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해제
일본 큐슈의 우사진구[宇佐神宮] 보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우사진구 경내에 있던 미륵사(彌勒寺)의 범종으로 수입한 것이라고 하며, 그 시기는 우사진구와 미륵사 조영에 크게 기여한 오오우치[大內] 가문이 14세기 후반경 한반도에서 입수하여 기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종에 비해 크기가 작고, 주조기술도 거칠다. 용두(龍頭)는 입을 천판(天板) 위에 붙이고 있으며 뒤에 붙은 음통(音筒)도 축소되어 형식적이다. 종신(鐘身)의 상·하대(上·下帶)에는 당좌(撞座)를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반원(半圓)의 문양을 연속으로 배치하였고, 원 안팎으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상대(上帶) 아래 4곳에 배치된 연곽대(蓮廓帶)에도 상·하대와 같은 문양이 있고, 연곽 안에 9개의 연뢰(蓮蕾), 일명 유두(乳頭)가 과장되게 돌출되어 있다.
종신의 전·후면 2곳에 배치된 원형의 당좌는 8~9세기 종과 비교할 때 하대 쪽에 치우쳐 있다. 당좌 사이의 종신 앞, 뒤면에는 동일한 형태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1구씩 부조되어 있는데, 구름 위에 앉아 천의(天衣)를 날리며 양손을 들어 요고(腰鼓)를 치는 모습이다. 이 주악상은 8~9세기 범종과 비교할 때 자세는 경직되어 있고, 천의는 도식적이며, 종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당좌와 주악천인상 사이 한쪽 여백에 장방형의 명문곽(銘文廓)을 만들어 이곳에 명문을 거꾸로 양각하였다. “천복4년 갑자(天復四年 甲子)”라는 명문을 통해 이 종이 904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종은 통일신라 말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디지털역사자료 인용방법
닫기
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오류신고
닫기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이트 하단의 ‘오류신고’ 메뉴를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자료명
한국고대금석문
자료위치
자료상세화면
자료 선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