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천남생 묘지명 (泉男生 墓誌銘)
소재지/출토지 하남성(河南省) 정주시(鄭州市)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하남성(河南城) 낙양시(洛陽市) 맹진현(孟津縣) 송장진(送庄鎭) 동산두촌(東山頭村)
연대 의봉(儀鳳) 4년(679)
크기 가로 91㎝ × 세로 91㎝
서체 및 재질 개석: 전서(篆書), 지석: 해서(楷書)
청석
주제분류 당|묘지명
찬자 / 서자 / 각자 왕덕진(王德眞) / 구양통(歐陽通) / 미상
역주자 안정준
판독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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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람

대당(大唐) 고(故) 특진(特進) 행우위대장군(行右衛大將軍) 겸 검교우우림군장내공봉(檢校右羽林軍仗內供奉) 상주국(上柱國) 변국공(卞國公)으로 병주대도독(幷州大都督)에 추증된 천군(泉君)의 묘지명, 아울러 서(序)
중서시랑(中書侍郎) 겸 檢校相王府司馬(檢校相王府司馬)인 왕덕진(王德眞)이 찬술하였고, 조의대부(朝議大夫) 행사훈랑중(行司勲郎中) 상기도위(上騎都尉) 발해현개국남(渤海縣開國男)인 구양통(歐陽通)이 글씨를 썼다. 무릇 옥을 품은 돌에서 무지개빛이 나면 곧 토지에 임하여 산을 빛내며, 물결에 잠긴 진주조개가 빛나면 또한 냇물에 인하여 물을 아름답게 한다.001001 무릇 옥을 ~ 아름답게 한다 “돌이 玉을 감추고 있으면 山이 빛나며,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냇물이 아름답게 된다(石韞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이다(晉 陸機, 「文賦」).닫기 붉은 문을 밀쳐 열고서 帝王의 車駕에002002 자개(紫蓋)紫色의 수레 덮개. 帝王의 儀仗의 하나로서 帝王의 車駕를 가리키는 표현이다(南朝 梁 沉約, 「齊故安陸昭王碑文」).닫기 올랐으니, 멀리서부터 눈부시게 빛남이003003 등휘(騰輝)눈부시게 빛남(唐 寒山 「詩」의 203).닫기 부귀한 자의 수레보다004004 화헌(華軒)富貴한 자가 탄 華美한 수레(南朝 梁 江淹 『雜體詩』 效左思「詠史」).닫기 열배나 더했으며, 명성이 더해지고 높아져서 비옥한 땅의005005 오양(奧壤)비옥한 땅(『晉書』 孝武帝紀).닫기 다섯 성을 쪼개어 받았다. 하물며 거듭하여 구슬처럼 운행하는 각성(角星)과 저성(氐星)은006006 각저(角氐)角과 氐는 각각 東方 蒼龍七宿의 제1, 제3의 星宿 이름이다.닫기 수많은 별의007007 경수(景宿)수많은 별들(晉 左思 「吳都賦」).닫기 아름다운 빛에 드리웠고, 푸른 바다의 지부(之罘)는008008 지부(之罘)지금의 山東省 煙台市 북쪽의 之罘島에 있는 산 이름으로 동쪽 바다에 있는 名山으로 여겨졌다. 진시황이 이곳에 올라서 돌을 깎아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史記』 秦始皇本紀).닫기 명산의 기색에 감응하였다. 유순한 지경(地境)에서009009 유순한 지경(地境)중국 상고시대 이래로 동쪽에 군자가 사는 나라가 있고, 그곳 사람들은 천성이 유순하고 인자하다고 여겼다(『後漢書』 東夷傳 序文). 이에 ‘柔順之境’은 東夷族이 사는 동방지역을 의미한다고 본다(권덕영, 2021b, 224쪽).닫기 발꿈치를 들어올려 군자의 근원을 시작하였고,010010 남상(濫觴)술잔에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을 의미하며, 큰 강도 결국 그 시초는 술잔이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荀子』 子道篇).닫기 조두(俎豆)를011011 조두(俎豆)중국 고대 祭器의 이름이다. 『三國志』 東夷傳 夫餘條에 의하면 “음식을 먹고 마심에 모두 俎豆를 사용한다”고 하였고, 同書 동이전 序에서도 “비록 오랑캐의 나라이지만 俎豆를 쓰는 예절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동방 지역에 잔존한 중국 고대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닫기 안고 법도를 엿보았으며, 화려한 비단을012012 금수(錦繡)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사물을 의미한다(唐 劉禹錫 「酬樂天見貽賀金紫之什」詩).닫기 품고서 조정에013013 낭묘(廊廟)廊肆. 宮殿의 외곽 건물과 太廟. 즉 朝廷을 가리킨다(『國語』 越語 下). 본문에서는 관직에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닫기 나아갔다. 뿌리를 옮겨 산골짜기에 자리하니, 큰 집을 이룰 두터운 재목으로 자라났고, 직위를 바꾸어 조정에 미치니, 큰 군대의014014 원융(元戎)큰 兵車(『詩』 小雅 6月). 혹은 大軍을 의미하기도 한다(『史記』 三王世家). 본문에서는 큰 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닫기 중요한 임무를 받들었다. 수후(隨侯)의 구슬이015015 수주(隨珠)隨侯之珠라고도 한다. 옛날 춘추시대의 隨侯가 길가에 있던 큰 뱀을 구해주고 받았다는 신령한 구슬로 진귀한 물품을 의미한다(『淮南子』 覽冥訓).닫기 담긴 함과 초(楚)의 화씨벽(和氏璧)이016016 초벽(楚璧)춘추시대 楚의 卞和가 얻은 和氏璧을 가리킨다(『韓非子』 和氏).닫기 묶인 끈을 어찌 동일하게 논할 것인가. 변국공(卞國公)에게서 이것이 드러나도다. 공의 성은 천(泉)이요, 이름은 남생(男生)이며, 자는 원덕(元德)이니, 요동군(遼東郡) 평양성(平壤城) 사람이다. 무릇 먼 선조는 본래 샘에서 나왔으니 신에 의탁하여 복을 내려받았고, 마침내 그로 인하여 태어나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것은 봉황이 단혈(丹穴)에서017017 단혈(丹穴)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단사(丹砂)를 내는 산의 동굴. 이러한 산을 丹山이라 하며 여기에 鳳凰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山海经』 南山经).닫기 태어나 구포(九苞)의018018 구포(九苞)鳳의 아홉 가지 특징으로, 이후 鳳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다(『初學記』 卷30 所引 「論摘衰聖」).닫기 기묘한 무늬를 드러내었고, 학이 청전(靑田)에서019019 청전(靑田)『初學記』 卷30에 인용된 「永嘉郡記」에 의하면 靑田은 永嘉郡 洙沐溪에서 9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한 쌍의 白鶴이 해마다 새끼를 길러 내보낸다는 전설이 있다(권덕영, 2021b, 226쪽).닫기 나와 천년동안 신령스러운 자태를 품부하는 것과 같았다. 