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김인문 묘비 (金仁問 墓碑)
소재지/출토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서원의 누문(樓門) 아래
연대 695년(효소왕 4년) 이후
크기 현존 길이 63.0㎝, 너비 94.5㎝,두께 18.4㎝.
서체 및 재질 행서체
화강암
주제분류 통일신라|문화> 문화재> 금석문> 碑文|비문
찬자 / 서자 / 각자 미상
역주자 김재홍
판독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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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을 만한 인재인지라001001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을 만한 인재인지라 : 원문 ‘동량지재(棟梁之材)’의 동량은 집을 이루는 중요한 가구인 마룻대와 들보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감당할 만한 재목을 일컫는다.닫기
[02] … 병부(兵符)002002 병부(兵符) : 군대를 움직이는 병권을 나타내는 표지이다.닫기는 ▨조(▨爪)를 만들고, ▨룡훈고(▨龍薰孤)의 경사(經史)는 …
[03] … ▨오지군(▨五之君)이라, 소호(少皥)003003 소호(少皥) : 소호(少昊)라고도 한다. 중국 성현인 5제(五帝)의 한 사람으로 황제의 아들이다. 즉위할 때에 봉황이 나타났으므로 관직명을 모두 새의 이름으로 하였다고 하며, 금덕(金德)을 받아 즉위하였으므로 후에는 가을과 서방을 주관하는 신으로 섬겼다.닫기는 ▨허(▨墟)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金天)004004 금천(金天) : 소호를 가리키며, 그가 금덕을 받아 즉위하여 금천씨(金天氏)라고 불렸다.닫기은 …
[04] … 태조(太祖) 한왕(漢王)005005 태조(太祖) 한왕(漢王) : 「경주 문무왕릉비」에 보이는 “십오대조성한왕(十五代祖星漢王)”으로 보아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인 성한왕과 연결시키거나, 한나라 고조인 유방으로 보기도 한다.닫기은 천년의 ▨을 열고, ▨성은 백곡(百谷)의 ▨▨에 임하셨다. …
[05] … 한나라 장수 손책(孫策)006006 손책(孫策) : 중국 후한(後漢)의 장군이며,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견(孫堅)의 아들이자 손권(孫權)의 형이다. 강동(江東)에 근거하면서 한(漢)의 황실을 맞이하려 하다가 자객에게 암살되었다. 아우 손권이 황제가 되면서 장사왕(長沙王)으로 추봉되었다.닫기은 삼강(三江)007007 삼강(三江) :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대호에서 흘러 내려가는 3개의 강을 말하며, 흔히 강동지역을 가리킨다. 손책이 죽으면서 삼강을 가지고서 국가를 잘 지키라는 유언을 한 것에서 연유한다.닫기을 근거지로 하여 …
[06] … 할아버지 문흥대왕(文興大王)008008 문흥대왕(文興大王) : 김인문의 할아버지이자 김춘추의 아버지인 용춘을 말한다. 국인들에게 폐해진 왕인 진지왕의 아들이며 伊飡의 벼슬에 올랐다. 후에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뒤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닫기께서는 사물의 기미를 미리 알아차림이 신과 같은 분으로 …
[07] … ▨호(▨號)의 효력을 … 하니, 본성이 다 ▨성하여지고, 여유로움이 후손에게 드리웠다. …009009 여유로움이 후손에게 드리웠다 : 원문은 ‘수유후곤(垂裕後昆)’으로 후곤(자손)에게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이다.닫기
[08] …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010010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원문 ‘해목(駭目)’은 남의 눈과 귀를 놀라게 한다는 ‘해인이목(駭人耳目)’의 준말이다.닫기 정관(貞觀) 21년(647)011011 정관(貞觀) 21년(647) : 당나라 태종 21년이자 신라 진덕왕 즉위년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김춘추가 중국에 사신을 간 해가 진덕왕 2년(648년)으로 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닫기 황제께서 〈김춘추에게〉 특진(特進)012012 특진(特進) : 한(漢)의 제후, 왕공, 장군 중에서 특별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작호이며, 삼공(三公)의 아래에 해당하였다. 당에서 특진은 정 2품에 해당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진덕왕 2년(648)에 김춘추가 당에 들어가 조공을 바치자, 당 태종이 특진의 관작을 내렸다고 한다.닫기을 내리시니 그 영예는 … 만큼 높은 것이라 …
