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의 기록
고려세계(高麗世系)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正憲大夫 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春秋館事 兼 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가 교(敎)를 받들어 편수하였다.
고려의 선대는 기록이 빠져 자세하지 않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즉위 2년(919)에 왕의 삼대조고(三代祖考)를 추존하여 시조의 존시(尊謚)를 책봉해 올리니 원덕대왕(元德大王)이라 하고 비(妣)는 정화왕후(貞和王后)라 하였으며, 의조(懿祖)는 경강대왕(景康大王)이라 하고 비는 원창왕후(元昌王后)라 하였으며, 세조(世祖)는 위무대왕(威武大王)이라 하고 비는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正憲大夫 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春秋館事 兼 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가 교(敎)를 받들어 편수하였다.
고려의 선대는 기록이 빠져 자세하지 않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즉위 2년(919)에 왕의 삼대조고(三代祖考)를 추존하여 시조의 존시(尊謚)를 책봉해 올리니 원덕대왕(元德大王)이라 하고 비(妣)는 정화왕후(貞和王后)라 하였으며, 의조(懿祖)는 경강대왕(景康大王)이라 하고 비는 원창왕후(元昌王后)라 하였으며, 세조(世祖)는 위무대왕(威武大王)이라 하고 비는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였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