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당고)김씨부인 묘지명 ((唐故)金氏夫人 墓誌銘)
소재지/출토지 中國 西安 碑林博物館
中國 陝西省 西安市 郭家灘
시대 당(唐)
연대 864년(唐 咸通 5년)
크기 (개석) 가로 43.4cm, 세로 44cm
(지석) 가로 46.5cm, 세로 45.5cm
서체 및 재질 (개석) 전서체
(지석) 예서체
현무암
주제분류 묘지명
찬자 / 서자 / 각자 鄕貢進士 崔希古 / 翰林待詔承奉郞 守建州長史 董咸 / 미상(未詳)
역주자 안정준
판독문 일람
판독문
일람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大唐故金氏夫人墓誌銘)

전(前) 지계양감(知桂陽監) 장사랑(將仕郞)001001 장사랑(將仕郞)당대(唐代)의 문산관(文散官)으로 관품은 종9품하이다.닫기 시어사(侍御史)002002 시어사(侍御史)당에서 감찰업무를 하는 어사대(御史臺) 소속의 판관으로 관품은 종6품하, 정원은 4인이다.닫기 내공봉(內供奉)003003 내공봉(內供奉)황제의 좌우에서 시봉(侍奉)하는 관직을 공봉관(供奉官)이라 한다. 당대에는 중서성(中書省)과 문하성(門下省) 및 어사대의 관을 공봉관이라 하였고, 측천무후 시기에는 어사(御使)·습유(拾遺)·보궐(補闕)에 내공봉을 두었다.닫기 이구(李璆)의 부인 경조김씨(京兆金氏)의 묘지명과 서문

향공진사(鄕貢進士)004004 향공진사(鄕貢進士)당의 지방 주현(州縣)에서 치르는 향시(鄕試)에 합격해서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향공(鄕貢)으로서 진사(進士) 시험을 보는 사람.닫기 최희고(崔希古)가 찬술하였고, 한림대조(翰林待詔)005005 한림대조(翰林待詔)당 현종(玄宗) 때인 개원(開元 원년(713)에 두었던 관직으로 각종 외교문서와 상소·표문을 정리하고 황제의 비답과 조서 작성 등을 담당하였다.닫기 승봉랑(承奉郞)006006 승봉랑(承奉郞)당의 문산관으로 관품은 종8품상.닫기 수(守) 건주장사(建州長史)007007 건주장사(建州長史)당 무덕(武德) 4년(621)에 건안군(建安郡)을 고쳐 건주(建州)가 처음 설치되었는데, 현재의 푸젠성[福建省] 북부의 난핑시[南平市] 일대에 해당한다. 장사는 자사(刺史) 예하의 속관으로 정7품하의 관직이다.닫기 동함(董咸)이 지문과 전액(篆額)을 썼다.