이로써 속이 빈 뽕나무에서 훌륭한 이를 탄생시켰고,020020 속이 빈 뽕나무에서 ~ 탄생시켰고옛날에 有侁氏가 뽕을 따다가 속이 빈 뽕나무(空桑)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하여 임금에게 바쳤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은의 名臣인 伊尹이었다는 고사가 있다(『吕氏春秋』 本味).닫기 허죽(虛竹)이 물결을 따라왔으니, 모두 하늘의 맑은 기운에서021021 건정(乾精)하늘의 精氣(『三國志』 魏志 明帝紀).닫기 내려와 삼가 걸출한 인물로 드러난 것이다. 마침내 큰 근원으로022022 홍원(洪源)大業의 시발점(漢 蔡邕 「釋誨」)닫기 하여금 당겨서 이끄니, 그 모습이 천추성(天樞星)을023023 금추(金樞)北鬥의 제1星인 天樞星을 가리킨다. 군주의 지위를 비유한 표현이다.닫기 가릴 정도였고, 일찍이 집안의 대청(大廳)이 길게 이어져,024024 연무(延袤)길게 이어져있다. 뻗어있다(『史記』 蒙恬列傳).닫기 그 기세가 화려한 궁궐에 임할 정도였다. 증조부인 자유(子遊)와 조부인 태조(太祚)는 모두 막리지(莫離支)를 역임하였고, 부친인 개금(蓋金)은 태대대로(太大對盧)를 역임하였다. 조부와 부친이 가업(家業)을 잘 계승하여025025 양야양궁(良弓良冶)우수한 대장장이 아들은 반드시 가죽 옷 꿰매는 것을 익히고, 뛰어난 궁사의 아들은 반드시 箕 만드는 일을 익힌다(“良冶之子必學爲裘 良弓之子必學爲箕”)는 문구에서 인용한 표현. 先代의 전통 혹은 家業을 훌륭하게 계승하는 모습을 이른다(『禮記』 學記).닫기 병권을026026 병검(兵鈐)兵權을 말한다(唐玄宗 「端午三殿宴群臣詩」序).닫기 잡고 모두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하였다. 계루(桂婁)의027027 계루(桂婁)고구려의 초기 5部 가운데 하나인 桂婁部를 가리킨다.닫기 성대한 왕업이 혁연(赫然)하게 바뀌는 바탕이었으며, 봉래산(蓬萊山)에서028028 봉산(蓬山)蓬山은 동방의 蓬萊山을 가리킨다(『山海經』 海內北經).닫기 높이 바라봄은 확실히 이윤(伊尹)과 곽광(霍光)의 소임보다 높고 굳건한 것이었다.029029 이윤(伊尹)과 ~ 굳건한 것이었다伊霍은 伊尹과 霍光을 가리킨다. 伊尹은 殷代의 인물로 이름은 伊이고, 尹은 관직 이름이다. 일명 摯라고도 한다. 湯王의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으며, 夏를 멸하고 은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은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편 霍光은 前漢代의 河東 平陽 사람으로 字는 子孟이다. 霍去病의 이복동생으로 漢武帝 때 奉車徒尉가 되어 신임이 두터웠으며, 後元 2년(기원전 87)에 大司馬大將軍이 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20여 년 동안 한 치의 허물도 없었다고 하며, 선제가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모셔놓은 麒麟閣에서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다(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이회문화사). 한편 確乎는 굳세고 높은 모습을 의미한다(『易』 乾).닫기 공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계책으로030030 이궐(貽厥)『詩經』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有聲」에서 “公詒厥孫謀, 以燕翼子”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詒厥’ 즉 ‘貽厥’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책이나 도움을 뜻한다.닫기 복을 전해 내려와 의관은 왕공의 후손과 같았고, 물려받은 도움으로031031 연익(宴翼)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책이나 도움(『詩經』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有聲」).닫기 영화(榮華)를 이어갔으며, 관작(沛鄒)은032032 패추(沛鄒)문맥상 『三國志』 동이전에 보이는 고구려의 관직인 沛者와 古鄒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구려에서의 관작과 봉작을 포함한 여러 벼슬을 의미할 것이다(권덕영, 2021b, 230쪽).닫기 순영(荀令)의033033 순영(荀令)荀令君, 즉 荀彧을 가리킨다. 颍川 颍阴 사람으로 자는 文若이다. 曹魏의 曹操가 북방을 통일할 때 큰 공을 세운 모략가이자 功臣으로서 ‘王佐之才’로도 불렸다. 주로 軍國事務를 처리하여 荀令君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닫기 자손과 같이 되었다. 머리를 늘어뜨린 어린 시절에는 장난기가 없었고, 상투를 한 청년기에는 속되게 무리를 짓지 않았으며, 위개(衛玠)의034034 위개(衛玠)西晉 河東 安邑 사람으로 자는 叔寶이다. 衛恒의 아들로 예쁘게 생겨서 보는 사람마다 玉人이라 칭송했다. 그의 장인이었던 驃騎將軍 王濟가 번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위개와 함께 여행하면 마치 밝은 구슬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사람을 환히 비추어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晉書』 卷36 衛玠傳).닫기 수레를 타고 가듯이 길에서 빛남이 옥의 순수한 아름다움 같았고,035035 옥수(玉粹)玉의 순수한 아름다움(晉 孫綽 「至人高士傳贊」).닫기 도겸(陶謙)의 비단을 잇듯이036036 도겸(陶謙)의 ~ 잇듯이‘綴陶謙之帛’은 後漢末의 군웅인 陶謙이 나이 열넷에 이미 비단을 이어 깃발을 만들고 竹馬를 타고 놂에 邑內 아이들이 따랐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後漢書』 卷73 列傳 第63 陶謙 所引 ‘吳書’), 천남생이 어릴 적부터 군사적 재능과 지도력이 있었음을 표현한 문구이다.닫기 마을에서도 그 빛남이 마치 구슬을 품은 듯했다. 흉금에 품은 것은 소탈하고 밝았고, 자부심은037037 표치(標置)高自標置. 즉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다, 자부하다는 의미이다(『晉書』 卷75 列傳 第45 劉惔傳).닫기 크고 넓었으며, 넓고 뛰어남은 평판에 어긋남이 없었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지함은 적절한 때에 막힘이 없었다. 글공부와 무예는 모두 전하여서 사탕수수를 잡는 것과038038 제자(提蔗)曹魏의 曹丕의 『典論』 自敍에 曹丕가 奮威將軍 鄧展과 무예를 겨루기 위해 안주삼아 먹던 사탕수수막대기로 겨루어 그의 팔과 얼굴을 쳤다고 한다. 