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왕의 검소함을 밝혀 紋緞을 申禁하는 일에 관한 傳敎
문단을 금하는 일은 바로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 검소(儉素)를 밝히고 사치를 근절하시려는 성덕(盛德) 대업(大業)이다. 신충(宸衷 : 임금의 마음)으로 건단(乾斷)하셔 길이 연모(燕謨 : 자손을 감싸는 가모(嘉謨))를 끼치심이니 비록 귀근(貴近)과 호강(豪强)의 집에 있어서도 감히 위월(違越)할 수 없겠으나 다만 세월이 오래되니 그릇된 습성이 남몰래 자라나 무늬가 있는 금단(錦緞) 등속을 비록 들어내놓고 입지는 않더라도 별문(別紋)의 나주(羅紬) 따위를 마치 상용물(常用物)처럼 보니 부녀자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서로 더욱 잘못을 본받게 된다. 이를 금하지 않으면 어떻게 탕연하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성상께서 성헌(成憲 : 이미 제정된 국법)에 비추어 특별히 신금을 명하시니 금년 사신 행차부터 삼가 선조 수교와 지금 내리신 전교에 따라 거듭 밝히고 금제(禁制)하되 합행조건을 사목으로 만들어 좌에 조열(條列)한다.
1. 곤의(袞衣) 운문(雲紋)·첩리(帖裏) 용문(龍紋)·적의(翟衣) 금선(金縇) 혹 향직(鄕職)·연여(輦輿) 운문(雲紋)에 소용되는 단품(緞品)은 종전대로 거행한다.
1. 명부(命婦)의 장복(章服)은 종전대로 향직(鄕職 : 우리나라 직물)으로 한다.
1. 조신(朝臣)의 장복(章服)과 융복(戎服)은 아울러 운문(雲紋)을 쓴다.
1. 장신(將臣) 이하의 군복(軍服)은 본래 정제(定制)가 없이 단사(緞紗)를 막론하고 여러 무늬를 섞어 썼기 때문에 각종 문품(紋品)이 이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 이 뒤로는 운문(雲紋)과 상사(賞賜)의 단사(緞紗), 대첩문(大堞紋) 이외의 제반 문품(紋品)은 쓰지 못한다.
1. 문단(紋緞)을 금지한 뒤에 만일 주우사(注雨紗) 항라(杭羅) 개지주(改只紬) 소릉(小綾)의 무늬가 있는 것을 혼구(婚具)와 연복(燕服)에 쓰면 사치하는 습성이 되레 문단을 쓸 때보다 심하니 이번에 신금(申禁)하는 명은 대체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명색은 일체 엄금한다.
1. 사신 행차가 왕래할 때에 수검(搜檢)하는 법이 근래에는 점차 해이해졌으니 이렇듯 문단을 신금할 때에는 별반으로 엄히 신칙하는 도리가 있어야 하니 착념(着念)하고 거행하여 중죄(重罪)에 빠지지 않게 한다.
1. 이번의 이 제조(諸條)는 사신 행차에서 가지고 사목(事目)에 일체로 첨입(添入)한다.
1. 하교하신 대로 의주부(義州府)와 사역원에는 게판(揭板)하고 비변사·사헌부·형조·한성부에는 책자를 인출하여 비치하고 오부(五部)와 팔도(八道)·양도(兩都)는 등초(謄抄) 발관(發關)하여 알려서 모범(冒犯)의 폐단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한다.
1. 미진한 조건은 추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