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문
태창(太昌) 원년註 001 세차(歲次) 무자 ▨▨註 002 21일 ▨▨註 003 ▨흥태왕(▨興太王)註 004이 ▨▨註 005를 순수(巡狩)註 006하여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바로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이다. 어릴 적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심맥부(深麥夫)라고 하였다.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며, 태후는 지소부인(只召夫人)이고, 왕후는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어린 나이인 7세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섭정을 하였으나 재위 12년에 “개국”이라고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직접 친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 통치 기간은 신라가 사방으로 확장하는 시기이자 내적으로 정치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또한 점령한 영역과 주민을 신라의 영토와 신민으로 삼기 위하여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무릇 순풍(順風)註 007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의 도리가 참되지 않고, 그윽한 덕화(德化)가 펴지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 서로 경쟁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왕이 연호를 제정함에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修己以安百姓]註 008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짐은 왕위에 오르는 운수[歷數]註 009가 자신에 이르러, 위로는 태조註 010의 기틀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여, 몸을 조심하며 스스로 삼가나 하늘의 도리[乾道]註 011를 어길까 두렵다. 또한 하늘의 은혜를 입고 운수를 열어 보며, 그윽한 가운데 신기(神祇)註 012에 감응되어 하늘이 내리는 명령에 응하고 신령한 징후에 적합하였다.註 013 이로 말미암아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四方託境]註 014 널리 백성과 토지를 획득하니, 이웃 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친하는 사신이 서로 통하여 오게 된다.註 015 아래로 스스로 헤아려 신민(新民)과 구민(舊民)[新古黎庶]註 016을 어루만졌으나 오히려 왕도의 덕화가 고루 미치지 아니하고 은혜가 베풀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에 무자년 가을 8월에 영토를 순수하여 민심을 살펴 위로하고 선물을 내려주고자 한다. 만약 충성과 신의와 정성이 있거나, 재주가 뛰어나고 재난의 낌새를 살피며, 적에게 용감하고 전쟁에 강하며,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한 공이 있는 무리에게는 벼슬을 상으로 더하여 주고 그 공훈을 표창하고자 한다. 수레를 이끌고 나가 10월 2일 계해에 이르러 … 인하여 변방지역을 타일렀다.
이때 수레를 따른 인물로, 사문(沙門)註 017 도인(道人)註 018은 법장(法藏)과 혜인(慧忍)이다. 대등(太等)註 019은 훼부(喙部)註 020의 거칠부지(居朼夫智)註 021 이간(伊干),註 022 내부지( 內夫智)註 023 이간(伊干), 사훼부(沙喙部)註 024의 무력지(另力智)註 025 잡간(迊干)註 026 훼부의 복동지(服冬智)註 027 대아간(大阿干),註 028 비지부지(比知夫知) 급간(及干),註 029 미지(未知) 대내말(大奈末),註 030 급진부지(及珎夫知) 내말(奈末)註 031이다. 수레를 잡은 인물[執駕人]註 032은 훼부의 만혜(萬兮) 대사(大舍),註 033 사훼부의 무지(另知) 대사이다. 궁중에서 왕을 모시는 인물[裏內從人]註 034은 훼부의 몰혜차(沒兮次) 대사, 사훼부의 비시지(非尸知) 대사이다. 약인(𩥩人)註 035은 사훼부의 위충지(爲忠知) 대사이고, 점인(占人)註 036은 훼부의 여난(与難) 대사이고, 약사(藥師)註 037는 매지차(罵支次)註 038 소사이다. 내부통전(奈夫通典)註 039은 본피부(本彼部)註 040의 가량지(加良知) 소사(小舍)註 041이고, ▨▨는 본피부의 막사지(莫沙知) 길지(吉之)註 042이다. 급벌참전(及伐斬典)註 043은 훼부의 부법지(夫法知)註 044 길지이다. 이내(裏內)▨▨▨▨▨▨▨명 길지이고, 당래객(堂來客)註 045과 이내객(裏內客)註 046은 50〈인〉註 047이고, 외객(外客)註 048은 ▨▨註 049▨▨▨▨▨▨▨▨▨▨註 050지 사간(沙干)註 051이다. 조인(助人)註 052은 사훼부의 순지(舜知)註 053 내말이다.
註) 001
註) 004
바로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이다. 어릴 적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심맥부(深麥夫)라고 하였다.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며, 태후는 지소부인(只召夫人)이고, 왕후는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어린 나이인 7세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섭정을 하였으나 재위 12년에 “개국”이라고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직접 친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 통치 기간은 신라가 사방으로 확장하는 시기이자 내적으로 정치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또한 점령한 영역과 주민을 신라의 영토와 신민으로 삼기 위하여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註) 010
註) 018
註) 021
註) 025
註) 027
註) 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