이에 의거해 提蔗는 곧 무예가 뛰어남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31쪽).닫기 부들을 자르는 것이039039 절포(截蒲)부들의 잎을 잘라서 글씨를 쓴다는 의미. 前漢代에 臨淮太守 등을 지낸 路溫舒는 밖에서 양을 치고 있는 동안에도 연못의 부들을 채취하여 잎을 잘라 엮어 글자판을 만들고 글씨연습을 했다고 전한다(『漢書』 卷51 路溫舒傳). 본문에서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권덕영, 2021b, 231쪽).닫기 모두 절묘하였고, 거문고와 바둑을 아울러 가지고 놀아서 기러기와 학의 행렬이 함께 마음을 기울였다. 인함을 체득하고 용맹함을 이루어 탄(誕)이040040 탄(誕)訛라고도 하며, 『神異經』 西南荒經에 나오는 전설상의 사악한 짐승 명칭이다(권덕영, 2021b, 231쪽).닫기 일으킨 악행에서 갑작스러운 우레를 잠재웠고, 믿음을 품고 정성으로 말미암아 우(禹)가 뚫은 큰 강에서041041 우착(禹鑿)禹의 治水工程 가운데 黃河의 治水를 언급한 것이다. 그는 龍門山을 뚫고 물을 大夏로 통하게 하여 九河를 소통시켰고, 九曲에 둑을 쌓아 막혀있던 물길을 터서 바다로 흘러가게 했다고 전한다(『史記』 卷87 李斯列傳).닫기 높은 파도를042042 경파(驚波)아슬아슬한 높은 파도(漢 張衡 「西京賦」).닫기 다스렸다. 하늘의 떳떳한 도리가043043 천경(天經) 天의 常道. 혹은 孝, 禮 등을 가리킨다.닫기 어그러지지 않았으니, 교화가 말미암아 생겼고, 왕도(王道)가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충(忠)이 훌륭한 덕이 되었던 것이다. 맑은 연못이 넓고 깊으면044044 만경(萬頃) 地面이나 水面이 아주 넓음을 일컫는 말이다.닫기 노니는 자들이 그 깊고 얕음을 헤아릴 수 없고, 둘러싼 담장이 구인(九仞)이나045045 구인(九仞) 1仞은 8尺(약 2.4m)이며, 九仞은 매우 높은 것을 표현한 말이다.닫기 되면 이야기하는 자가 그 집의 뜰과 건물을 살필 수 없다. 나이가 겨우 9살에 곧 선인(先人)을046046 선인(仙人)先人은 고구려 초기부터 멸망기까지 존재했던 관등의 하나이다. 7세기 고구려의 관제를 기록한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고구려의 최고위 관등은 大對盧, 최하위 관등은 선인이라고 하였다. 즉 고구려 말기에는 귀족 자제가 관직 경력을 처음 시작하면서 받는 최말단의 관등이라고 할 수 있다.닫기 주었다. 부친의 공적으로047047 부임(父任)아버지의 음덕으로 관직에 임용되었음을 말한다(『漢書』 汲黯傳).닫기 랑(郞)이 되자 곧바로 영특한048048 입진(入榛)荷戟入榛의 줄임말이다. 揚雄의 둘째아들인 揚信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는데, 양웅이 『周易』 大壯卦의 “숫양이 뿔로 들이받기를 좋아해서 울타리를 받다가 뿔이 걸려 꼼짝도 못한다”는 뜻의 ‘羝羊觸蕃’과 비슷한 말을 찾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서서 “어찌 창을 매고 덤불속으로 들어간다(荷戟入榛)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조언했다고 한다(『太平御覽』 卷388 「劉向別傳」). 천남생이 양신에 버금가는 영특함과 지혜로움이 있었음을 비유한 것이다(권덕영, 2021b, 233쪽).닫기 변설을 토해냈고, 제왕이 천하를 다스림에049049 천공기대(天工其代)“天工人其代之”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으로,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대신하여 한다. 즉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書』 皐陶謨).닫기 바야흐로 녹색 인끈을 매는050050 결애(結艾)관복에 매는 녹색의 인끈을 艾綬라고 하였다(『後漢書』 卷33 朱馮虞鄭周列傳 第23 馮魴).닫기 영예로운 관직에 올랐다. 나이 15세에 중리소형(中裏小兄)을051051 중리소형(中裏小兄)中裏는 裏內 혹은 禁中의 의미를 지닌 고구려 특유의 관칭으로서, 국왕의 近侍 업무를 수행하는 국왕 직속의 官僚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武田幸男, 56~57쪽).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小兄은 일명 失支로서 고구려의 관등 가운데 10번째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의 正7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닫기 받았고, 18세에 중리대형(中裏大兄)에052052 중리대형(中裏大兄)大兄은 고구려 후기의 관등이다.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大兄은 일명 纈支로 여러 관등 가운데 7번째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의 正5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닫기 임명됐으며, 23세에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으로053053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位頭大兄은 고구려 후기의 관등으로 皂衣頭大兄이라고도 한다.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고구려의 관등 가운데 5번째에 해당하며, 중국의 從3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 위두대형 이상의 관등소지자들은 고구려의 중앙에서 국가의 주요 국사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특권계층이었다고 생각된다(武田幸男, 365~367쪽).닫기 고쳐 임용되었고, 24세에 장군(將軍)을 겸하여 받고 나머지 관은 예전과 같이 하였다. 28세에 막리지(莫離支)에054054 막리지(莫離支)고구려의 제2관등인 太大兄으로서 각 귀족집단을 대표하는 유력 가문의 대표자가 보유한 관등이었다고 생각된다(임기환, 287~292쪽).닫기 임용되었고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을 겸하여 받았으며, 32세에 태막리지(太莫離支)가055055 태막리지(太莫離支)大莫離支라고도 한다. 기존의 막리지에서 분화한 관명으로 연개소문 집권기에 처음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 관등은 太大兄을 넘지 않으나, 종전의 막리지보다 상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집권적 관직으로 생각된다(임기환, 307쪽).닫기 더해졌으니, 군사와 국정을 총괄하였으며, 국가의 원수를056056 원수(元首)국가의 최고 領導者. 