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금강을 상대등으로 삼다 ( 655년 01월(음) )

2년 봄 정월에 이찬(伊湌) 금강(金剛)218218 655년(무열왕 2)에 이찬(伊湌)으로서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가 660년(무열왕 7)에 죽었다. 유력한 진골(眞骨) 귀족으로 추정되지만, 이외의 다른 곳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고, 파진찬(波珍湌) 문충(文忠)219219 655년(무열왕 2)에 파진찬(波珍湌)으로서 중시(中侍)가 되었다가 658년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승진하였으며, 661년(무열왕 8) 2월에는 잡찬(迊湌)으로서 상주장군(上州將軍)이 되어 사비성(泗沘城)을 구원하러 가기도 하였다. 또 668년(문무왕 8) 6월 21일에는 각간(角干)으로서 대당총관(大幢摠管)이 되어 고구려 원정군에 참여하였고, 670년 7월에는 백제의 고지(故地)를 재점령하는 데 참가하였다.닫기을 중시(中侍)로 삼았다.

註 218
655년(무열왕 2)에 이찬(伊湌)으로서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가 660년(무열왕 7)에 죽었다. 유력한 진골(眞骨) 귀족으로 추정되지만, 이외의 다른 곳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219
655년(무열왕 2)에 파진찬(波珍湌)으로서 중시(中侍)가 되었다가 658년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승진하였으며, 661년(무열왕 8) 2월에는 잡찬(迊湌)으로서 상주장군(上州將軍)이 되어 사비성(泗沘城)을 구원하러 가기도 하였다. 또 668년(문무왕 8) 6월 21일에는 각간(角干)으로서 대당총관(大幢摠管)이 되어 고구려 원정군에 참여하였고, 670년 7월에는 백제의 고지(故地)를 재점령하는 데 참가하였다.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
색인어
이름 : 금강,문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