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로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정복하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054054 신라 4대 왕이다.닫기 때에 벼슬하여 간(干)055055 추장 또는 지배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왕이라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간(干)은 신라 관품 칭호에 붙는 '찬(飡, 尺干)'·'한(翰)'과 같은 말로, 초기에는 족장의 칭호였을 것이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즉 간은 초기에는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자를 칭하였던 명칭이었다(《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가락국기(駕洛國記)의 9干(간)과 신라 왕의 칭호였던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 등). 후에는 삽량주간(歃良州干) 박제상, 거도 등처럼 지방세력이 왕의 직임을 받은 자를 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는 골품제의 ‘간(干)’군의 관등, 외위제로 그 명칭이 계승된 것(서의식, 「신라 상고기의 ‘干’의 편제와 분화」, 《역사교육》 53, 1993)을 확인할 수 있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닫기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056056 옛날 지명 중의 시(尸)는 R음(履의 略)의 표시로도 썼으므로, 여기의 우시산(于尸山)은 즉 '울산'으로 읽는 동시에 지금의 울산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우시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해는 열전에는 기록이 없으나, 《삼국사절요》 이후 《동국통감》, 《동사강목》등에서는 탈해왕 23년조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어느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닫기거칠산국(居柒山國)057057 거칠산국(居柒山國)은 동래군(東萊郡)을 ‘본거칠산군(本居柒山郡)’이라 하였음으로,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東萊區) 부근이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열전(列傳)에는 이 나라가 신라에 복속된 연도를 명기하고 있지 않은데, 《삼국사절요》 이후 《동국통감》, 《동사강목》에서 탈해왕 23년조로 기록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닫기이 [신라] 국경의 인근에 끼어 있어서 매우 심하게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몰래 [그곳을] 병탄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한 번씩 많은 말들을 장토(張吐)058058 현재의 경주시 감포읍(甘浦邑)으로 추정한 견해가 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닫기의 들판에 모아놓고, 병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재미있게 놀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 놀이를] ‘마기(馬技)’059059 말 타는 기술을 훈련시키는 놀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4, 열전(列傳)4 이사부전(異斯夫傳)의 ‘마희(馬戱)’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종래의 모든 판독에서는 ‘기(技)’자를 ‘숙(叔)’으로 읽어 많은 해석이 있었다. 성암본(誠庵本) 《삼국사기》에서 ‘수(手)’변이 분명히 확인되고 ‘지(支)’자의 윗 부분이 마모되었으나, 아래의 ‘우(又)’자 획이 분명하므로 《역주 삼국사기》 1 校勘 原文篇,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에서는 ‘기(技)’로 판독하였다. 또한 《삼국사절요》《동국통감》, 《동사강목》의 탈해이사금 23년조에서도 이를 ‘기(技)’자로 판독한 바 있다. 중종 임신간본 및 주자본 《삼국사기》를 최초로 이용한 조선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에서부터 ‘마숙(馬叔)’으로 판독되었고(그 내용 및 의미에 대하여는 윤경열, 「자료·신라의 유희」, 《신라민속의 신연구》, 신라문화선양회편, 1983李基東, 「신하상고의 전쟁과 유희」, 《소헌남도영박사화갑기념논총》, 1984 참조), 그 영향을 받아 현재의 인쇄본에서는 모두 ‘마숙(馬叔)’으로 판독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697쪽).닫기라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익숙히 보아 왔으므로, 신라의 평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에 [거도는] 전쟁을 일으켜 그곳을 갑작스럽게 쳐서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註 054
신라 4대 왕이다.
註 055
추장 또는 지배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왕이라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간(干)은 신라 관품 칭호에 붙는 '찬(飡, 尺干)'·'한(翰)'과 같은 말로, 초기에는 족장의 칭호였을 것이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즉 간은 초기에는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자를 칭하였던 명칭이었다(《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가락국기(駕洛國記)의 9干(간)과 신라 왕의 칭호였던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 등). 후에는 삽량주간(歃良州干) 박제상, 거도 등처럼 지방세력이 왕의 직임을 받은 자를 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는 골품제의 ‘간(干)’군의 관등, 외위제로 그 명칭이 계승된 것(서의식, 「신라 상고기의 ‘干’의 편제와 분화」, 《역사교육》 53, 1993)을 확인할 수 있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
註 056
옛날 지명 중의 시(尸)는 R음(履의 略)의 표시로도 썼으므로, 여기의 우시산(于尸山)은 즉 '울산'으로 읽는 동시에 지금의 울산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우시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해는 열전에는 기록이 없으나, 《삼국사절요》 이후 《동국통감》, 《동사강목》등에서는 탈해왕 23년조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어느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
註 057
거칠산국(居柒山國)은 동래군(東萊郡)을 ‘본거칠산군(本居柒山郡)’이라 하였음으로,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東萊區) 부근이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열전(列傳)에는 이 나라가 신라에 복속된 연도를 명기하고 있지 않은데, 《삼국사절요》 이후 《동국통감》, 《동사강목》에서 탈해왕 23년조로 기록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쪽).
註 058
현재의 경주시 감포읍(甘浦邑)으로 추정한 견해가 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5쪽).
註 059
말 타는 기술을 훈련시키는 놀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4, 열전(列傳)4 이사부전(異斯夫傳)의 ‘마희(馬戱)’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종래의 모든 판독에서는 ‘기(技)’자를 ‘숙(叔)’으로 읽어 많은 해석이 있었다. 성암본(誠庵本) 《삼국사기》에서 ‘수(手)’변이 분명히 확인되고 ‘지(支)’자의 윗 부분이 마모되었으나, 아래의 ‘우(又)’자 획이 분명하므로 《역주 삼국사기》 1 校勘 原文篇,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에서는 ‘기(技)’로 판독하였다. 또한 《삼국사절요》《동국통감》, 《동사강목》의 탈해이사금 23년조에서도 이를 ‘기(技)’자로 판독한 바 있다. 중종 임신간본 및 주자본 《삼국사기》를 최초로 이용한 조선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에서부터 ‘마숙(馬叔)’으로 판독되었고(그 내용 및 의미에 대하여는 윤경열, 「자료·신라의 유희」, 《신라민속의 신연구》, 신라문화선양회편, 1983李基東, 「신하상고의 전쟁과 유희」, 《소헌남도영박사화갑기념논총》, 1984 참조), 그 영향을 받아 현재의 인쇄본에서는 모두 ‘마숙(馬叔)’으로 판독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6~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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