국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陳毅 「開國小言」詩).닫기 보필하였다.057057 아충(阿衡)본래 商代의 官名으로 保衡이라고도 한다. 국가의 보필 임무를 맡는 재상을 이르는 말이다(『書』 太甲上 ; 『世說新語』 政事)닫기 선조에게서 물려받은058058 선주(先疇) 조상이 물려준 農土. 즉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산을 의미한다(『文選』 班固 「西都賦」).닫기 유업(遺業)을 이어감에 선비들이 이를 알고 복종하였고, 위태로운 나라의 권력을 잡음에 사람들 중에 논박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황제께서 지도와 호적으로059059 나도(蘿圖)지도와 호적을 나열하다.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淮南子』 覽冥訓).닫기 천하를 다스리심에 호시(楛矢)의060060 호시(楛矢)楛木으로 만든 화살이라는 의미로, 중국 동북의 肅愼이 중국왕조에 공물로 바쳤던 물품이다(『國語』 魯語下). 본문에서는 東夷, 즉 고구려의 朝貢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닫기 공물이 기일을 어겼다.061061 건기(褰期)騫期. 즉 약속한 기한을 어김을 의미한다(晉 劉琨 「扶風歌」).닫기 공은 같은 핏줄간의 우애를062062 화악(花萼)꽃의 구성 부분인 꽃받침의 총칭이다. 꽃과 꽃받침은 모두 한줄기에서 나왔으므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 표현으로도 쓰였다(唐 李白 「贈從弟洌」詩).닫기 빛냈으나, 안으로는 없애기 어려운 잡초가 있었고, 나라의 기둥이 되고자 하였으나, 밖으로는 장차 엎어지려는 나무가 있었다. 마침내 도해(桃海)의063063 도해(桃海)盤桃 혹은 蟠桃가 자라는 바다를 의미한다. 『論衡』 訂鬼에 인용된 『山海經』에 의하면, 蟠桃는 바다 위에 있는 도삭산(度朔山) 위의 큰 복숭아나무이다. 본문에서는 동방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생각된다.닫기 물가에서 팔조(八條)를064064 팔조(八條)箕子의 8조 禁法이다. 『三國志』 東夷傳 濊條의 ‘八條之敎’라는 표현이나, 「李他仁墓誌銘」의 ‘八條之國’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중국에서 기원해 전래된 요동(고구려)지역의 法敎와 道理, 혹은 그 지역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닫기 예의와 겸양에서 어그러뜨렸고, 병풍의 내부에서065065 소장(蕭墻)‘季孫의 근심거리가 전유에 있지 않고 병풍 안에 있다’(季孫之憂 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는 문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蕭墻之內는 내부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다(『論語』 季氏).닫기 사방을 전쟁터로 떨어뜨렸다. 공은 마음속으로 귀순을066066 내관(內款)귀순 혹은 항복을 의미함(『南齊書』 氐傳).닫기 생각하였으나, 일이 중용(中庸)의 도에067067 중집(中執)『書』 大禹謨에 나오는 執中과 같은 의미로 보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中庸의 道를 의미한다(권덕영, 2021b, 237쪽).닫기 어긋났다. 바야흐로 나가서 변경의 백성들을 어루만지고자하여 밖으로 궁벽한 지역을 순시하며 우이(嵎夷)의 옛 땅을 살피고, 희중(羲仲)의 새로운 관직을068068 희중(羲仲)의 새로운 관직中國 古代 傳說上의 왕인 堯가 羲仲에게 嵎夷로 가서 살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史記』 卷2 「夏本紀」 嵎夷旣略條 索隱), 이때의 嵎夷는 곧 동쪽 땅을 지칭한 것이다. 羲仲之新官은 곧 천남생이 고구려 지역을 관장할 수 있는 새로운 직위를 의미하는 것이다(권덕영, 2021b, 237쪽).닫기 (황제에게) 청하고자 하였다. 두 동생인 남산(男産)과 남건(男建)이 하루아침에 흉악해져서 혈육에게 차마못할 짓을 자행하고 군사를 일으켜069069 칭병(稱兵)군사를 일으키다. 武力을 사용하다(『禮記』 月令).닫기 안에서 저항하였다. 금팔찌를 한 어린 자식이 갑자기 살해되었고,070070 경예(鯨鯢)무고하게 살해된 사람을 의미한다(漢 李陵 「答蘇武書」).닫기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큰 연회석에서071071 장연(長筵)폭이 넓은 대나무 좌석. 길게 늘어선 연회석을 가리킨다(三國魏 曹植 「名都篇」).닫기 갑자기 부모가 길러준 은혜를072072 고복(顧復)부모의 養育함을 의미한다(『詩』 小雅 蓼莪).닫기 저버렸다. 공은 이로써 형제들이073073 공기(共氣)同胞의 兄弟를 의미한다(『文選』 謝莊 宋孝武宣貴妃誄)닫기 산산이 흩어졌으니,074074 성분(星分)산산이 흩어지다(『魏書』 崔浩傳).닫기 눈물을 삼키면서 격문을 날렸고, 동맹이 비처럼 모여들어서 마침내 각고의 인내로 분발하여075075 함담(銜膽)각고의 노력으로 분발하다. 臥薪嘗膽한다는 의미(『晉書』 姚興載記上).닫기 창을 들었다. 장차 평양(平壤)을 쳐서 큰 악인을 사로잡으려하였는데, 우선 오골(烏骨)의076076 오골(烏骨)고구려의 烏骨城을 가리킨다. 현재의 遼寧省 丹東市 鳳城縣 일대에 있는 鳳凰山城에 해당한다.닫기 교외에 도달하여, 또 크고 굳센 보루를 격파하고 그 도적됨을 밝혔으며, 북을 울리며 행군하고 또 나아갔다. 이에 대형(大兄) 불덕(弗德) 등을 보내어 표를 받들고 조정에 들어가게 했으며, 그 사건의 행적을 진술하게 했다. 마침 이반(離叛)이 생겨서 불덕은 마침내 그곳에 체류하게 되었다. 공은 이에 요동으로 깃발을 돌려서 군사를 바다의 북쪽으로 옮기고, 천자의 궁궐을 향해 마음속으로 내달렸으며,077077 치심(馳心)마음으로 향해가는 것이 마치 車馬가 달리는 것과 같음을 의미(三國 魏 曹植 「上責躬應詔詩表」).닫기 현도(玄菟)의 성에서 스스로의 처신을 경계했고,078078 칙궁(飭躬)자신의 처신을 바르게 하도록 항상 경계하는 것을 의미함(『漢書』 宣帝紀).닫기 다시 대형 염유(冉有)를 보내 정성스러운 마음을 거듭해서 아뢰었다. 광림(曠林)에서 원한을 쌓아서 먼저 알백(閼伯)의 창을 찾았고,079079 광림(曠林)『左傳』 召公 元年條의 故事에서 인용한 것이다. 중국 전설상의 五帝중의 하나인 帝嚳(高辛氏)에게 閼伯과 實沈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살던 곳이 曠林이다.두 아들은 형제간에 서로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싸웠으며, 결국 요임금이 알백으로 하여금 商丘로 옮겨가 辰星을 모시게 했다고 한다. 