크고 높으신 천자께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시고 종파를 드러냈으니,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008008 소호금천시(少昊氏金天)소호(少昊)는 전설상 중국의 시조로 숭배되는 황제(黃帝)의 장자(長子)로서 少皞·少皓·少顥로도 적는다. 성은 기(己), 이름은 지(摯) 또는 질(質), 호는 금천씨(金天氏)이다. 지금의 산둥성[山东省] 쿠푸[曲阜]에 도읍하여 84년 동안 재위하였다고 한다(『左傳』 昭公 17년 ; 『呂氏春秋』 孟秋).닫기이라 불렀다. 이는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은 조상이다. 그 후에 종파가 멀어지고 갈래가 나뉘어져 번창하고 아름다워 사방 천하에 만연하였으니 또한 매우 많고도 많도다. 먼 조상의 이름은 일제(日磾)009009 일제(日磾)김일제(金日磾, B.C. 134~B.C 86)를 가리킨다. 본래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인데, 김일제의 아버지는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곤야왕(昆邪王)과 몰래 한날에 투항하고자 하였으나 결심을 바꾼 곤야왕에게 살해당하여, 그 부중(部衆)이 한나라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 후 김일제는 아우와 함께 몰관(沒官)되었으나, 나중에 부마도위(駙馬都尉)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되어 무제의 측근에서 벼슬하였다(『漢書』 卷68 列傳 第38 霍光·金日磾). 김일제의 일화는 당에 귀부(歸附)하여 활동한 이민족 인사의 묘지명에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고사이다.닫기인데 흉노[龍庭]010010 흉노[龍庭]‘용정(龍庭)’은 본래 흉노의 선우(單于)가 천지와 조상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후에 흉노나 변방민족의 국가를 이르는 말로 썼다(『後漢書』 竇憲傳). 본문에서는 흉노로 번역하였다.닫기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西漢)으로 귀순하여 한무제(漢武帝)에게 출사하였다. 명예와 절조에서 신중하였으니, 승진하여 시중(侍中)과 상시(常侍)에 임명되었고, 투정후(秺亭侯)에 봉해졌다. 투정후에 봉해진 이후 7대에 걸쳐 관직에 있었는데,011011 관직에 있었는데원문 “軒紱”의 헌(軒)은 관리가 타는 수레의 통칭이며, 불(紱)은 인끈을 말한다. 모두 높은 관리가 이용하는 물품이다. 본문에서는 관직을 역임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했다.닫기 돈황(燉煌)에서 바라보다가012012 돈황(燉煌)에서 바라보다가돈황(燉煌)은 지금의 간쑤성[甘肃省] 서부 주취안시[酒泉市]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서쪽 끝 지역을 말한다. 김일제가 본래 있었던 흉노부중의 본거지가 돈황 인근이었기 때문에 돈황에서 경조부(장안)로 이어지는 역사를 요약해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닫기 경조군(京兆郡)013013 경조군(京兆郡)당대의 장안(長安) 일대를 통괄하던 군으로 지금의 산시성[陕西省] 시안[西安] 일대를 가리킨다.닫기으로 이어졌으니 〔이는〕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재주가〕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크더라도,014014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크더라도원문 “莫之與京”에서 ‘京’은 ‘大’의 뜻이다(『左傳』 莊公 22년).닫기 필시 한 세대가 지나야 인(仁)이 이루어진다는015015 필시 한 세대가 지나야 인(仁)이 이루어진다는『논어(論語)』 자로(子路) 제12장의 “如有王者 必世而後仁”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리 왕자(王者), 즉 천명(天命)을 받아 일어난 자가 있다 하더라도 필시 한 세대(30년)가 지나야 백성들이 인(仁)해진다는 말이다.닫기 것이 여기서 징험된다. 한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백성들이〕 흩어짐에 이르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어려운 때를 피하여 먼 곳에 이르렀으니, 고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016016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원문 “韋異”는 이별하다, 서로 나뉘어 떨어지다는 의미이다(漢 院瑀, 『爲曹公作書與孫權』.닫기 문선왕(文宣王)017017 문선왕(文宣王)공자를 가리킨다. 당 개원 27년(739)에 현종이 공자에게 추증한 시호이다.