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上海韓聞』 제1호(창간호)(1932년 1월 4일)  

『上海韓聞』 제1호(창간호)(1932년 1월 4일)

1부 대금 大洋 5分, 1년 대금 大洋 2元, 광고료 1회 1元

▪ 創刊辭

 上海는 과거 金玉均氏의 流血事件과 光武時代의 紅蔘貿易官署 設置 等으로 因하여 始作되엿든 우리와의 政治的 · 經濟的 關係는 그만두고라도 己未 3 · 1運動 以後 國內外에 散在한 革命志士와 義勇의 靑年들은 期치 안코 上海로 集合하야 政治 · 軍事 · 外交 · 宣傳 其他 모든 運動을 策進하여 왓고, 또 現에도 繼續하야 積極 進行하고 잇는 中이다. 그래서 自來로 韓國의 革命運動者치고는 上海하면 누구나 다- 策源地視 젹어도 重要視함이 事實이다.

 近來에 至하야는 더욱히 住戶日增하야 僑民總數 1,300余에 至하고 100余名의 男女 努生과 200余의 職業者와 20余의 商戶를 가지게 되엿다. 이만하면 海外生活로는 젹지 안은 集團地域이오 10數年間 努力 造成된 이 地盤은 將來에도 더욱 豊富한 發展性을 確實이 가지고 잇는 것이다. 過去에 잇어서는 報筆機關이 種種하야 革命을 鼓吹指導하는 同時에 住民의게 만흔 消息을 報道하여 주엇으나 昨春 以來로는 이것 져것할 것 업시 一種의 報道機關조차 업서지고 말앗다.

 現在의 上海僑胞로는 外國報紙를 通하야 各國 긔별을 드를 수 잇고 國內新聞을 보아 本國 事情을 알수 잇으나 上海에서 發生되는 우리 同胞間에 公私消息만은 得聞할 方便이 殆無하다. 或時로는 도로혀 外國新聞을 通하야 우리의 일을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이 잇으니, 이 엇지 革命線上에서 奮鬪하는 者의 任務이며 國際市場에서 活躍하는 者에 本意라 할가. 이는 무엇보다 遺憾 中 遺憾이다.

 이에 本報는 이러한 모든 遺憾的 現狀에 感한바 잇어 在留同胞에게 報道的 使命을 自任하고 超然한 立場에서 1週 1次식 諸氏의게 消息을 報達코져 하여 決코 어느 一派一級의 權益을 擁護하거나 黑赤何係의 主義를 宣傳키 爲함이 아니다. 僑胞諸位의 만흔 指導와 贊助로써 本報로 하야금 本來의 使命을 完케 함이 잇다면 우리 民族의 革命進行上 또 海外發展上 이만한 當幸이 업으리라고 밋는다.

▪ 李博士의 開業

 刀圭界에 泰斗 獨逸醫學博士 李星鎔氏는 診所를 霞飛路 267號 內 85號에 定하고 內外患者의 請診에 應한다고

▪ 紅疫流行

 本埠에 紅疫이 流行함은 己知하는 바여니와 閔丙吉氏의 孫女 孫男이 次第로 紅疫에 걸녀서 辛苦中이라더니 昨今에는 經過가 頗히 良好하다며 朴昌世氏의 女兒와 崔景燮氏의 男兒도 方在 紅疫中이나 亦是 經過가 良好하다고

▪ 獨孤律에 退去處分

 今次 天津 高麗物産公司를 襲行한 强盜의 連累로 上海에 逃避潛伏하엿든 獨孤律은 自稱 共産黨員으로 모루하비 密賣業者일 뿐 아니라 素性이 浮浪하야 將次 當地 僑胞에게 또 如何한 害毒을 貽할 憂慮가 이슴으로 民團當局에서는 嚴重 說諭한 後에 退去를 命하야 大連船便으로 黜送하엿다고

▪ 可驚할만치 貧弱한 民團收入, 僑留同胞의 覺醒이 必要

 上海僑民團의 昨年度 收入을 聞하건대 民團稅와 其他를 合하야 500圓 內外라고 한다. 아- 이것이 1,000餘 僑胞의 共公事務를 處理하는 公團의 1年 總收入이라면 엇지 可驚치 안을 수 잇을가. 1個人의 生活비에도 不足할만한 少額이나 이러한 한 少額의 金錢으로는 民團職員이 아모리 不食不衣하는 生佛이라 할지라도 事務費에도 半不足되는 經費로야 事務處理가 엇지 順進될 수 잇을가. 一般僑胞의 覺醒할 必要가 잇다고 생각된다.

▪ 公平社大會 流會

 去 12月 29日에 開하기로 預定하엿든 公平社大會는 出席員의 不足으로 流會되엿다고

▪ 東亞日報 販賣部

 白基俊氏는 東亞日報 上海販賣部를 經營하야 新年號부터 取扱한다고

▪ 仁校 開學

 仁成學校에서는 1月 4日에 開學式을 行하고 同 5日부터 上學을 始作한다고

▪ 李氏 臥病

 李裕弼氏는 肩痺症으로 約 3週日 前부터 委席中시라고

▪ 民團制改正-臨時政府의 新意圖, 海外組織의 刷新機

 臨時政府에셔는 上海民團議事會에서 建議한 民團制改正案을 國務會議에 上程하야 爾來 審議에 審議를 加하여 오든바 去 27日 國務會議에 精査通過되야 28日 付로 頒布하엿는데 全文이 29介條로 되엿고 改正된 內容을 略擧하면

 1. 團長 1人의 獨裁制를 3人 以上의 委員制로 한 것.

 2. 審判處를 另設하야 行政과 司法을 分立한 것.

 3. 庶務 · 財務 · 警務의 部署를 置하야 事務를 分掌케 한 것.

