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고려사 > 세가 권제1 > 태조(太祖) 원년 > 6월 >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丁巳 詔曰, “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未及兼幷海內, 俄以酷暴御衆, 以姦回爲至道, 以威侮爲要術. 徭煩賦重, 人耗土虛. 而猶宮室宏壯, 不遵制度, 勞役不止, 怨讟遂興.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朕資群公推戴之心, 登九五統臨之極, 移風易俗, 咸與惟新. 宜遵改轍之規, 深鑑伐柯之則. 君臣諧魚水之歡, 河海協晏淸之慶, 內外群庶, 宜悉朕懷.” 群臣拜謝曰, “臣等値前主之世, 毒害良善, 淫虐無辜, 老稚嗷嗷, 莫不含寃. 幸今得保首領, 遭遇聖明, 敢不竭力, 以圖報效.”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정사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궁예[前主]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나 천하[海內]를 다 아우르는 데 미치지 못하고 갑자기 잔혹함과 포악함으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간사함[姦回]을 가장 올바른 것[至道]으로 여기고 위협과 업신여김을 중요한 방법으로 삼았다. 요역(徭役)이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무거워 사람은 줄어들고 땅은 텅 비었다. 그런데 오히려 궁실만은 크고 장대하며 옛 제도를 따르지 않고 힘든 요역이 그치지 않으니 원망과 비난이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여러 공(公)의 추대하는 마음에 힘입어 가장 높은 자리[九五]에서 관할하는 궁극에 올랐으니, 나쁜 풍속을 좋게 고치고 모든 것을 다함께 새롭게 만들려 한다[咸與惟新]. 마땅히 법도를 고칠 규범을 쫓을 것이며 깊이 가까운 데서 얻는 원칙[伐柯之則]을 거울삼을 것이다. 임금과 신하는 같이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어울려 즐거워할 것[魚水之歡]이며 온 천하는 태평시대의 경사[晏淸之慶]를 도우리니 나라의 뭇 백성은 마땅히 나의 뜻을 다 알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가 절을 올리며 사례하여 말하기를, “신(臣) 등은 궁예[前主]가 다스리던 때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악독한 피해를 입고 죄 없는 사람이 잔악한 학대를 받아 노소(老少)가 원망하고 떠들며 원통함을 품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제 머리와 목을 보전하여[得保首領] 성스럽고 현명한 임금을 만났으니, 감히 힘을 다하여 은혜에 보답하기를 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