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고진 묘지명 (高震 墓誌銘)
소재지/출토지 미상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 망산(邙山)
연대 733년(唐 開元 21년)
크기 가로·세로 각각 50㎝×50㎝
서체 및 재질 楷書
미상
주제분류 당|묘지명
찬자 / 서자 / 각자 양경(楊憼) / 미상 / 미상
역주자 안정준
판독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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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001001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唐의 종1품 文散官이다.(『通典』 권34, 職官16, 文散官, 開府儀同三司)닫기·공부상서(工部尙書)002002 공부상서(工部尙書)工程·工匠·屯田·水利·交通 등의 政令을 담당했던 工部의 장관으로 정원 1인, 정3품이다(『唐六典』 卷第7 尙書工部).닫기·특진(特進)003003 특진(特進)당의 정2품의 文散官이다(『舊唐書』 권42, 職官1).닫기·우금오위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004004 우금오위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 금오위는 궁중 및 경성을 주야로 순찰·경계하는 법에 의거하여 잘못과 위반을 막는 일을 관장한다. 左·右金吾衛가 있는데, 각각 최고위직으로 대장군이 있으며, 정원 1인, 정3품이다(『唐六典』 卷第25 諸衛府).닫기·안동도호(安東都護)005005 안동도호(安東都護)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軍政機關인 安東都護府를 가리킨다. 휘하에 9도독부 42주 100현을 두어 고구려 고지를 관장케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 등의 반발로 676년 2월에는 치소를 遼東城(현 遼陽)으로 옮겼고, 그 이듬해에 다시 신성(현 撫順)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 移置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안사의 난의 영향으로 761년 최종 폐지되었다(津田左右吉, 1964, 『津田左右吉全集』 제12권, 岩波書店).닫기·담국공(郯國公)006006 담국공(郯國公)郯國은 현재 山東省 臨沂市 郯城縣 郯城鎮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인다. 國公은 文散官의 品階 수여로서 봉작을 받은 것으로 관품은 正三品下에 해당한다. 唐代에는 보통 九等爵으로 나오는데, 각각의 명칭은 사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唐六典』과 『舊唐書』에는 王·郡王·國公·郡公·縣公·縣侯·縣伯·縣子·縣男으로 나와있다.닫기·상주국(上柱國) ▨▨공의 묘지 및 서(序)

헌서대제(獻書待制) 양경(楊憼)이 찬하다.

대력(大曆) 8년 여름 5월 27일, 우금오위대장군·안동도호인 ▨▨공은 낙양(洛陽) 교업리(敎業里)의 사저에서 훙거(薨去)하였으니 나이는 73세였다. 이전 해 4월 12일 담국부인(郯國夫人) 진정후씨(眞定侯氏)가 먼저 박릉군(博陵郡)에서007007 박릉군(博陵郡)지금의 山東省 茌平의 博陵鎮닫기 죽었다. [대력] 13년 11월 24일 병인(丙寅)에 낙수의 북망산(北印山)의 남쪽의 신영(新塋)에 합장하였으니 예법에 맞는 것이었다. 공의 이름은 진(震)이며 자(字)는 모(某)이고 발해(渤海) 사람이다. 조부인 장(藏)은 개부의동삼사 공부상서 조선군왕(朝鮮郡王) 유성군개국공(柳城郡開國公)이다.008008 유성군(柳城郡)隋 煬帝때 營州를 두면서 柳城郡을 처음 개설했으며, 唐 武德初年(618)에 營州總管府의 領縣이었다가 唐 天寶元年(742)에 營州 소속의 柳城縣이 되었다. 