닫기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에 충성과 신의가 있고 행동에 독실하고 신중함이 있으면, 비록 오랑캐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도(道)가 또한 행해질 것이다”018018 “말에 충성과 … 행해질 것이다”『논어』 위령공(衛靈公) 제5장의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행해짐이 있다”는 의미이다.닫기라고 하셨는데, 지금 우리 집안이 요동에 있으면서도 창성함019019 창성함원문의 “昌熾”는 창성하다는 의미이다(『詩經』 魯頌 閟宮).닫기을 회복한 까닭이다. 부인의 증조는 이름이 원득(原得)인데, 황조(皇朝)020020 황조(皇朝)당나라를 가리킨다.닫기에서 공부상서(工部尙書)021021 공부상서(工部尙書)백공(百工)·둔전(屯田)·산택(山澤)의 정령(政令)을 관장하는 상서성(尙書省) 공부(工部)의 우두머리로 정원 1인, 정3품의 관직이다.닫기에 추증되었고, 조부의 이름은 충의(忠義)로 당에서 한림대조(翰林待詔) 검교(檢校)022022 검교(檢校)수나라에서 당나라 초기 검교관(檢校官)이란 정식으로 관직을 제수받지는 않았으나 그 직사(職事)를 담당하는 자를 말한다. 당 중기 이후가 되면 사직(使職)이나 지방관은 대부분 중앙 대성(臺省)의 관함(官銜)을 겸대하였으며, 그 중 삼공(三公)·상서복야(尙書僕射)·상서(尙書)·승(丞)·낭(郞) 등 고급 관함을 겸대한 자를 검교관이라 칭하였는데, 단 그 경우 겸대한 검교관은 관품의 고하만 표시하였을 뿐이고 실제 그 직사를 관장하지는 않았다(『通典』 권19 職官1 歷代官制總序).닫기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023023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왕명 출납을 맡아보던 문하성(門下省) 예하의 관원으로 종3품이며 정원 2인이다.닫기 소부감내중상사(少府監內中尙使)024024 소부감내중상사(少府監內中尙使)소부감은 백공(百工)‧기교(技巧)에 관한 정령을 관장하는데, 속관부를 지휘하여 황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조 공급하는 기구이다. 중상사(中尙使)는 소부감의 속관부인 중상서(中尙署)의 관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중상서의 장관은 중상서령(中尙署令)으로 관품은 종6품상이다.닫기의 벼슬을 지냈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공량(公亮)으로 당에서 한림대조(翰林待詔) 장작감승(將作監丞)025025 장작감승(將作監丞)장작감(將作監)은 토목공장(土木工匠)에 관한 정령을 관장하는데, 속관부를 지휘하여 궁궐 수축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 승(丞)은 장작감의 본관부 소속 관원으로 종6품하, 정원 4인의 관직이다.닫기 충내작판관(充內作判官)을 역임하였다. 조부와 부친은 문장과 무예에서 재주가 뛰어났고,026026 재주가 뛰어났고원문 “餘刃”은 넉넉한 능력을 비유한 말이다(『莊子』 養生主).닫기 평자(平子)027027 평자(平子)남양군(南陽郡) 서악현(西鄂縣) 출신인 장형(張衡)을 가리킨다. 평자(平子)는 그의 자(字)이다. 천문학·수학·지리학·문학에 능했던 후한 시기의 관원으로서 낭중(郎中), 태사령(太史令), 시중(侍中), 하간상(河間相)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닫기를 연구하여 관상(觀象)하는 일028028 관상(觀象)하는 일‘관상(觀象)’은 괘효(卦爻)의 상을 관찰하다(『周易』 繫辭 上), 혹은 천문현상을 관측한다는 의미이다(『三國志』 吳書 虞翻傳).닫기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공수자(公輸子)029029 공수자(公輸子)공수반(公輸班)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나무를 잘 다루던 목수. ‘班’은 ‘般’·‘盤’으로도 쓰인다(『墨子』 公輪 ; 『孟子』 離婁 上).닫기를 궁리하여 귀신같은 기예를 갖추었다. 이에 궁궐 문030030 궁궐 문원문 “金文”은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한대(漢代) 궁문(宮門)의 이름이다(『史記』 滑稽傳).닫기에서 공부(貢賦)의 등급을 분류하였으며,031031 공부(貢賦)의 등급을 분류하였으며원문 “貢藝”는 공부의 등급을 구별한다는 뜻이다(唐 柳宗元 「天對」).닫기 여러 조정에서 아울러 일하였으니, 봉록과 작위에서 처음과 끝이 모두 좋고 훌륭하였다. 돌아가신 모친032032 돌아가신 모친[先夫人]김씨 부인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킨다.닫기은 농서(隴西) 이씨로 대대로 관직[搢紳]033033 관직[搢紳]옛날 관리들이 홀(笏)을 신대(紳帶) 사이에 끼운 탓에 관리들을 통칭하여 ‘진신(搢紳)’이라고 불렀다(『莊子』 天下),닫기을 역임한 두터운 집안이었다.