고구려에서 남생의 형제들이 싸운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닫기 홍지(洪池)에서 가까이 노닐며 어찌 우숙(虞叔)의 칼을 탐냈던가.080080 홍지(洪池)에서 ~ 탐냈던가?『左傳』 桓公 10年條의 故事를 인용한 것이다. 춘추시대 때 虞를 다스리던 虞公은 아우인 虞叔이 가진 名玉을 몹시 탐냈다. 우공은 名玉을 받고난 뒤에 또다시 우숙에게 그가 가진 寶劍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숙은 형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결국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켜서 우공을 쳤다. 이 일로 우공은 洪池로 도망쳤다. 천남생이 동생들에게 배반당해 변방을 떠도는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권덕영, 2021b, 240쪽).닫기 황제께서 저 청구(靑丘)를081081 청구(靑丘)靑邱라고도 한다. 중국왕조 입장에서 동방의 東夷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표현이다(『呂氏春秋』 卷22 求人).닫기 밝게 비추어보시고, 그 지극한 정성을082082 단간(丹懇)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唐 劉禹錫, 「代賀赦吳少誠複官爵表」).닫기 밝히셨으며, 남건과 남산의 죄를 살피시고, 천둥과 벼락같은 위엄을 드러내셨다. 환도산(丸都山)에 아직 새기지 않았을 때083083 환도산(丸都山)에 ~ 않았으나正始 6년(245) 曹魏의 毋丘儉이 고구려를 공격하였을 때, 魏軍이 丸都之山에 새기고, 不耐之城에 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三國志』 卷28 毌丘儉傳). 丸山은 곧 丸都山이며, ‘丸山未銘’은 아직 관구검의 원정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다.닫기 득래(得來)는 먼저 깨달음을 드러냈고,084084 득래(得來)는 ~ 드러냈고魏 毌丘儉의 고구려 침입 때, 고구려의 沛者 得來가 동천왕에게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이에 탄식하여, “장차 이 땅에 쑥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하고 말하며 마침내 굶어죽었다. 관구검은 고구려 왕성에 이르러 그의 분묘를 파괴하거나 분묘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지 못하도록 명을 내리고 그의 처자를 풀어주었다고 한다(『三國志』 卷28 毌丘儉傳).닫기 양수(梁水)에 아직 재앙이 없었을 때,085085 양수(梁水)에 ~ 없었을 때梁水는 현재의 太子河로 비정된다. 遼寧省 동부에서 발원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本溪, 遼陽을 지나 遼河에 합류되는 강이다. 『新唐書』 卷220 列傳 第145 東夷 高麗에도 “少遼出遼山西 亦南流 有梁水出塞外 西行與之合”의 梁水와 동일한 강으로 보인다. ‘梁水無孼’에서 언급된 양수의 재앙은 3세기 전반에 요동에 있었던 公孫淵 세력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권덕영, 2021b, 241쪽).닫기 중모(仲謀)는086086 중모(仲謀)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孫權을 가리킨다. 孫堅의 둘째 아들로 200년에 형 孫策이 죽자 그 뒤를 이어 周瑜 등의 보좌를 받아 나라를 지켜내고 江南 경영에 힘썼다.닫기 그것이 반드시 망할 것을 염려하였다. 건봉(乾封) 원년(666)에 공이 또 아들 헌성(獻誠)을 보내 입조시켰다. 황제께서 가상히 여기고 멀리서 공을 특진(特進)에087087 특진(特進)당의 文散官으로 관품은 정2품에 해당한다.닫기 배수하고 태대형(太大兄)은088088 태대형(太大兄)고구려 후기의 관등명이다. 제1위인 大對盧 다음으로 높은 관등으로서 異稱은 莫何何羅支이다.닫기 예전과 같이 하였으며,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摠管)089089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摠管)平壤道 방면을 원정하는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임시관직이다. 摠管은 군진이나 행군의 군사를 통솔하는 무관이며, 大摠管은 이 여러 총관들을 거느리는 최고위 사령관이다. 당의 고구려 정벌과 관련하여 임시로 주어진 직위일 것이다.닫기 겸 사지절안무대사(使持節按撫大使)로서090090 사지절안무대사(使持節按撫大使)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大使는 節度使 휘하의 장군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특수임무를 띤 官人에게 붙인 명칭으로 볼 수 있다.닫기 본국의 군대를 이끌고 대총관(大摠管)091091 대총관(大摠管)大摠管은 이 여러 총관들을 거느리는 최고위 사령관이다.닫기 계필하력(契苾何力)092092 계필하력(契苾何力)당나라 때의 무장으로, 본래 鐵勒部 사람이다. 당 태종 貞觀 6년(632)에 주민 천여 명을 이끌고 당나라에 귀순했다. 645년 당 태종의 요동 정벌 시에도 참전했으며, 乾封 원년(666)에 요동도행군대총관이 되어 천남생을 앞세워 遼水의 南蘇城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평양을 함락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舊唐書』 권109 契苾何力傳)닫기 등과 함께 서로 경략하게 하였다. 공은 국내성(國內城) 등 6성의 10여 만호를 이끌고 호적 문서를 원문(轅門)에 바쳤다.093093 원문(轅門)田獵할 때나 戰陣을 베풀 때에 드나드는 곳에 수레를 뒤집어 놓아 수레의 끌채를 서로 향하게 하여 만들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 표현. 軍營 혹은 陣營의 門을 의미한다(『史記』 卷7 項羽本紀 第7).닫기 또 목저성(木底城) 등 3성이 황제의 교화를 바라며 아울러 귀순하였다. 작고 위태로운 무리들이 나날이 궁박해지고 다달이 위축되었다. (건봉) 2년(667)에 조칙을 받들어 공이 입조하였다. 총장(總章) 원년(668)에 [천남생에게] 사지절요동대도독(使持節遼東大都督)094094 사지절요동대도독(使持節遼東大都督)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遼東大都督은 遼東大都督府를 통괄하는 관직명으로 大都督府의 장관인 都督의 관품은 종2품이며 정원은 1인이었다.닫기 상주국(上柱國)095095 상주국(上柱國)당의 최고위 勳官으로 관품은 정2품에 해당한다.