지금의 遼寧省 朝陽市 남쪽인 十二臺營子鄕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닫기 부친의 이름은 연(連)으로 운휘장군(雲麾將軍)009009 운휘장군(雲麾將軍)唐代 종3품의 武散官이다.닫기 우표도대장군(右豹韜大將軍)010010 우표도대장군(右豹韜大將軍)황제 직속의 18衛에 속한 左·右威衛에는 최고위인 대장군이 左右 각각 1인이 있으며, 정3품에 해당한다. 『新唐書』 권49상, 「百官4上」 本注에 따르면 唐 光宅元年(684)에 左右威衛를 左右豹韜衛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다만 神龍 元年(705)에 다시 좌·우위위로 하였다고 한다(『唐會要』 권71 十二衛). 따라서 고진의 부친 때에는 右豹韜衛大將軍이라는 관명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닫기 안동도호(安東都護)였다. 공은 곧 부여(扶餘)의 높고 귀한 가문이며,011011 귀종(貴種)지위가 높고 귀한 집안(『史記』 匈奴傳).닫기 진한(辰韓)의 명망 있는 집안이었으니,012012 영족(令族)名望 있는 집안. 좋은 집안(晉 陶潛, 「贈長沙公族祖詩」).닫기 귀순하여 따르고013013 회화(懷化)귀순하여 따르다(『晉書』 琅邪王伷傳).닫기 토지를 봉분 받아,014014 계토(啓土)토지를 개척하거나 영토를 확대하다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문맥상 중국 황제에 의해 땅을 떼어내 봉함을 받았다는 뜻(『文選』 史岑 出師頌)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닫기 대를 이어 왕을 칭하였으며, 자손들이 국빈(國賓)이015015 국빈(國賓)원래 朝聘하러 온 제후나 孤·卿·大夫 등을 이르는 말이었는데(『周禮』 春官 司几筵), 이후 새 왕조 입장에서 옛 왕조의 후예들에 대한 존칭으로도 쓰였다(唐 楊炯, 『後周宇文公神道碑』).닫기 되었으니, 식읍이 1000실(室)이나 되었다. 공은 성심과 정성을016016 단간(丹懇)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唐 劉禹錫, 「代賀赦吳少誠複官爵表」).닫기 다하여 임금을 도왔고, 힘써 싸워서 공훈으로 기록된 것이 무리에서 뛰어나고 으뜸이었다. 떳떳한 기백으로 오랑캐를 막으니, 사봉(司封)의 5급으로는017017 사봉오급(司封五級)司封은 官署의 명칭으로 司封司라고도 칭한다. 唐高宗 龍朔2年(662)에 主爵을 고쳐서 두었으며, 이후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玄宗代인 開元元年(713)에 司封으로 다시 칭해진 뒤 그 명칭이 당말까지 이어졌다. 관리의 銓選과 授官, 策勳과 封爵, 考課에 관한 政令을 주로 관장하는 吏部 四司의 하나로 封爵의 일을 관장한다. 司封郎中을 두는데 정원 1인으로 관품은 종5품상에 해당한다(『唐六典』 卷第2 尙書吏部). ‘司封五級’이란 아마도 사봉이 정하는 封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닫기 자남(子男)으로부터 공후(公侯)에 이르렀고,018018 자남(子男)으로부터 ~ 이르렀고公·侯·伯·子·男은 5등의 爵位이다(『尚書』 武成). 작위가 순차적으로 올랐음을 표현한 문구이다.닫기 관품의 9계로는 유격(游擊)을 넘어서 개부(開府)로 올랐으니019019 관품의 ~ 올랐으니‘遊擊’은 종5품의 武散官인 遊擊將軍을 가리키고, 開府는 종1품의 文散階인 開府儀同三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관품이 하위에서 고위로 상승했음을 의미한다.닫기 이 역시 신하된 자가 스스로 이룬 것이다. 향년(享年)이 길지 못하여 서까래가 부러지고 대들보가 무너졌으며,020020 최붕동압(榱崩棟壓)‘棟折榱崩’(대들보가 무너지면 서까래도 무너진다)과 같은 의미의 표현으로 집안이 기울거나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春秋左氏傳』 襄公篇 31年). 