[09] … 의장은 좌초우선(左貂右蟬)013013 좌초우선(左貂右蟬) : 중국에서 고관의 관 장식으로 사용하였으며, 관에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로 장식한 것을 가리킨다. 직위가 높아 황제에게 조회할 수 있는 조관(朝冠)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김춘추가 신라의 의관제(衣冠制)를 중국식으로 고치려 한 것을 말한다.닫기의 예를 따라, 중국의 예법대로 정하여 아뢰었다. …
[10] … 〈당나라〉 고종황제도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김춘추는 도량이 깊으니 …
[11] … 신라왕으로 삼노라” 하였다. 김인문 공께서는 이에 월▨(月▨)를 지켜서 따로 성하(星河)014014 성하(星河) : 은하수로서 신라 김씨 왕실의 혈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닫기를 간발(幹發)하고 원척(原戚)을 파견하였다. …
[12] … 〈황제께서는〉 멀리 푸른 바다를 건너와 궁궐015015 궁궐 : 원문 ‘강궐(絳闕)’은 붉게 칠한 대궐문이라는 뜻으로, 황제의 대궐을 가리킨다.닫기에 조회하여 제후의 직분016016 제후의 직분 : 원문 ‘번직(藩職)’은 제후가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을 지칭한다.닫기을 이지러뜨리지 않음을 가상히 여겼다. …
[13] … 〈신라에 돌아와〉 천▨(千▨)의 치첩(雉堞)017017 치첩(雉堞) : 성위에 쌓은 담을 지칭한다.닫기을 〈쌓으니〉, 높은 담018018 높은 담 : 여기서는 태종무열왕 3년(656)에 쌓은 장산성(獐山城)을 뜻한다.닫기들이 비단 물결치듯 하였다. …
[14] … 태종대왕(太宗大王)019019 태종대왕(太宗大王) : 신라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를 가리킨다.닫기께서 그 공적에 대해 감탄하여 아름답게 여기고는 특별히 식읍(食邑) 300호020020 식읍(食邑) 300호 :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인문은 태종무열왕 3년(656)에 압독주총관(押督州摠管)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그 공으로 식읍 3백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닫기를 내렸다.
[15] … 공께서 모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팔진(八陳)을 열어서 …
[16] … 〈백제가〉 황제의 명을 어기자,021021 황제의 명을 어기자 : 원문 ‘배조(背詔)’는 황제의 조(詔)를 배반하였다는 뜻으로, 당나라가 백제를 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을 백제가 거스른 것이다.닫기 크나큰 병력이 황제의 노여움에 의지하여 … 수레를 끄니, 공은 의로움과 용감함에서 당시에 으뜸이었다. …
[17] … 백제를 … 하여 ▨호(▨豪)를 … 하니, 〈백제 의자왕은〉 군영022022 군영 : 원문의 ‘원문(轅門)’은 수레 앞 양쪽에 대어 수레를 끄는 긴 채로 만든 문, 즉 군문(軍門)을 말한다. 여기서는 백제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킨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의 군대가 머문 군영을 뜻한다.닫기에 와서 머리를 숙이고, 흉악한 무리들은 흙이 무너지듯 무너졌다.023023 흙이 무너지듯 무너졌다 : 원문은 ‘토붕(土崩)’으로, 흙이 무너지듯 일이 잘 안되어 도저히 손을 쓸 여지가 없음을 뜻한다.닫기
[18] … 〈고구려가〉 큰 나라를 섬기는 예법을 거스르자, 황제께서 발끈 성을 내어 …
[19] … 〈문무왕은〉 공에게 부대총관(副大總管)024024 부대총관(副大總管) :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소정방은 요동행군대총관(遼東行軍大摠管)이었으므로, 김인문은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이었을 것이다.닫기의 직위를 주고 성대하게 군사들을 모아 군량미를 옮기게 하였다. …
[20] … 병사들은 적의 땅을 가로질러 … 하여 호로수(瓠盧水)025025 호로수(瓠盧水) : 김유신과 김인문 등이 평양의 당나라 군대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구려 군대와 마주쳐 전투를 벌인 곳이다. 『삼국사기』 권7 문무왕 11년조에 보이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에 보낸 답서에는 ‘호로하(瓠瀘河)’로 나오고,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호로하(瓠盧河)’로 나온다. 지금의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에 비정되고 있다.닫기로 되돌아갔다.
