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술종공(述宗公)111111 신라 진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삼국유사≫ 권1 기이1 진덕왕(眞德王)조에서는 알천공(閼川公), 박종공(林宗公), 호림공(虎林公), 염장공(廉長公), 유신공(庾信公)과 더불어 국사를 의논하였던 사람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닫기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112112 삭주는 우수주(牛首州), 또는 수약주(首若州)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의 강원도 춘천 지방을 가리킨다. 도독은 주의 군정과 민정을 총관하던 직위이다. 그러나 도독이란 명칭은 785년(원성왕 원년)부터 사용되었고, 이때는 도독과 같은 직위를 총관(摠管)이라 불렀으므로 총관으로 표기해야 옳다(신종원, 「삼국유사 효소왕대 죽지랑조 역주」, ≪한국사상사학≫ 6, 1994, 99쪽).닫기가 되어 장차 임지로 가려 하는데, 이때 삼한에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3천 명으로 그를 호송하였다. 일행이 죽지령(竹旨嶺)113113 지금의 죽령으로 추정된다.닫기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이를 보고 찬탄하였고,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성함을 존대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되었다. 공이 주의 치소에 부임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더욱 놀라고 괴이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보내 그 거사의 안부를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아뢰었는데, 그가 죽은 날이 꿈꾸던 바로 그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 한 구를 만들어 무덤 앞에 봉안하였다. 부인은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더니 아이를 낳자 이름을 죽지(竹旨)라고 하였다.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부수(副帥)가 되어 유신공과 함께 삼한을 통일하였고, 진덕(眞德)·태종(太宗)·문무(文武)·신문(神文)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모죽지랑가
처음에 득오곡이 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이렇다.
간 봄 그리워하매
(임께서 더) 못 살으사 울어 설워하더이다
애닯음 나토시던 모습이
해 거듭하는 즈음에 가이더이다
눈 돌이킬 새
만나 뵙기 어찌 지으오리까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올 길
다봊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註 111
신라 진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삼국유사≫ 권1 기이1 진덕왕(眞德王)조에서는 알천공(閼川公), 박종공(林宗公), 호림공(虎林公), 염장공(廉長公), 유신공(庾信公)과 더불어 국사를 의논하였던 사람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註 112
삭주는 우수주(牛首州), 또는 수약주(首若州)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의 강원도 춘천 지방을 가리킨다. 도독은 주의 군정과 민정을 총관하던 직위이다. 그러나 도독이란 명칭은 785년(원성왕 원년)부터 사용되었고, 이때는 도독과 같은 직위를 총관(摠管)이라 불렀으므로 총관으로 표기해야 옳다(신종원, 「삼국유사 효소왕대 죽지랑조 역주」, ≪한국사상사학≫ 6, 1994, 99쪽).
註 113
지금의 죽령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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