묘주 고진의 죽음을 비유한 표현이다(권덕영, 2021b, 205쪽).닫기 沙麓의021021 사록(沙簏)沙簏으로 판독이 되는데 정확한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권덕영은 이를 ‘沙麓’의 오각 혹은 이체자로 판단하는 가운데, 황태후나 황후와 같은 고귀한 여성을 칭송하는 표현이라고 보았다. 즉 ‘沙麓의 땅이 갈라졌다는 것은 고진의 부인인 진정후씨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권덕영, 2021b, 206쪽).닫기 땅이 갈라지고 요사한 기운이 장성(將星)에022022 장성(將星)고대에 帝王·將相은 하늘 위의 星宿과 상응한다고 여겼는데, 將星은 곧 大將을 상징하는 星宿로 보았다(『隋書』 天文志).닫기 떨어졌다. 부인은 사람됨이 맑고 바탕이 밝았으며, 아녀자의 거동과 어머니의 모범을 갖추었다. 무지개다리는023023 홍양(虹梁)무지개 다리(後蜀, 何光遠 『鑑誡錄』 高僧諭).닫기 해에 의해 쇠락하고, 신선이 됨은 구름을 긁어모음에서 막히며, 오동나무는 劍이 빠짐에서 꺾였고,024024 동절검침(桐折劍沈)『史記』 권66 伍子胥列傳과 『十八史略』 제7편 春秋·戰國에 나오는 伍子胥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옮긴 것이 아닐까 한다. 吳의 재상 伯嚭가 오자서를 참소하자 국왕 夫差가 오자서에게 屬鏤라는 劍을 하사하여 자결하게 했다. 이에 오자서는 분하게 여겨 가족들에게 반드시 자신의 무덤에 개오동나무(사기에는 ‘梓’로 나오며, 『십팔사략』에는 檟로 나온다)를 심어 부차의 官材로 삼고, 또 자신의 눈을 도려내어 동쪽 성문에 걸어 오의 멸망을 보게 하라고 유언을 남긴 뒤 자결했다. 이에 부차는 오자서의 시체를 거두어 말가죽 부대에 넣어 강물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본문에는 나무의 이름이 ‘桐’으로 나와서 차이가 있으나 같은 고사를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닫기 거울은 난새의 죽음에서 옮겨졌으니025025 경이란폐(鏡移鸞斃)南朝宋 範泰의 鸞鳥詩序에 의하면 옛날 罽宾王에게 사로 잡힌 난새는 새장에 갇혀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운명에 처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삼 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계빈왕은 거울을 걸어 난새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는데, 난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슬피 울기 시작했고, 결국 거울을 향해 달려 나가 부딪혀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太平御覽』 권916 鸞鳥詩序).닫기 운명이로다. 대를 이은 아들인 조청대부(朝請大夫)·심택령(深澤令) 숙수(叔秀)는 효성이 강과 초원을 뛰어넘고 예의는 왕상(王祥)보다026026 왕상(王祥)三國 魏末에서 西晉 초기의 사람으로 琅邪 臨沂人이다. 字는 休徵이다. 성품이 지극시 효성스러워서 계모가 한겨울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원하자 강으로 가서 옷을 벗고 얼음 위에 누워 얼음을 녹인 뒤 고기를 잡으려고 하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 나와서 잡혔다고 한다. 24孝의 한 사람이다(『晉書』 卷33 王祥傳).닫기 높았다. 친형을027027 모형(母兄)어머니가 같은 형을 가리킨다(『公羊傳』 隱公7年).닫기 부축하여 박릉(博陵)에서 발인(發靷)하였고, 엄격한 효로서 낙읍(洛邑)으로028028 낙읍(洛邑)洛陽의 옛 명칭이다.닫기 옮겼으니, 눈길을 지나간 것이 천리요, 슬픔을 머금은 것이 9년 같았다. 금석에 그 전말을 적어서 문장으로 의탁한 바, 명(銘)하여 이른다.

