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군사와 석성에서 싸우다 ( 671년 06월(음) )

마침내 나라 군사와 석성(石城)013013 지금의 충남 부여군 임천면 동석성리에 있었던 성을 말한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6판, 을유문화사, 1986, 106쪽).닫기에서 싸워 5천 3백 명의 목을 베고, 백제의 장군 두 명과 나라의 과의(果毅)014014 唐代 折衝府의 副官으로 ‘果毅都尉’라 하였으며 궁궐의 宿衛와 資材의 조달을 맡았다. 관품은 종5품~종6품이었다. 隋代에는 果毅郞將이라 불렀다.닫기 여섯 명을 포로로 잡았다.

註 013
지금의 충남 부여군 임천면 동석성리에 있었던 성을 말한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6판, 을유문화사, 1986, 106쪽).
註 014
唐代 折衝府의 副官으로 ‘果毅都尉’라 하였으며 궁궐의 宿衛와 資材의 조달을 맡았다. 관품은 종5품~종6품이었다. 隋代에는 果毅郞將이라 불렀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색인어
지명 : 석성
국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