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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문
천보(天寶) 4년註 001 을유(乙酉)에 사인(思仁)註 002 대각간(大角干)註 003께서 〈원(願)을〉 삼으시고,註 004 부지산촌(夫只山村) 무진사(无盡寺)註 005의 종을 이루라는 지시를 받아註 006 조성하고 기록한다. 이때 〈김사인의〉 발원을 도왔던 무리는註 007 신승촌택(䢻僧村宅)註 008 쪽의 일체 단월(檀越)註 009로, 함께 이룬 발원의 뜻은 일체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지시를 받아 〈종을〉 조성했던 때註 010의 유내(唯乃)註 011는 추장당주(秋長幢主)註 012이다.
註) 001
천보(天寶) 4년 : 천보(天寶)는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연호로, 742년에서 756년까지 사용되었다. 천보 4년은 745년으로 신라 경덕왕 4년에 해당한다. 천보 3년(744)부터 ‘연(年)’을 ‘재(載)’로 표현하였으며, 숙종(肅宗) 건원 원년(758)에 다시 ‘연(年)’으로 회복하였다.바로가기
註) 002
사인(思仁) : 경덕왕 때 상대등을 지낸 김사인(金思仁)을 가리킨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성덕왕 31년(732)에 장군이 되었고, 35년(736) 11월에 왕명을 받들어 평양(平壤)과 우두주(牛頭州) 등을 살폈고, 효성왕 5년(741) 4월에 대신으로서 노병(弩兵)을 사열하였다. 본 종이 제작된 경덕왕 4년(745) 1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되었으며, 15년(756)에는 재앙과 이변이 자주 나타나는 것과 관련하여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였으며 이듬해 정월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바로가기
註) 003
대각간(大角干) : 신라 17관등 위에 자리를 더한 비상위(非常位)로, 백제 멸망한 공을 인정하여 김유신에게 준 것이 시초였다(『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 상).바로가기
註) 004
삼으시고 : 원문 ‘위사(爲賜)’는 ‘ᄒᆞᄉᆞ’ 또는 ‘삼으샤’로 읽을 수 있다고 하며, 특히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 (755)에 “成內 願旨者 皇龍寺 緣起法師 爲內賜”의 ‘爲內賜’와 같은 것으로 보면 후자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南豊鉉, 2000, 『吏讀硏究』, 태학사, 190~191쪽). ‘께서’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鮎貝房之進, 1934, 「无盡寺鐘記」, 『雜攷』 6-上; 1972, 『雜攷 俗字攷·俗文攷·借字攷』, 國書刊行會 재수록, 403~404쪽; 藤田亮策, 1963, 『朝鮮學論考』, 211쪽; 李弘稙, 1954, 『韓國古文化論攷』, 乙酉文化社, 83쪽; 李宇泰, 2014, 『韓國金石文集成(16)』, 12쪽).바로가기
註) 005
부지산촌(夫只山村) 무진사(无盡寺) : 여기 외에 다른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바로가기
註) 006
이루라는 지시를 받아 : 원문 “성교수내(成敎受內)”에서 ‘교(敎)’와 ‘수(受)’를 경칭(敬稱)의 의미로 “이시-”로 해석하고, ‘내(內)’를 ‘ᄋᆞᆫ, ᄂᆞᆫ’으로 풀이하여 “이루신” 정도로 추정해 왔다(鮎貝房之進, 1972, 위의 책, 405~406쪽; 南東信, 1992, 「无盡寺鐘銘」,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Ⅲ』, 382쪽; 李宇泰, 위의 책, 13쪽). 한편 ‘교(敎)’를 ‘지시’로, ‘수내(受內)’를 ‘받아’로 풀이하여 “이루라는 지시를 받아”로 해석한 견해(南豊鉉, 위의 책, 192~193쪽)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바로가기
註) 007
발원을 도왔던 무리는 : 원문 “願助在衆:에서 ‘재중(在衆)’을 단월로 해석하기도 하였다(鮎貝房之進, 위의 책, 406쪽). 그러나 ‘조재(助在)’의 ‘재(在)’는 뒤에 나오는 ‘성재(成在)’와 같이 과거형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조재(助在)는 ’도운‘으로 해석할 수 있다(南豊鉉, 위의 책, 194쪽).바로가기
註) 008
신승촌택(䢻僧村宅) : 「상원사 동종명(上院寺 銅鍾銘)」(725)에 보이는 ‘유휴대사택(有休大舍宅)’과 같이 귀족의 집을 존대한 표현으로(李弘稙, 위의 책, 82쪽), 김사인과 관련된 집으로 생각된다(鮎貝房之進, 위의 책, 406쪽; 南豊鉉, 위의 책, 199쪽).바로가기
註) 009
단월(檀越) : 산스크리트어 danapati를 번역한 것으로, ‘시주’라는 뜻이다. 또는 보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단(檀)’은 단나(檀那)의 약칭으로 베푼다는 의미이며, ‘월(越)’은 베푼 공덕으로 빈궁한 세계를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바로가기
註) 010
절(節) : “이 때”로 풀이된다.바로가기
註) 011
작내(雀乃) : 탁본에서는 ‘雀’자로 보이며, 唯의 오기이다(南豊鉉, 196쪽). 유내(唯乃)는 사찰에 설치된 삼강(三綱)의 하나로, 승려들의 일을 담당하며 유나(維那)로 표기하기도 한다.바로가기
註) 012
추장당주(秋長幢主) : 당주는 신라의 군사지휘관이며, 추장은 유내의 이름으로 추정된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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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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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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