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죽지 등이 백제 가림성의 벼를 밟다 ( 671년 06월(음) )

6월에 장군(將軍) 죽지(竹旨)011011 신라의 장군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죽만(竹曼)이라고도 한다. 진덕여왕 때에 활동하였던 술종(述宗)이 삭주(朔州) 도독(都督)으로 부임할 때, 죽지령(竹旨嶺)에서 거사(居士)와 만난 뒤 낳았다고 하여 죽지라고 불렀다고 전하지만 그 연대는 믿을 수 없다. 진덕여왕 3년(649) 김유신(金庾信), 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도살성(道薩城)에서 백제군을 물리쳤고, 2년 뒤에는 태종무열왕 2년(655)까지 파진찬(波珍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초대 중시(中侍)을 맡았다. 문무왕 1년(660)에는 귀당(貴幢) 총관(摠管)으로 김유신을 도왔고, 문무왕 8년(668)에는 진순(陳純, 眞純)과 함께 경정(京停) 총관으로 평양성 공격에서 공을 세웠다. 그 뒤 신라의 당나라 공격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삼국유사》에는 낭도였던 득오(得烏)가 지은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가 전하고 있다.닫기 등을 보내어 군사를 이끌고서 백제 가림성(加林城)012012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성흥산성(聖興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백제 수도였던 부여를 보호하기 위해 동성왕 23년(501)에 금강 하류에 축조된 사비시대 백제의 가장 중요한 산성의 하나이다. 성의 둘레는 약 600m로 우물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다.닫기의 벼를 밟도록 하였다.

註 011
신라의 장군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죽만(竹曼)이라고도 한다. 진덕여왕 때에 활동하였던 술종(述宗)이 삭주(朔州) 도독(都督)으로 부임할 때, 죽지령(竹旨嶺)에서 거사(居士)와 만난 뒤 낳았다고 하여 죽지라고 불렀다고 전하지만 그 연대는 믿을 수 없다. 진덕여왕 3년(649) 김유신(金庾信), 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도살성(道薩城)에서 백제군을 물리쳤고, 2년 뒤에는 태종무열왕 2년(655)까지 파진찬(波珍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초대 중시(中侍)을 맡았다. 문무왕 1년(660)에는 귀당(貴幢) 총관(摠管)으로 김유신을 도왔고, 문무왕 8년(668)에는 진순(陳純, 眞純)과 함께 경정(京停) 총관으로 평양성 공격에서 공을 세웠다. 그 뒤 신라의 당나라 공격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삼국유사》에는 낭도였던 득오(得烏)가 지은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가 전하고 있다.
註 012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성흥산성(聖興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백제 수도였던 부여를 보호하기 위해 동성왕 23년(501)에 금강 하류에 축조된 사비시대 백제의 가장 중요한 산성의 하나이다. 성의 둘레는 약 600m로 우물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투유형
정치>군사>군사조직>군사전략
색인어
이름 : 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