〔김씨〕 부인은 판관(判官)의 둘째 딸로 유순하고 곧았으니, 타고난 품성034034 타고난 품성원문 “稟受”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이라는 의미이다(漢 王充『論衡』 氣壽).닫기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여성으로서의 솜씨는 부녀자의 도리에 맞았으며, 부지런히 직무에 힘씀은 옛것으로부터 구한 것이었다. 이씨에게 시집을 감에 중외의 친척들이 모두 어진 부인이라 일컬었다. 부인은 대를 이를 자식이 없어서 전부인의 아들 셋을 기르고 훈육하였는데, 자기 자식보다 더 잘 대하였다. 장차 쌓아온 선행과 풍부한 보답을 기대하였으나, 어찌 천명이 그 명줄과 운명을 헤아린다고 말하겠는가. 연이어 병을 앓아 무당과 편작(扁鵲)035035 편작(扁鵲)춘추전국시대의 명의이다(『列子』 湯問).닫기도 병을 다스리지 못하였고, 함통(咸通) 5년(864) 5월 29일에 영표(嶺表)036036 영표(嶺表)난링산맥[南岭山脈]의 남쪽 일대의 땅을 가리키며, 현재의 광둥성[广东省]·광시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 지역이다.닫기에서 죽었으니 향년 33세였다. 단공(端公)037037 단공(端公)당대 시어사의 이칭(異稱)으로 본문에서는 이구(李璆)를 가리킨다.닫기은 옛 생애를 추모하여 시신을 그대로 보존한 채로 산과 강을 넘기를 마치 평지와 내를 건너듯이 하였고, 어렵고 험한 것을 피하지 않고 굳은 마음으로 〔부인의〕 관에 임하며 마침내 대대로 살던 땅에 돌아왔다. 대를 이을 아들 경현(敬玄)과 차자(次子) 경모(敬謨), 그 다음 아들인 경원(敬元)은 모두 슬픔이 외모를 상하게 하였으며, 영친(靈櫬)을 멀리 모실 적에 뒤따르며 부르짖음이 한도 끝도 없었다. 경현 등은 겨우 붙어있는 숨에 의지하여 삼가 예문을 갖추었다. 함통 5년(864) 12월 7일에 영구를 만년현(萬年縣) 산천향(滻川鄕) 상부촌(上傅村)038038 만년현(萬年縣) 산천향(滻川鄕) 상부촌(上傅村)만년현은 경조부(京兆府)의 속현으로 장안 주작대로(朱雀大路) 동쪽의 64방(坊)과 그 교외 45향(鄕)을 관할하였다. 상부촌은 현재의 시안시 동북방의 십리포(十里鋪)에 있었다고 한다(권덕영, 2009).닫기으로 옮겨 대대의 선영 묘역에 안장하였다. 부인의 숙부는 한림대조로 앞서 소왕(昭王)의 스승[昭王傅]039039 소왕(昭王)당나라 덕종(德宗)의 아홉째 아들이었던 이계(李誡)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닫기을 지냈고, 친형은 수(守) 우청도솔부(右淸道率府)040040 우청도솔부(右淸道率府)황태자가 거주하는 동궁의 관속(官屬)인 10솔부(率府) 중 하나로 동궁 안팎을 밤낮으로 순경(巡警)하는 법을 관장한다.닫기의 병조참군(兵曹參軍)041041 병조참군(兵曹參軍)우청도솔부 소속의 관원으로 종8품하, 정원은 1인이다.닫기이었는데, 연이어 조정에 출사하여 가문을 받들고 가업을 이었다. 최희고는 부인의 형과 오랜 친구 사이로, 추도하는 글을 지었고, 인하여 이로써 명문(銘文)을 청하니, 명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인자하지 못하여 도균(陶鈞)042042 도균(陶鈞)도기(陶器)를 만드는데 쓰이는 돌림판(漢 桓寬 『鹽鐵論』). 본문에서는 낳아준 부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09).