[21] … 물가 언덕에 이르렀다. 공은 곧 …
[22] … 만 여 급026026 만 여 급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조에는 김인문이 평양성에서 후퇴하면서 고구려 군사 1만 여 급을 베었다는 기사가 보인다.닫기의 〈목을 베었다〉. 이때에 이르러 구름같이 많은 용맹한 장수들이 공의 뛰어난 병법 운용027027 뛰어난 병법 운용 : 원문 ‘용표지도(龍豹之韜)’는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의 일부로, 뛰어난 전술 운용을 가리킨다.닫기을 우러러 보았으며, 비 같이 많은 모▨들이 …
[23] … 황제께서 명을 내리기를, “… 충성스럽고 과감하게 힘을 다하였으므로, 그대에게 법식에 따라 상을 내려 … 하노라”라고 하였다. …
[24] … ▨▨의 ▨를 ▨▨하고, 여섯 ▨의 계(禊)028028 계(禊) : 음력 3월 첫 번째 뱀날(上巳日)에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닫기를 ▨하며, 덕을 기록하여 등촌(登村)의 예를 벌리니, 이는 … 을 아는 것이라. …
[25] … 천인(天人)의 ▨를 접하였다. …
[26] … 건봉(乾封) 원년(666) 〈우효위대장군(右驍尉大將軍)〉 개국▨(開國▨)029029 개국▨(開國▨) : 김인문의 작위 중 일부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개국공(開國公)’이 신문왕 원년(690)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김인문에게 내린 작위의 일부로 나온다. 그 당시의 정식 작위는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임해군개국공(臨海郡開國公)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이었다.닫기을 더해 주었다…

註 001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을 만한 인재인지라 : 원문 ‘동량지재(棟梁之材)’의 동량은 집을 이루는 중요한 가구인 마룻대와 들보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감당할 만한 재목을 일컫는다.
註 002
병부(兵符) : 군대를 움직이는 병권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註 003
소호(少皥) : 소호(少昊)라고도 한다. 중국 성현인 5제(五帝)의 한 사람으로 황제의 아들이다. 즉위할 때에 봉황이 나타났으므로 관직명을 모두 새의 이름으로 하였다고 하며, 금덕(金德)을 받아 즉위하였으므로 후에는 가을과 서방을 주관하는 신으로 섬겼다.
註 004
금천(金天) : 소호를 가리키며, 그가 금덕을 받아 즉위하여 금천씨(金天氏)라고 불렸다.
註 005
태조(太祖) 한왕(漢王) : 「경주 문무왕릉비」에 보이는 “십오대조성한왕(十五代祖星漢王)”으로 보아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인 성한왕과 연결시키거나, 한나라 고조인 유방으로 보기도 한다.
註 006
손책(孫策) : 중국 후한(後漢)의 장군이며,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견(孫堅)의 아들이자 손권(孫權)의 형이다. 강동(江東)에 근거하면서 한(漢)의 황실을 맞이하려 하다가 자객에게 암살되었다. 아우 손권이 황제가 되면서 장사왕(長沙王)으로 추봉되었다.
註 007
삼강(三江) :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대호에서 흘러 내려가는 3개의 강을 말하며, 흔히 강동지역을 가리킨다. 손책이 죽으면서 삼강을 가지고서 국가를 잘 지키라는 유언을 한 것에서 연유한다.