첫 번째 이르기를, 조선의 지위 높은 집안으로 대대로029029 혁엽(弈葉)여러 代, 대대로의 뜻(三國 魏 曹植, 「王仲宣誄」).닫기 왕을 칭하였고, 오랑캐를030030 훈로(獯虜)北方 오랑캐의 蔑稱(『文選』 王粲).닫기 물리쳐서 당 황실을 보좌했구나.031031 익량(翊亮)輔佐하다(『南史』 範雲傳).닫기 노룡(盧龍)의032032 노룡(盧龍)지금의 河北省 秦皇島市 부근에 있던 縣名으로 隋 開皇18年(598)에 盧龍縣으로 처음 명명되었다.닫기 변방 군영이며,033033 유새(柳塞)邊塞의 軍營(陳 寅恪, 「乙酉八月聽讀張恨水著水滸新傳感賦」詩)닫기 도호(都護)함은034034 도호(都護)前漢 宣帝 때 이래로 唐代에 걸쳐서 邊境을 慰撫하고 征伐하는 일을 관장했던 관직.닫기 강역의 경계로다.035035 봉강(封疆)강역의 경계(『管子』 小匡).닫기 두 번째 이르기를, 부친은 공훈 있는 가문을 부흥시켜036036 극숭(克崇)잘 숭상하다. 부흥시키다(『後漢書』 方術傳 上 謝夷吾).닫기 저모(苴茅)로037037 저모(苴茅)帝王이 諸侯에게 分封을 할 때,封地의 위치에 따른 색깔의 흙을 흰 풀에 싸서 분봉의 상징으로 주었던 데서 비롯된 표현(『書經』 禹貢).닫기 봉함을 받았고, 경사(京師)에서038038 계옥(桂玉)桂玉之地의 준말로 京師를 가리킨다(唐 黃滔 『崔右丞啟』).닫기 가문을 이었구나. 애기풀이 무덤의 나무에039039 송가(松檟)松과 檟 두 종류의 나무로 보통 무덤 앞에 심는 나무들이다. 이에 松檟는 墓地의 代稱으로도 쓰였다(晉 葛洪 『抱樸子』 備闕).닫기 이르니, 망산(邙山)의 남쪽의 산기슭이로다. 세 번째 이르기를, 함께 하기를 인자함과 효성스러움으로 하여, 천리의 길에서 상여를 호송하였고, ▨를 신고 내리는 눈을 무릅썼으니, 가슴을 찢고, 창자를 빼어내는 것만 같구나. 슬픈 부르짖음이 땅을 치고, 우러러 하소연함은 창천이로다.040040 궁창(穹蒼)蒼天을 의미한다(『詩經』 大雅 桑柔).닫기


註 001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唐의 종1품 文散官이다.(『通典』 권34, 職官16, 文散官, 開府儀同三司)
註 002
공부상서(工部尙書) : 工程·工匠·屯田·水利·交通 등의 政令을 담당했던 工部의 장관으로 정원 1인, 정3품이다(『唐六典』 卷第7 尙書工部).
註 003
특진(特進) : 당의 정2품의 文散官이다(『舊唐書』 권42, 職官1).
註 004
우금오위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 : : 금오위는 궁중 및 경성을 주야로 순찰·경계하는 법에 의거하여 잘못과 위반을 막는 일을 관장한다. 左·右金吾衛가 있는데, 각각 최고위직으로 대장군이 있으며, 정원 1인, 정3품이다(『唐六典』 卷第25 諸衛府).
註 005
안동도호(安東都護) :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軍政機關인 安東都護府를 가리킨다. 휘하에 9도독부 42주 100현을 두어 고구려 고지를 관장케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 등의 반발로 676년 2월에는 치소를 遼東城(현 遼陽)으로 옮겼고, 그 이듬해에 다시 신성(현 撫順)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 移置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안사의 난의 영향으로 761년 최종 폐지되었다(津田左右吉, 1964, 『津田左右吉全集』 제12권, 岩波書店).
註 006
담국공(郯國公) : 郯國은 현재 山東省 臨沂市 郯城縣 郯城鎮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인다. 國公은 文散官의 品階 수여로서 봉작을 받은 것으로 관품은 正三品下에 해당한다. 唐代에는 보통 九等爵으로 나오는데, 각각의 명칭은 사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唐六典』과 『舊唐書』에는 王·郡王·國公·郡公·縣公·縣侯·縣伯·縣子·縣男으로 나와있다.