닫기 현도군개국공(玄兔郡開國公)096096 현도군개국공(玄兔郡開國公)唐代의 사료에 의하면 玄兔郡은 고구려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代稱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여기서도 어느 한정된 지역을 가리키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開國公은 唐代 9等爵의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新唐書』卷46 百官1 尙書省 吏部에는 9등작의 명칭이 王, 嗣王·郡王, 國公, 開國郡公, 開國縣公, 開國縣侯, 開國縣伯, 開國縣子, 開國縣男 순서로 되어 있다. 개국공은 4번째인 開國郡公에 해당하며 관품은 정2품이었다.닫기과 식읍 2천호에 봉하였으며, 나머지 관은 예전과 같게 하였다. 소맥(小貊)은097097 소맥(小貊)佟佳江으로 비정되는 小水 인근의 貊人 집단을 小水貊이라고 한다. 小貊은 바로 이 小水貊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의 小貊은 문맥상 고구려를 가리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용례는 「泉獻誠墓誌」에서도 나타난다(권덕영, 2021b, 245쪽).닫기 아직 평안해지지 않았으니, 바야흐로 제비둥지가 있는 장막에098098 소연지막(巢䴏之幕)『春秋左氏傳』 襄公 29년조의 ‘猶燕之巢於幕上’이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으로 장막 위에 지어진 제비둥지. 즉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당시 고구려가 처했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45쪽).닫기 몸을 기울였으며, 황제가 명을 내리시니 또 개마(蓋馬)의099099 『三國志』 東夷傳 東沃沮條에서는 고구려가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唐 章懷太子 李賢의 注에서는 蓋馬가 玄菟郡의 縣名으로 그 山이 지금의 平壤城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문맥상 고구려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다.닫기 군영으로 돌아갔다. 그해 가을에 칙을 받들어 사공(司空)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과100100 사공(司空)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李勣은 당나라의 장수로 본래 河北省 離狐 사람이다. 자는 懋功이며 본성은 徐氏이다. 수나라 말에 李密 휘하에 있다가 이후 당 고조에 투항하였다. 고조로부터 英國公에 봉해졌고 李姓을 하사받았다. 乾封元年(667)에 요동대총관에 임명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舊唐書』 卷67 열전17 李勣). 한편 司空은 太尉·司徒와 함께 三公이라 총칭되었던 관직으로 정원 1인, 정1품에 해당한다. 삼공은 천자를 보좌하여 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리고 나라를 평온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唐六典』 卷1 三師三公尙書都省).닫기 더불어서 서로 돕고 경략하였고 바람같이 달리고 번개처럼 떨쳐서 곧바로 평양의 성을 공격하였다. 앞에서는 노래하고 뒤에서는 춤을 추었으니 멀리서도 높은 성의 담장을 진동시켰다. 공이 죄인을 벌주고 인민을 위로함에 그 참혹한 죽음을101101 도지(塗地)肝脑涂地를 줄인 말. 간과 뇌가 흙에 범벅이 된다는 것으로 전란 중 사람이 죽고 참혹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나타낸다(『史記』 劉敬叔孫通列傳).닫기 가엾게 여겨서 몰래 은밀한 대책을 세워 이 기름진 평원을 구제하였다. 마침내 승려 신성(信誠) 등과 더불어 안팎으로 서로 호응하였으니, 조(趙)나라의 성에서 깃발을 뽑은 일이 어찌 한신(韓信)의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였겠는가.102102 조(趙)나라의 ~ 하였겠는가韓信은 淮陰縣 사람으로, 秦末에 난세가 되자 처음에 項羽의 진영에 들어갔으나, 나중에 劉邦의 진영에 가담하였다. 한신은 해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유방의 군사를 지휘하여 魏, 趙, 齊 등의 군사들을 자주 격파하였다. 특히 趙나라와의 싸움에서 한신은 불과 2만의 군사로 배수진을 치고 그 10배인 조나라를 제압했는데, 이때 다른 부대가 조나라 군사들을 유인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기병들이 조나라 성으로 들어가 깃발을 뽑아버리고 한나라 깃발을 세움으로써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왔다고 한다(『史記』 卷92 淮陰侯列傳).닫기 업성(鄴城)의 문에서 빗장을 뽑은 것은 원담(袁譚)의 장수들을 결집시킨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103103 업성(鄴城)의 ~ 것이다 袁譚은 후한말의 群雄인 袁紹의 長子이다. 원소가 조조에게 패하여 陣中에서 죽자, 장자인 원담은 동생 원상과 후계다툼을 벌였고, 이때 원담이 패하여 平原郡으로 달아났다. 원담은 거듭된 원상의 공격을 피해 조조의 구원을 받았다. 이후 조조는 원담과 더불어 원상을 공격했으며, 특히 원상의 거점인 鄴縣으로 가서 성을 포위했는데, 당시 성을 지키던 심배의 조카 審營이 밤에 성문을 열어 조조의 군사를 불러들임으로써 함락되었다고 한다(『三國志』 魏書 董二袁劉傳 建安7년 10월조). 본문에서는 당이 평양성을 함락시키는데 고구려측의 내분을 이용했음을 가리킨다.닫기 그 왕인 고장(高藏)과104104 고장(高藏)고구려의 제28대 왕인 寶藏王을 가리킨다.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당으로 왔으며, 677년에 遼東都督 朝鮮郡王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靺鞨과 통모하여 반란을 획책하였다가 발각되었고, 681년 邛州로 유배된 후 이듬해에 사망했다(『舊唐書』 卷199上 列傳 第149上 東夷 高麗).닫기 남건(男建) 등은 모두 포로가 되었고, 오랑캐가 있던 궁벽한 지역은105105 소산(巢山)과 잠해(潛海)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오랑캐가 있는 멀고 궁벽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닫기 모두 당의 강역으로 들어왔으며,106106 제봉(隄封)提封이라고도 쓴다. 疆域, 즉 중국의 영토‧판도를 의미한다(隋 薛道衡 「老氏碑」).닫기 오부(五部)와 삼한(三韓)은107107 오부(五部)와 삼한(三韓)모두 고구려, 혹은 고구려인을 의미하는 표현이다.