註 008
문흥대왕(文興大王) : 김인문의 할아버지이자 김춘추의 아버지인 용춘을 말한다. 국인들에게 폐해진 왕인 진지왕의 아들이며 伊飡의 벼슬에 올랐다. 후에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뒤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註 009
여유로움이 후손에게 드리웠다 : 원문은 ‘수유후곤(垂裕後昆)’으로 후곤(자손)에게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이다.
註 010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원문 ‘해목(駭目)’은 남의 눈과 귀를 놀라게 한다는 ‘해인이목(駭人耳目)’의 준말이다.
註 011
정관(貞觀) 21년(647) : 당나라 태종 21년이자 신라 진덕왕 즉위년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김춘추가 중국에 사신을 간 해가 진덕왕 2년(648년)으로 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
註 012
특진(特進) : 한(漢)의 제후, 왕공, 장군 중에서 특별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작호이며, 삼공(三公)의 아래에 해당하였다. 당에서 특진은 정 2품에 해당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진덕왕 2년(648)에 김춘추가 당에 들어가 조공을 바치자, 당 태종이 특진의 관작을 내렸다고 한다.
註 013
좌초우선(左貂右蟬) : 중국에서 고관의 관 장식으로 사용하였으며, 관에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로 장식한 것을 가리킨다. 직위가 높아 황제에게 조회할 수 있는 조관(朝冠)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김춘추가 신라의 의관제(衣冠制)를 중국식으로 고치려 한 것을 말한다.
註 014
성하(星河) : 은하수로서 신라 김씨 왕실의 혈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註 015
궁궐 : 원문 ‘강궐(絳闕)’은 붉게 칠한 대궐문이라는 뜻으로, 황제의 대궐을 가리킨다.
註 016
제후의 직분 : 원문 ‘번직(藩職)’은 제후가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을 지칭한다.
註 017
치첩(雉堞) : 성위에 쌓은 담을 지칭한다.
註 018
높은 담 : 여기서는 태종무열왕 3년(656)에 쌓은 장산성(獐山城)을 뜻한다.
註 019
태종대왕(太宗大王) : 신라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를 가리킨다.
註 020
식읍(食邑) 300호 :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인문은 태종무열왕 3년(656)에 압독주총관(押督州摠管)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그 공으로 식읍 3백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註 021
황제의 명을 어기자 : 원문 ‘배조(背詔)’는 황제의 조(詔)를 배반하였다는 뜻으로, 당나라가 백제를 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을 백제가 거스른 것이다.
註 022
군영 : 원문의 ‘원문(轅門)’은 수레 앞 양쪽에 대어 수레를 끄는 긴 채로 만든 문, 즉 군문(軍門)을 말한다. 여기서는 백제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킨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의 군대가 머문 군영을 뜻한다.
註 023
흙이 무너지듯 무너졌다 : 원문은 ‘토붕(土崩)’으로, 흙이 무너지듯 일이 잘 안되어 도저히 손을 쓸 여지가 없음을 뜻한다.
註 024
부대총관(副大總管) :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소정방은 요동행군대총관(遼東行軍大摠管)이었으므로, 김인문은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이었을 것이다.
註 025
호로수(瓠盧水) : 김유신과 김인문 등이 평양의 당나라 군대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구려 군대와 마주쳐 전투를 벌인 곳이다. 『삼국사기』 권7 문무왕 11년조에 보이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에 보낸 답서에는 ‘호로하(瓠瀘河)’로 나오고,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호로하(瓠盧河)’로 나온다. 지금의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에 비정되고 있다.
註 026
만 여 급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조에는 김인문이 평양성에서 후퇴하면서 고구려 군사 1만 여 급을 베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註 027
뛰어난 병법 운용 : 원문 ‘용표지도(龍豹之韜)’는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의 일부로, 뛰어난 전술 운용을 가리킨다.
註 028
계(禊) : 음력 3월 첫 번째 뱀날(上巳日)에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註 029
개국▨(開國▨) : 김인문의 작위 중 일부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개국공(開國公)’이 신문왕 원년(690)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김인문에게 내린 작위의 일부로 나온다. 그 당시의 정식 작위는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임해군개국공(臨海郡開國公)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