하고 있어 다른 군단들과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비열도총관에 임명되는 김인태는 백제 멸망 후 7,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유인원(劉仁原)과 함께 사비에 주둔했고, 이후 유인원과 더불어 당(唐)나라 고종(高宗)으로부터 비열도를 따라 평양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유인원의 부장(副將)으로서 당군(唐軍)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리라는 것이다(이상훈, 2018, 「삼국통일기 신라군의 행군 편성 구조」, 『한국고대사탐구』 30, 134~136쪽).
註 007
도유(都儒): 박도유(朴都儒)를 말한다. 문무왕 8년(668)에 대아찬으로서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이 되어 고구려 정벌에 참가하였다. 그러다 신라의 병기를 훔쳐 한 주(州)의 땅을 습격하려던 모의가 들통이 나서 주살당하였다.
註 008
용장(龍長):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에 임명되었다. 9월 25일에는 대아찬으로서 국원사신(國原仕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註 009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 한성주는 한산주(漢山州)라고 부른다. 이때 한성주의 주치(州治)는 한강 이북의 서울특별시에 위치하였다. 한성주행군총관은 한성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된 행군군단의 총관을 말한다. 한산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6년(659) 10월조 참조
註 010
숭신(崇信): 숭신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잡찬으로서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1
복세(福世): 복세는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비열성주행군총관에 임명되었고, 신문왕 5년(685)에는 대아찬으로서 청주(菁州) 총관이 되었다.
註 012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 비열성주는 비열홀주(比列忽州)를 가리킨다. 문무왕 8년(668)에 우수주(우두주)를 혁파하고 비열홀주를 설치하였다. 비열성주행군총관은 비열성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된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른다. 비열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2 신라본기제2 기림이사금 3년(300) 2월조 참조.
註 013
선광(宣光): 선광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파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4
장순(長順): 장순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5
순장(純長): 순장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아찬으로서 하서주행군총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6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 하서주는 오늘날 강원도 강릉시에 해당한다. 하서주행군총관은 하서주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중심으로 편성한 행군군단의 총관을 이른다. 하서주는 하슬라주(何瑟羅州)라고도 한다. 하서주(하슬라주)에 대해서는 본서 권5 신라본기제5 선덕왕 8년(639) 2월조 참조.
註 017
의복(宜福): 의복은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에 파진찬으로서 서당총관(誓幢摠管)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8
천광(天光): 문무왕 8년(668)에 아찬으로서 서당총관(誓幢摠管)에 임명되었다. 9월 21일에 고구려 멸망 후 이적(李勣)이 보장왕 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갈 때 김인문·조주 등과 함께 입당하였다. 문무왕 13년(673) 7월에 파진찬으로서 시중(侍中)이 되었다.
註 019
서당총관(誓幢摠管): 서당을 지휘하는 사령관을 이른다. 서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8년(661) 2월조참조.
註 020
흥원(興元): 흥원은 문무왕 8년(668)에 아찬으로서 계금당총관(罽衿幢摠管)에 임명되어 고구려 정벌에 참전하였다. 9월 21일에 고구려 멸망 후 이적(李勣)이 보장왕 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갈 때 김인문·조주(助州) 등과 함께 입당하였다. 중신(衆臣)·의관(義官)·달관(達官) 등과 함께 진영에서 퇴각한 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얻었지만 사면을 받아 면직되었다. 신문왕 원년(681) 8월 8일 파진찬으로서 소판 김흠돌과 모반(謀叛)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을 당하였다.
註 021
계금당총관(罽衿幢摠管): 계금당을 지휘한 사령관을 이른다. 계금당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원년(661) 7월 17일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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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