닫기 아울러 신첩(臣妾)이108108 신첩(臣妾)통치 혹은 관할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는 영토로 편입된 곳을 의미한다(『商君書』 錯法).닫기 되었다. 마침내 능히 의(義)를 세우고 사적인 은혜를 끊은 것은109109 단의(斷恩)私的인 은혜를 끊다(『禮記) 喪服四制).닫기 정백(鄭伯)이 승리를 거둠과 같았고,110110 정백(鄭伯)의 ~ 같았고鄭伯은 춘추시대 鄭의 莊公을 가리킨다. 鄭의 제후인 武公과 부인인 武姜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이 莊公이며, 동생이 共叔段이었다. 어머니인 武姜은 장공을 미워하여 동생인 共叔段을 왕위에 앉히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무강과 공숙단은 京 지역에서 세력을 키우며 鄭의 장공을 치려고 했으나, 결국 鄢 지역에서 장공의 토벌을 당하여 멀리 달아났다(『春秋左氏傳』 隱公 元年). 得儁은 적을 사로잡은 勇士. 혹은 승리를 의미한다(『左傳』 莊公11年). 본문에서는 천남생이 동생들인 남건‧남산과 벌인 전쟁에서 이겼음을 의미한다(권덕영, 2021b, 250쪽).닫기 화를 되돌려 복을 이룬 것은 기자(箕子)가 공로에 보답한 것과111111 기자(箕子)가 ~ 보답한 것箕子는 姓은 子, 이름은 胥余이며, 箕 지역에 封해져서 箕子라고 한다. 紂王의 폭정에 대해 간언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 척을 하여 幽閉되었다. 훗날 주나라 무왕에 의해 殷이 멸망한 뒤 석방되었는데, 이때 무왕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洪範九疇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후 기자는 遺民을 이끌고 周를 벗어나 북방으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疇庸은 공로에 보답하다는 뜻이다(『文選』 任昉 爲範尚書讓吏部封侯第一表).닫기 같은 것이었다. 그해 영(국)공 이적 등과 더불어 수도로 개선하니, [황제께서] 공훈을 기록하고 축하의 연회를 베풀었다.112112 음지(飲至)凱旋의 공을 축하하는 연회(唐 郭澹 「喜陸侍禦破石埭草寇東峰亭賦詩」).닫기 전과를 바치는113113 헌첩(獻捷)전쟁 후 얻은 戰果를 바치는 것(『南朝梁』 任昉 奏弹曹景宗).닫기 날에 남건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공은 내심 천륜을 중요시하여서 황제에게114114 중혼(重閽)겹겹이 둘러싸인 宮門. 본문에서는 황제를 가리킨다(『梁書』 皇後傳 高祖丁貴嬪).닫기 청하여 주공(周公)이 채숙(蔡叔)을 추방한 것과115115 주공(周公)이 ~ 추방한 것蔡叔은 周 武王의 동생으로, 춘추시대 蔡國의 시조이다. 기원전 1043년 무왕이 죽은 뒤 成王이 즉위하였는데 나이가 어려서 周公 姫旦이 섭정이 되었다. 이때 蔡叔은 불만을 품고 武庚 등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주공은 召公 姫奭 등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진압하였으며, 蔡叔은 멀리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史記』 卷4 周本紀第4).닫기 같이 해달라고 하였다. 하늘이 감동하고 황제께서 돌보아주시니, 가벼이 처단하여 공공(共工)을 유배보내듯이116116 공공(共工)전설 속의 인물. 堯임금의 신하로 驩兜‧三苗‧鯀과 함께 四凶으로 불렸다. 治水를 잘못하여 舜임금이 幽陵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史記』 卷1 五帝本紀 第1 帝堯).닫기 하였으니,117117 가벼이 ~ 하였으니실제로 남건이 유배된 곳은 黔州 지역이었다. 유배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닫기 형제 간 우애의118118 우제(友悌)兄弟간의 우애를 가리킨다(唐 白居易 「和答詩」·和‘陽城驛’).닫기 지극함을 조정과 민간에서도 높게 평가했다. 그해에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119119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좌·우위 대장군은 각각 정원 1인으로 관품은 정3품이다. 궁정의 경비와 호위에 관한 법령을 통령하여 의장대를 감독하고 각 조의 직무를 총괄하는 일을 관장한다(『唐六典』卷24 諸衛府).닫기 제수되었고, 변국공(卞國公)에120120 변국공(卞國公)國公은 唐代 9等爵의 명칭 가운데 하나로 3등급에 해당한다(『新唐書』卷46 百官1 尙書省 吏部). 이때 卞國은 한반도 三韓의 하나인 卞(弁)韓을 지칭한다고 생각된다.닫기 식읍 3천호로 올려 봉해졌으며, 특진과 훈관(勲官)은 예전과 같이 하였다. 검교우우림군(檢校右羽林軍)을121121 검교우우림군(檢校右羽林軍)檢校는 대리한다는 의미로 정식 관직이 아닌, 임시로 맡는 대리 관직에 붙인 용어이다. 右羽林衛는 황제에 속한 관부인 18위(衛) 가운데 하나로 玄武門에 주둔하며 황제를 시위하고 궁궐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通典』 卷28, 職官10, 左右羽林軍 ; 『唐六典』 卷25 「諸衛府」).닫기 겸하였고, 이어 장내공봉(仗內供奉)을122122 장내공봉(仗內供奉)仗內는 殿中과 뜻이 같다. 궁은 仗衛로 호위로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쓴 것으로 보인다. 供奉官은 황제의 좌우에서 侍奉하는 近臣을 가리킨다. 당대에는 中書·門下 兩省 및 御史臺의 관을 供奉官이라 칭하였으며, 조회 시에 별도로 하나의 班을 구성하며 황제에게서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하였다(『唐六典』 卷2 尙書吏部).닫기 맡게 되었다. [황제가] 자신에 대한 예절을 낮추고123123 강례(降禮)예절을 평상의 规定 보다 낮춘다(『左传』 哀公27年). 즉 제왕이 자신에 대한 예우절차를 간략하게 하여 禮遇한다는 의미.닫기 (공을) 받들어 우대하였고, 단상에 올려124124 등단(登壇)壇場에 오르다. 즉 고대의 會盟‧祭祀‧帝王의 즉위‧장수 임명 등에 壇場을 설치하여ㅑ 성대한 의식을 집전하는 것을 말한다(『三國志』 魏志 臧洪傳).닫기 관직을 배수하니, 환규(桓珪)는125125 환규(桓珪)6가지 瑞節 가운데 하나로, 朝聘의 예를 행할 때, 公爵의 작위를 가진 자가 소지하였던 符節이다(『周禮』 春官 大宗伯).닫기 황제의126126 중황(中黃)황제를 의미(『文選』 張協 七命).닫기 상서로움에 합치하였고, 우림(羽林)은127127 우림(羽林)본래는 危星과 虛星의 남쪽에 있는 별이름인데(『史記』 天官書), 본문에서는 천남생이 역임한 檢校右羽林軍과 관련된 표현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53쪽).닫기 태미성(太微星)과 자미성(紫微星)에서128128 태미성(太微星)과 자미성(紫微星)太紫는 곧 太微星과 紫微星을 말한다. 