註 007
박릉군(博陵郡) : 지금의 山東省 茌平의 博陵鎮
註 008
유성군(柳城郡) : 隋 煬帝때 營州를 두면서 柳城郡을 처음 개설했으며, 唐 武德初年(618)에 營州總管府의 領縣이었다가 唐 天寶元年(742)에 營州 소속의 柳城縣이 되었다. 지금의 遼寧省 朝陽市 남쪽인 十二臺營子鄕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註 009
운휘장군(雲麾將軍) : 唐代 종3품의 武散官이다.
註 010
우표도대장군(右豹韜大將軍) : 황제 직속의 18衛에 속한 左·右威衛에는 최고위인 대장군이 左右 각각 1인이 있으며, 정3품에 해당한다. 『新唐書』 권49상, 「百官4上」 本注에 따르면 唐 光宅元年(684)에 左右威衛를 左右豹韜衛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다만 神龍 元年(705)에 다시 좌·우위위로 하였다고 한다(『唐會要』 권71 十二衛). 따라서 고진의 부친 때에는 右豹韜衛大將軍이라는 관명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註 011
귀종(貴種) : 지위가 높고 귀한 집안(『史記』 匈奴傳).
註 012
영족(令族) : 名望 있는 집안. 좋은 집안(晉 陶潛, 「贈長沙公族祖詩」).
註 013
회화(懷化) : 귀순하여 따르다(『晉書』 琅邪王伷傳).
註 014
계토(啓土) : 토지를 개척하거나 영토를 확대하다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문맥상 중국 황제에 의해 땅을 떼어내 봉함을 받았다는 뜻(『文選』 史岑 出師頌)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註 015
국빈(國賓) : 원래 朝聘하러 온 제후나 孤·卿·大夫 등을 이르는 말이었는데(『周禮』 春官 司几筵), 이후 새 왕조 입장에서 옛 왕조의 후예들에 대한 존칭으로도 쓰였다(唐 楊炯, 『後周宇文公神道碑』).
註 016
단간(丹懇) :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唐 劉禹錫, 「代賀赦吳少誠複官爵表」).
註 017
사봉오급(司封五級) : 司封은 官署의 명칭으로 司封司라고도 칭한다. 唐高宗 龍朔2年(662)에 主爵을 고쳐서 두었으며, 이후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玄宗代인 開元元年(713)에 司封으로 다시 칭해진 뒤 그 명칭이 당말까지 이어졌다. 관리의 銓選과 授官, 策勳과 封爵, 考課에 관한 政令을 주로 관장하는 吏部 四司의 하나로 封爵의 일을 관장한다. 司封郎中을 두는데 정원 1인으로 관품은 종5품상에 해당한다(『唐六典』 卷第2 尙書吏部). ‘司封五級’이란 아마도 사봉이 정하는 封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018
자남(子男)으로부터 ~ 이르렀고 : 公·侯·伯·子·男은 5등의 爵位이다(『尚書』 武成). 작위가 순차적으로 올랐음을 표현한 문구이다.
註 019
관품의 ~ 올랐으니 : ‘遊擊’은 종5품의 武散官인 遊擊將軍을 가리키고, 開府는 종1품의 文散階인 開府儀同三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관품이 하위에서 고위로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註 020
최붕동압(榱崩棟壓) : ‘棟折榱崩’(대들보가 무너지면 서까래도 무너진다)과 같은 의미의 표현으로 집안이 기울거나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春秋左氏傳』 襄公篇 31年). 묘주 고진의 죽음을 비유한 표현이다(권덕영, 2021b, 205쪽).
註 021
사록(沙簏) : 沙簏으로 판독이 되는데 정확한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권덕영은 이를 ‘沙麓’의 오각 혹은 이체자로 판단하는 가운데, 황태후나 황후와 같은 고귀한 여성을 칭송하는 표현이라고 보았다. 즉 ‘沙麓의 땅이 갈라졌다는 것은 고진의 부인인 진정후씨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권덕영, 2021b, 206쪽).
註 022
장성(將星) : 고대에 帝王·將相은 하늘 위의 星宿과 상응한다고 여겼는데, 將星은 곧 大將을 상징하는 星宿로 보았다(『隋書』 天文志).