닫기에 앞서 죽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소원함도 없고 친함도 없도다. 쌓은 선행을 누리지 못하고 큰 명줄을 오래도록 이어가지 못하였구나. 어찌 그녀가 아름답고 착하다고 하겠는가. 또한 어질고 성스러움에 엮였구나. 이 짧은 세월을 만나 대종(岱宗)에서 노닐며043043 대종(岱宗)에서 노닐며대종(岱宗)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른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文選』 劉楨 贈五官中郞將詩).닫기 곡기를 끊었도다. 큰 도가 이미 끝났구나. 만 가지 변화가 하나로 모였도다.044044 하나로 모였도다원문의 “同塵”은 뒤섞임, 어울려 일체가 된다는 의미다(晉 葛洪 『抱朴子』 廣譬).닫기

註 001
장사랑(將仕郞) : 당대(唐代)의 문산관(文散官)으로 관품은 종9품하이다.
註 002
시어사(侍御史) : 당에서 감찰업무를 하는 어사대(御史臺) 소속의 판관으로 관품은 종6품하, 정원은 4인이다.
註 003
내공봉(內供奉) : 황제의 좌우에서 시봉(侍奉)하는 관직을 공봉관(供奉官)이라 한다. 당대에는 중서성(中書省)과 문하성(門下省) 및 어사대의 관을 공봉관이라 하였고, 측천무후 시기에는 어사(御使)·습유(拾遺)·보궐(補闕)에 내공봉을 두었다.
註 004
향공진사(鄕貢進士) : 당의 지방 주현(州縣)에서 치르는 향시(鄕試)에 합격해서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향공(鄕貢)으로서 진사(進士) 시험을 보는 사람.
註 005
한림대조(翰林待詔) : 당 현종(玄宗) 때인 개원(開元 원년(713)에 두었던 관직으로 각종 외교문서와 상소·표문을 정리하고 황제의 비답과 조서 작성 등을 담당하였다.
註 006
승봉랑(承奉郞) : 당의 문산관으로 관품은 종8품상.
註 007
건주장사(建州長史) : 당 무덕(武德) 4년(621)에 건안군(建安郡)을 고쳐 건주(建州)가 처음 설치되었는데, 현재의 푸젠성[福建省] 북부의 난핑시[南平市] 일대에 해당한다. 장사는 자사(刺史) 예하의 속관으로 정7품하의 관직이다.
註 008
소호금천시(少昊氏金天) : 소호(少昊)는 전설상 중국의 시조로 숭배되는 황제(黃帝)의 장자(長子)로서 少皞·少皓·少顥로도 적는다. 성은 기(己), 이름은 지(摯) 또는 질(質), 호는 금천씨(金天氏)이다. 지금의 산둥성[山东省] 쿠푸[曲阜]에 도읍하여 84년 동안 재위하였다고 한다(『左傳』 昭公 17년 ; 『呂氏春秋』 孟秋).
註 009
일제(日磾) : 김일제(金日磾, B.C. 134~B.C 86)를 가리킨다. 본래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인데, 김일제의 아버지는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곤야왕(昆邪王)과 몰래 한날에 투항하고자 하였으나 결심을 바꾼 곤야왕에게 살해당하여, 그 부중(部衆)이 한나라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 후 김일제는 아우와 함께 몰관(沒官)되었으나, 나중에 부마도위(駙馬都尉)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되어 무제의 측근에서 벼슬하였다(『漢書』 卷68 列傳 第38 霍光·金日磾). 김일제의 일화는 당에 귀부(歸附)하여 활동한 이민족 인사의 묘지명에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고사이다.
