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남해안을 따라 항해하다
[9월] 8일
註 659나쁜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두려웠으나 바람이 없어서 떠날 수가 없었다. 배의 사람들은 거울 등을 바치며 신에게 제사 지내고 바람을 구하였다. 승려 등은 이 섬의 토지신註 660과 대인신(大人神), 소인신(小人神)註 661 등을 위하여 향을 피우고 다 같이註 662 본국에 도달할 수 있도록 불경을 외며 기원하였다. 즉 그곳에서 이곳 토지신과 대인신·소인신 등을 위하여 ≪금강경≫註 663 100권을 전독(轉讀)하였다. 오전 4시경에 이르러 비록 바람은 없었으나 출발하였다. 포구를 겨우 빠져 나가니 서풍이 갑자기 불어왔다. 곧 돛을 올리고 동쪽을 향해 갔다. 마치 신묘한 이치가 있어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산들이 있는 섬을 따라 그 사이를 가니, 남북 양쪽에 산과 섬으로 겹겹이 겹쳐져 느긋하게 퍼져 있었다. 오전 10시註 664가 될 무렵 안도(雁嶋)註 665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이곳은 신라의 남쪽 땅으로 왕실註 666에서 말을 방목해 기르는 산이다. 동쪽 가까이에는 황룡사의 장전이 있는데, 띄엄띄엄 인가 두세 군데가 있다. 서남쪽으로는 멀리 탐라도가 보인다. 오후에는 바람이 다시 좋아져 배를 출발시켰다. 산들이 있는 섬을 따라 신라국의 동남쪽에 이르렀다가 큰 바다로 나아갔다. 동남쪽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註) 659
초본에는 “九月” 및 “日”자가 빠져있으나, 기사에 따라 보충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6쪽).바로가기
註) 660
중국의 전통적인 토지신은 사(社)이다. 별도로 도교적인 토지신도 있으며, 현재에도 토지묘(土地廟)가 있고 이를테면 일본의 태어난 고장의 수호신이 각 지역에서 제사된다. 토지신 신앙은 주욱에 한하지 않고 신라에도 있었으니, 토지를 지배하는 만능신으로서, 선두(船頭)에서 발원하는 제사라고 할 것이다. 제사에 쓰였던 경(鏡) 등을 던졌다는 기록은 개성 4년 5월 2일조에 보인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1
대명신(大明神), 소명신은 ≪연희식(延喜式)≫에도 보인다. 대인, 소인도 아마 신격의 별칭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일본류의 천신지기는 아니고 차라리 신라 고유의 신을 가리킬 것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2
원문에는 “平等”이라고 하였다. 다같이 또는 모두라는 의미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3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줄임말이다. 구마라즙 번역 1권이다. 예부터 널리 독송되었고, 당대 이후는 특히 선종이 받들어졌다. 그 영이함에 관한 설화도 많으며, ≪반야경≫, ≪법화경≫ 등과 함께 제재(除災)의 목적으로 자주 전송되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4
원문에 “巳”라고 되어 있다. 오전 10시 전후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5
전라남도 완도의 동남쪽에 산재한 섬 모두라고 생각되나, 지금은 비정이 어렵다. 라이샤워는 여수(麗水)의 남쪽 30km에 있는 안도(安島)의 “安”과 “雁”의 음이 유사하고 지리적으로도 적당하여 이에 비정하였다(.E.D. 403쪽)(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註) 666
원문에는 내가(內家)라고 하였다. 내리(內裏)라는 말과 같다. 여기서는 신라의 궁정 후궁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당 설능(薛能)의 오희시(吳姬詩)(≪전당시≫ 권561)에도 “身是三千第一名 內家叢裏獨分明 芙蓉殿上中元日 水泊銀臺弄化生”이라고 하였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317쪽).바로가기
주제분류
  • 문화>사상>불교사상>의례·결사
색인어
서명
국명
디지털역사자료 인용방법
닫기
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오류신고
닫기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이트 하단의 ‘오류신고’ 메뉴를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자료명
입당구법순례행기
자료위치
자료상세화면
자료 선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