註 023
홍양(虹梁) : 무지개 다리(後蜀, 何光遠 『鑑誡錄』 高僧諭).
註 024
동절검침(桐折劍沈) : 『史記』 권66 伍子胥列傳과 『十八史略』 제7편 春秋·戰國에 나오는 伍子胥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옮긴 것이 아닐까 한다. 吳의 재상 伯嚭가 오자서를 참소하자 국왕 夫差가 오자서에게 屬鏤라는 劍을 하사하여 자결하게 했다. 이에 오자서는 분하게 여겨 가족들에게 반드시 자신의 무덤에 개오동나무(사기에는 ‘梓’로 나오며, 『십팔사략』에는 檟로 나온다)를 심어 부차의 官材로 삼고, 또 자신의 눈을 도려내어 동쪽 성문에 걸어 오의 멸망을 보게 하라고 유언을 남긴 뒤 자결했다. 이에 부차는 오자서의 시체를 거두어 말가죽 부대에 넣어 강물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본문에는 나무의 이름이 ‘桐’으로 나와서 차이가 있으나 같은 고사를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註 025
경이란폐(鏡移鸞斃) : 南朝宋 範泰의 鸞鳥詩序에 의하면 옛날 罽宾王에게 사로 잡힌 난새는 새장에 갇혀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운명에 처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삼 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계빈왕은 거울을 걸어 난새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는데, 난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슬피 울기 시작했고, 결국 거울을 향해 달려 나가 부딪혀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太平御覽』 권916 鸞鳥詩序).
註 026
왕상(王祥) : 三國 魏末에서 西晉 초기의 사람으로 琅邪 臨沂人이다. 字는 休徵이다. 성품이 지극시 효성스러워서 계모가 한겨울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원하자 강으로 가서 옷을 벗고 얼음 위에 누워 얼음을 녹인 뒤 고기를 잡으려고 하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 나와서 잡혔다고 한다. 24孝의 한 사람이다(『晉書』 卷33 王祥傳).
註 027
모형(母兄) : 어머니가 같은 형을 가리킨다(『公羊傳』 隱公7年).
註 028
낙읍(洛邑) : 洛陽의 옛 명칭이다.
註 029
혁엽(弈葉) : 여러 代, 대대로의 뜻(三國 魏 曹植, 「王仲宣誄」).
註 030
훈로(獯虜) : 北方 오랑캐의 蔑稱(『文選』 王粲).
註 031
익량(翊亮) : 輔佐하다(『南史』 範雲傳).
註 032
노룡(盧龍) : 지금의 河北省 秦皇島市 부근에 있던 縣名으로 隋 開皇18年(598)에 盧龍縣으로 처음 명명되었다.
註 033
유새(柳塞) : 邊塞의 軍營(陳 寅恪, 「乙酉八月聽讀張恨水著水滸新傳感賦」詩)
註 034
도호(都護) : 前漢 宣帝 때 이래로 唐代에 걸쳐서 邊境을 慰撫하고 征伐하는 일을 관장했던 관직.
註 035
봉강(封疆) : 강역의 경계(『管子』 小匡).
註 036
극숭(克崇) : 잘 숭상하다. 부흥시키다(『後漢書』 方術傳 上 謝夷吾).
註 037
저모(苴茅) : 帝王이 諸侯에게 分封을 할 때,封地의 위치에 따른 색깔의 흙을 흰 풀에 싸서 분봉의 상징으로 주었던 데서 비롯된 표현(『書經』 禹貢).
註 038
계옥(桂玉) : 桂玉之地의 준말로 京師를 가리킨다(唐 黃滔 『崔右丞啟』).
註 039
송가(松檟) : 松과 檟 두 종류의 나무로 보통 무덤 앞에 심는 나무들이다. 이에 松檟는 墓地의 代稱으로도 쓰였다(晉 葛洪 『抱樸子』 備闕).
註 040
궁창(穹蒼) : 蒼天을 의미한다(『詩經』 大雅 桑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