註 010
흉노[龍庭] : ‘용정(龍庭)’은 본래 흉노의 선우(單于)가 천지와 조상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후에 흉노나 변방민족의 국가를 이르는 말로 썼다(『後漢書』 竇憲傳). 본문에서는 흉노로 번역하였다.
註 011
관직에 있었는데 : 원문 “軒紱”의 헌(軒)은 관리가 타는 수레의 통칭이며, 불(紱)은 인끈을 말한다. 모두 높은 관리가 이용하는 물품이다. 본문에서는 관직을 역임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註 012
돈황(燉煌)에서 바라보다가 : 돈황(燉煌)은 지금의 간쑤성[甘肃省] 서부 주취안시[酒泉市]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서쪽 끝 지역을 말한다. 김일제가 본래 있었던 흉노부중의 본거지가 돈황 인근이었기 때문에 돈황에서 경조부(장안)로 이어지는 역사를 요약해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註 013
경조군(京兆郡) : 당대의 장안(長安) 일대를 통괄하던 군으로 지금의 산시성[陕西省] 시안[西安] 일대를 가리킨다.
註 014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크더라도 : 원문 “莫之與京”에서 ‘京’은 ‘大’의 뜻이다(『左傳』 莊公 22년).
註 015
필시 한 세대가 지나야 인(仁)이 이루어진다는 : 『논어(論語)』 자로(子路) 제12장의 “如有王者 必世而後仁”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리 왕자(王者), 즉 천명(天命)을 받아 일어난 자가 있다 하더라도 필시 한 세대(30년)가 지나야 백성들이 인(仁)해진다는 말이다.
註 016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 원문 “韋異”는 이별하다, 서로 나뉘어 떨어지다는 의미이다(漢 院瑀, 『爲曹公作書與孫權』.
註 017
문선왕(文宣王) : 공자를 가리킨다. 당 개원 27년(739)에 현종이 공자에게 추증한 시호이다.
註 018
“말에 충성과 … 행해질 것이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 제5장의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행해짐이 있다”는 의미이다.
註 019
창성함 : 원문의 “昌熾”는 창성하다는 의미이다(『詩經』 魯頌 閟宮).
註 020
황조(皇朝) : 당나라를 가리킨다.
註 021
공부상서(工部尙書) : 백공(百工)·둔전(屯田)·산택(山澤)의 정령(政令)을 관장하는 상서성(尙書省) 공부(工部)의 우두머리로 정원 1인, 정3품의 관직이다.
註 022
검교(檢校) : 수나라에서 당나라 초기 검교관(檢校官)이란 정식으로 관직을 제수받지는 않았으나 그 직사(職事)를 담당하는 자를 말한다. 당 중기 이후가 되면 사직(使職)이나 지방관은 대부분 중앙 대성(臺省)의 관함(官銜)을 겸대하였으며, 그 중 삼공(三公)·상서복야(尙書僕射)·상서(尙書)·승(丞)·낭(郞) 등 고급 관함을 겸대한 자를 검교관이라 칭하였는데, 단 그 경우 겸대한 검교관은 관품의 고하만 표시하였을 뿐이고 실제 그 직사를 관장하지는 않았다(『通典』 권19 職官1 歷代官制總序).
註 023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 왕명 출납을 맡아보던 문하성(門下省) 예하의 관원으로 종3품이며 정원 2인이다.
註 024
소부감내중상사(少府監內中尙使) : 소부감은 백공(百工)‧기교(技巧)에 관한 정령을 관장하는데, 속관부를 지휘하여 황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조 공급하는 기구이다. 중상사(中尙使)는 소부감의 속관부인 중상서(中尙署)의 관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중상서의 장관은 중상서령(中尙署令)으로 관품은 종6품상이다.
