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갑(射琴匣)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541541 신라의 제21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다. 이 왕대에 神宮과 郵驛을 처음으로 설치하였고, 백제와 혼인을 맺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 즉위 10년 무진(戊辰)에 천천정(天泉亭)542542 현재 천정정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조에는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정천에 행차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사보다 자세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닫기에 거둥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했다 혹자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543543 신라 제53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912~916년이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이고,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왕은 헌강왕의 사위였는데, 효공왕이 자식 없이 죽자 국인이 추대하여 즉위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이 흥륜사(興輪寺)544544 신라의 불교 전래 및 공인과정과 연관되어 가장 일찍 국가적 사찰로 창건되었고 신라 왕경 내 칠처가람(七處伽藍)터 중의 하나인 천경림(天鏡林)에 건립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최초의 승려 阿道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법흥왕 14년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신라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어 544년(眞興王 5)에 완공되었다. 흥륜사는 대법회를 주관하는 도량으로서,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의 가람으로 존중되기도 하였다(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역주 삼국유사≫ 1, 이회문화사, 2002, 266쪽).닫기에 행향(行香)하고자 하여 [가는데] 길에 꼬리를 [서로] 물고 가는 한 무리의 쥐들을 보고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 그것을 점치게 하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가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왕이 기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르게 하여 남쪽의 피촌(避村) 지금의 양피사촌(壤避寺村)으로 남산(南山)545545 경상북도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북쪽의 금오봉(金鰲峰)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60여 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계곡 곳곳에는 신라시대의 유적이 산재해 노천 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불교 유적들은 물론이고, 나정(蘿井), 남산신성(南山新城), 그리고 포석정(鮑石亭)과 같은 유적들이 유명하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남산≫, 2002).닫기의 동쪽 산록에 있다546546 서출지 부근에 있었으며 이곳에 양피사가 세워진 듯하다. ≪삼국유사≫ 권5 피은 염불사조에는 남산 동쪽 기슭에 피리촌이 있고 촌내에 피리사 혹은 염불사가 있다고 하였다. 피리사 옆에 양피사가 있는데, 그 절 이름은 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역주 삼국유사≫ 1, 이회문화사, 2002, 290쪽).닫기에 이르렀는데,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어 이를 한참 살피다가 홀연히 까마귀가 간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길 주변을 배회하는데 이때 한 늙은이가 연못 가운데서 나와 글을 바쳤다. 겉봉의 제목에 이르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사가 돌아와 이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느니 오히려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다.” 하였다. 일관(日官)547547 고대사회에서 왕의 측근으로 역수·간지를 관장하며 일월성신의 운수를 알려주는 관직이다. 일관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했으며, 신라 하대까지 존재하였다(신종원, 「고대의 일관과 무」, ≪신라초기불교사연구≫, 민족사, 1992, 27~42쪽).닫기이 나서서 말하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러하다고 여겨 열어 보니 편지 가운데 “거문고 갑을 쏘라[射琴匣].”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 곳에서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던 승려548548 焚修僧은 향을 피우면서 불교의식을 주관하는 승려이다. 소지마립간대에는 내전에 분수승을 두었는데, 그 폐단이나 비리가 나타났다. 이 점은 공인 이전에 이미 불교가 왕실을 중심으로 전래되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신종원, 「신라 불교전래의 제양상」, ≪신라초기불교사연구≫, 민족사, 1992, 156~158쪽).닫기가 궁주(宮主)549549 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이다. 신라의 후비제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사≫ 권88 후비전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닫기와 은밀하게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註 541
신라의 제21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다. 이 왕대에 神宮과 郵驛을 처음으로 설치하였고, 백제와 혼인을 맺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542
현재 천정정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조에는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정천에 행차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사보다 자세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註 543
신라 제53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912~916년이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이고,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왕은 헌강왕의 사위였는데, 효공왕이 자식 없이 죽자 국인이 추대하여 즉위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544
신라의 불교 전래 및 공인과정과 연관되어 가장 일찍 국가적 사찰로 창건되었고 신라 왕경 내 칠처가람(七處伽藍)터 중의 하나인 천경림(天鏡林)에 건립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최초의 승려 阿道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법흥왕 14년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신라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어 544년(眞興王 5)에 완공되었다. 흥륜사는 대법회를 주관하는 도량으로서,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의 가람으로 존중되기도 하였다(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역주 삼국유사≫ 1, 이회문화사, 2002, 266쪽).
註 545
경상북도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북쪽의 금오봉(金鰲峰)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60여 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계곡 곳곳에는 신라시대의 유적이 산재해 노천 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불교 유적들은 물론이고, 나정(蘿井), 남산신성(南山新城), 그리고 포석정(鮑石亭)과 같은 유적들이 유명하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남산≫, 2002).
註 546
서출지 부근에 있었으며 이곳에 양피사가 세워진 듯하다. ≪삼국유사≫ 권5 피은 염불사조에는 남산 동쪽 기슭에 피리촌이 있고 촌내에 피리사 혹은 염불사가 있다고 하였다. 피리사 옆에 양피사가 있는데, 그 절 이름은 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역주 삼국유사≫ 1, 이회문화사, 2002, 290쪽).
註 547
고대사회에서 왕의 측근으로 역수·간지를 관장하며 일월성신의 운수를 알려주는 관직이다. 일관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했으며, 신라 하대까지 존재하였다(신종원, 「고대의 일관과 무」, ≪신라초기불교사연구≫, 민족사, 1992, 27~42쪽).
註 548
焚修僧은 향을 피우면서 불교의식을 주관하는 승려이다. 소지마립간대에는 내전에 분수승을 두었는데, 그 폐단이나 비리가 나타났다. 이 점은 공인 이전에 이미 불교가 왕실을 중심으로 전래되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신종원, 「신라 불교전래의 제양상」, ≪신라초기불교사연구≫, 민족사, 1992, 156~158쪽).
註 549
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이다. 신라의 후비제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사≫ 권88 후비전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주제분류
정치>왕실>왕족>왕후·왕비
정치>신이>생물>동물
정치>신이>생물>사람·귀신
색인어
이름 : 비처왕
지명 : 천천정,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