等으로 時宜民度에 가장 適合한 改正으로 海外僑胞의 組織刷新에 大機會라고

▪ 金博士 別世說

 天津 北洋大學에 敎授로 잇든 金奎植 博士가 本出示인 腦病으로 別世하엿다는 傳說이 有하나 事實이 不明하야 後報를 待하는 中이라고

▪ 民團議事會

 民團制改正에 伴하야 新舊職員의 選解任과 預算의 編成 等 緊急事項을 處理키 爲하야 來 6日 開會하기로 定하엿다고

▪ 新年祝賀會

 臨時政府에서는 政府議院民團의 議院職員과 各 團體代表를 招請하야 元旦 上午 10時 民團大廳에서 新年祝賀會를 開하엿는대 趙琬九氏의 式辭와 車利錫 · 趙尙燮 · 金哲 諸氏의 祝辭가 有한 後 萬歲殷裒에 閉式하엿다고

▪ 興士團例會

 興士團 遠東地方團友會에서는 月例會를 1月 2日 下午 7時 半에 善鐘路團所에서 團友 30餘名과 傍聽人 20餘名이 모여 愛國歌로 開會하고 各部 報告를 맛춘 뒤에 새해 各部 任員選定과 安昌浩氏의 講演이 잇섯는대 우리 人類가 해를 지낼사록 向上되고 前進되는 것은 自然原則이니 過去만 보아 悲觀하지 말고 이 原則을 連想하면셔 向上과 前進에 努力하고 奮鬪하면 우리의 目的到達을 굿게 밋는다는 題로 一般聽衆에게 만은 엇음을 주고 同 10時에 入團歌로 閉會한 後 니여 茶菓會가 有하엿다고

▪ 崔飛行士 來滬

 南京航空隊에 在職 中인 飛行士 崔用德氏는 年末 休暇를 利用하야 約 1週日 前에 來沪하엿는대 將次 武漢方面으로 轉任된다고

▪ 民團新幹部 人選에 人氣集中

 別項報道와 如히 來 6日 議事會에셔는 政務委員과 審判員을 選任할 터이라는데 議事員들은 數日來로 其 適任者 物色에 腐心하야 民間有力者에게 密密問議하는 일도 잇고 議員互相間에도 意見交換에 密勿하다는바 漏聞한바에 依하면 政務委員에 金九 · 閔丙吉 · 嚴恒燮 · 趙尙燮 · 崔錫淳 · 鮮于爀 諸氏의 說이 가장 有力하고 審判員에는 李始榮 · 李裕弼 · 金思潗 · 安昌浩 · 金澈 諸氏의 呼聲이 最高하다는데 强盜가 橫行하고 內外가 多事한 此際에 新幹部人選에 適否는 實로 僑胞의 安危關係됨이 만타 하야 各 方面의 人氣는 此에 集中되여 잇는 中이라고

▪ 少年同盟 流會

 去 1月 2日은 少年同盟 執行委員會의 定例會日인바 定刻이 1時間이나 지나도록 缺席員이 出席員보다 만아서 流會되고 말앗다고

▪ 公平社總會-今晩 七時에

 1次 流會되엿든 公平社總會는 今晩 7時에 다시 開會한다는데 營業開始와 其他 重要事項을 討議할터임으로 全體 社員의 總出席을 希望한다 하였고 前次에 流會 延期한 것도 亦是 此를 爲함이라고

▪ 愛國婦人會

 12月 2日 愛國婦人會 定例會는 下午 8시 반에 開會하여 同 9時에 閉會하엿다는데 執事長의 恒例的 感想談이 잇섯슬 뿐이오 아모런 決議도 報告도 업고 甚至於 上程討議된 問題까지도 업섯다 한다. 新年劈頭에 모히면 幹部會議라 하야 年中 工作에 關한 만흔 問題의 討議가 잇슬줄로 밋엇든 一部에는 失望이 업지안타고

▪ 金履大氏 外艱

 南滿一帶를 舞臺로 하고 爾來 10餘 年間 復國運動에 盡瘁하든 金履大氏는 倭兵의 吉林佔領과 同時에 中東線方面으로 避身하고 69歲의 其 父親은 남아지 食口와 갓치 집을 직히고 잇든 中 去 12月 10日 馬賊의 被害로 別世하엿다고

▪ 申氏의 忽來忽去와 大陸坊에 密會

 南京政府에 在職하는 申翼熙(一名 王海公)氏는 去 12月 28日에 忽然 來滬하얏다가 1月 1日 夜車로 歸寧하엿다는 바 滯滬 中 友人의 尋訪도 別無하고 다만 成 · 崔 · 尹과 멧 知舊와는 數次의 密會가 잇섯다고

▪ 軍人會 成立

 엇던 消息通의 報道에 依하면 最近에 在滬 僑胞 中 軍士敎育을 受한 者와 軍人軍屬에 服務한 者를 合하야 留滬韓國軍人會가 組織되엿다는데 目的은 軍事計劃을 硏究確立함과 軍事學術을 靑年에게 訓鍊함과 軍士團體의 聯絡統一을 促進할 것 等이라 하며 規則制定, 幹部選擧까지도 完了되여 不日中 宣言을 發布하리라는대 宣言發布 前에는 諸般을 秘密에 付한다고

▪ 謹賀新年

 元昌公司 趙尙燮 東明照相館 朴容喆

 百濟藥房 孔凱平 茂林公司     李枝善

 金文公司 金時文 惠生醫院     崔惠淳

 濟衆藥房 李甲成 華東貿易公司 朴震

 林盛公司 林承業 愛兆公司     林成基

▪ 國史編纂委員會,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20(臨政篇 Ⅴ), 1991, 303~3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