註 025
장작감승(將作監丞) : 장작감(將作監)은 토목공장(土木工匠)에 관한 정령을 관장하는데, 속관부를 지휘하여 궁궐 수축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 승(丞)은 장작감의 본관부 소속 관원으로 종6품하, 정원 4인의 관직이다.
註 026
재주가 뛰어났고 : 원문 “餘刃”은 넉넉한 능력을 비유한 말이다(『莊子』 養生主).
註 027
평자(平子) : 남양군(南陽郡) 서악현(西鄂縣) 출신인 장형(張衡)을 가리킨다. 평자(平子)는 그의 자(字)이다. 천문학·수학·지리학·문학에 능했던 후한 시기의 관원으로서 낭중(郎中), 태사령(太史令), 시중(侍中), 하간상(河間相)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註 028
관상(觀象)하는 일 : ‘관상(觀象)’은 괘효(卦爻)의 상을 관찰하다(『周易』 繫辭 上), 혹은 천문현상을 관측한다는 의미이다(『三國志』 吳書 虞翻傳).
註 029
공수자(公輸子) : 공수반(公輸班)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나무를 잘 다루던 목수. ‘班’은 ‘般’·‘盤’으로도 쓰인다(『墨子』 公輪 ; 『孟子』 離婁 上).
註 030
궁궐 문 : 원문 “金文”은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한대(漢代) 궁문(宮門)의 이름이다(『史記』 滑稽傳).
註 031
공부(貢賦)의 등급을 분류하였으며 : 원문 “貢藝”는 공부의 등급을 구별한다는 뜻이다(唐 柳宗元 「天對」).
註 032
돌아가신 모친[先夫人] : 김씨 부인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킨다.
註 033
관직[搢紳] : 옛날 관리들이 홀(笏)을 신대(紳帶) 사이에 끼운 탓에 관리들을 통칭하여 ‘진신(搢紳)’이라고 불렀다(『莊子』 天下),
註 034
타고난 품성 : 원문 “稟受”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이라는 의미이다(漢 王充『論衡』 氣壽).
註 035
편작(扁鵲) : 춘추전국시대의 명의이다(『列子』 湯問).
註 036
영표(嶺表) : 난링산맥[南岭山脈]의 남쪽 일대의 땅을 가리키며, 현재의 광둥성[广东省]·광시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 지역이다.
註 037
단공(端公) : 당대 시어사의 이칭(異稱)으로 본문에서는 이구(李璆)를 가리킨다.
註 038
만년현(萬年縣) 산천향(滻川鄕) 상부촌(上傅村) : 만년현은 경조부(京兆府)의 속현으로 장안 주작대로(朱雀大路) 동쪽의 64방(坊)과 그 교외 45향(鄕)을 관할하였다. 상부촌은 현재의 시안시 동북방의 십리포(十里鋪)에 있었다고 한다(권덕영, 2009).
註 039
소왕(昭王) : 당나라 덕종(德宗)의 아홉째 아들이었던 이계(李誡)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註 040
우청도솔부(右淸道率府) : 황태자가 거주하는 동궁의 관속(官屬)인 10솔부(率府) 중 하나로 동궁 안팎을 밤낮으로 순경(巡警)하는 법을 관장한다.
註 041
병조참군(兵曹參軍) : 우청도솔부 소속의 관원으로 종8품하, 정원은 1인이다.
註 042
도균(陶鈞) : 도기(陶器)를 만드는데 쓰이는 돌림판(漢 桓寬 『鹽鐵論』). 본문에서는 낳아준 부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09).
註 043
대종(岱宗)에서 노닐며 : 대종(岱宗)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른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文選』 劉楨 贈五官中郞將詩).
註 044
하나로 모였도다 : 원문의 “同塵”은 뒤섞임, 어울려 일체가 된다는 의미다(晉 葛洪 『抱朴子』 廣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