天子의 宮殿을 상징하는 별자리이다(권덕영, 2021b, 253쪽).닫기 빛났다. 황제를 받듦에129129 연로(輦輅)황제의 수레, 곧 황제를 지칭한다(南朝 宋 顏延之 「赭白馬賦」 ; 『舊唐書』 肅宗紀贊).닫기 빈번하게130130 편번(便繁)便蕃이라고도 한다. 거듭, 혹은 빈번함을 의미한다(『左傳』 襄公11年).닫기 좌우에 있는 듯이 하였으니, 은혜와 총애의 융성함이 비할 바가 없었으며, 진심으로131131 진심성의를 의미한다(『書』 盤庚下).닫기 의지함은 필적할 자가 없었다. 의봉(儀鳳) 2년(677)에 조칙을 받들어서 요동을 위무하고, 주현(州縣)을 고쳐서 두었다. 병자를 구제하고 가엾은 자들을 진휼하니, 포대기로 싸서 업고132132 강부(襁負)아이를 포대기로 싸서 업다(晋 左思 「魏都赋」).닫기 집으로 돌아왔으며, 들판을 구획하고 경계를 나누니,133133 전천(奠川)『書經』 禹公篇의 ‘奠高山大川’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제사의 대상인 山川의 자리를 정하여 세운다는 의미이다(권닥영, 2021b, 254쪽).닫기 바르게 다스려졌다. 의봉 4년(679) 정월 29일, 병이 들어 안동부(安東府)의134134 안동부(安東府)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軍政機關인 安東都護府를 가리킨다. 휘하에 9도독부 42주 100현을 두어 고구려 고지를 관장케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 등의 반발로 676년 2월에는 치소를 遼東城(현 遼陽)으로 옮겼고, 그 이듬해에 다시 新城(현 撫順)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 移置를 거듭하였다. 천남새이 사망한 677년에는 新城에 소재하였을 것이다. 이후 安史의 난의 영향으로 761년 최종 폐지되었다(津田左右吉, 1964, 『津田左右吉全集』 제12권, 岩波書店).닫기 관사에서 죽었으니 나이가 46세였다. 황제는 비고(鼙鼓) 소리에 안타까워하였고, 재상과 재신들은135135 태형(台衡)재상과 대신들(唐 楊炯 「爲劉少傅等謝敕書慰勞表」).닫기 피리소리를 원망하였으며, 사군(四郡)은136136 사군(四郡)기원전 108∼기원전 107년에 前漢 武帝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에 설치한 4개의 郡名이다. 樂浪郡·臨屯郡·眞番郡‧玄菟郡을 가리킨다.닫기 이로 말미암아 시장을 닫았고, 구종(九種)은137137 구종(九種)九夷라고도 한다. 『後漢書』 列傳 東夷傳에 따르면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 9개의 東夷 집단을 九夷라고 지칭하였으며, 「豆善富墓誌銘」 등에서 九種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본문에서는 고구려 지역 혹은 그 주민을 가리킬 것이다.닫기 이 때문에 밭 갈기를 멈추었다.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큰 공로로138138 무공(懋功)큰 공을 의미함(『宋書』 武帝紀中).닫기 상을 넘치게 받았으니, 은혜로운 임명은139139 총명(寵命)은혜를 더하여 특별히 내린 任命(晋 李密 「陈情事表」).닫기 생전에 흡족했으며, 후한 예우로 죽은 뒤에 추증을 하니, 사망한 뒤에 받은 영예가140140 애영(哀榮)죽은 후에 영광스러운 총애를 받는 것(『論語』 子張).닫기 컸다. 충성과 절의를 드러내고 밝히는데 어찌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있겠는가. 특진 행우위대장군 상주국 변국공 천남생은 오부의 우두머리였고, 삼한의 영걸이었다. 기틀은 총명했고,141141 영오(穎悟)총명함. 이해력이 뛰어남(『晉書』 王戎傳).닫기 지식은 깊고 원대했으며, 군사 관련 모의에서 은밀히 마음속의 계략을142142 비산(秘算)몰래 가슴 속에 품은 謀略(晉 葛洪 『抱樸子』 漢過).닫기 내었고, 무예에서 큰 재능을 펼쳤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143143 황복(荒服)京師에서 2천~2천 5백리 떨어진 변방의 먼 지역. 즉 天子의 감화가 미치지 않는 먼 나라(『書』 禹貢).닫기 궁벽하게 거하면서도 진심과 정성을 다했다. 위태로운 곳을 떠나, 편안한 곳으로 나아갔으니 진실로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도리에 맞았고, 순종함으로 반역함을 다스렸으니, 능히 요수(遼水)와 패수(浿水)의 물가를 깨끗하게 하였다. 아름다운 공적은 멀리서 드러냈고, 높은 관직은 거듭 맡겨졌으니, 안으로는 북군(北軍)을 관장하여 황제가 거하는 궁전을 받들어 평안히 하였고, 밖으로는 동쪽의 물가에 임하여 청구를 밝게 안정시켰다. 절풍(折風)의 땅에서144144 절풍(折風)『三國志』 東夷傳 高句麗條에 “小加는 折風을 쓰는데, 그 모양이 弁과 같다.”라고 하였다. 고구려를 가리키는 표현이다.닫기 머물며 교화하였다가, 갑자기 이슬보다 먼저 갔으니, 죽음을145145 영서(永逝)영원히 사라지다. 죽음을 의미함(『史記』 司馬相如列傳).닫기 고함에146146 흥언(興言)告諭하다. 알려주다(晉 左思 「魏都賦」).닫기 (사람들의) 놀람과 슬퍼함이 진실로 깊었다. 마땅히 연솔(連率)의147147 연솔(連率)周代 十國 제후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의미로 連帥라고도 한다. 이후 지방의 고위 장관을 두루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漢書』 王莽傳 ; 『後漢書』 馬援傳).닫기 반차를 올려주고, 추숭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하여, 가히 사지절대도독(使持節大都督)148148 사지절대도독(使持節大都督)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大都督은 大都督府를 통괄하는 관직명으로 大都督府의 장관인 都督의 관품은 종2품이며 정원은 1인이었다. 「泉獻誠墓誌」에는 천남생이 使持節遼東大都督을 추증받은 것으로 되어있다.닫기 병(幷)·분(汾)·기(箕)·풍(嵐) 4주(州)제군사, 병주자사(幷州刺史)를149149 병주자사(幷州刺史)幷州는 지금의 山西省 太原市 일대를 가리킨다. 刺史는 州의 장관으로 정원 1인이며, 上州의 자사는 종3품, 中州는 정4품상, 下州는 정4품하에 해당했다.닫기 추증하고, 나머지는 예전과 같이 한다.”라고 하였다. 담당관청이 예를 갖춰서 책봉을 이행하였으며, 견포(絹布) 7백단과 속미(米粟) 7백석을 내려주었다. 장례와 매장에 소요되는 것을 아울러 마땅히 관에서 지급하였고, 우대함을 두터이 한 예를 구하고 좇아서 동원(東園)의 비기(秘器)를150150 동원(東園)의 비기(秘器)東園은 官署의 이름이다. 秦漢代에 두었으며, 陵墓의 器物과 장례 물품을 제조하거나 공급하는 곳이었다. 少府에 속했다. 『漢書』 卷93 董賢傳과 『漢書』 卷81 孔光傳에서도 장례시에 ‘東園祕器’를 지급한 사례들이 보인다.닫기 사여했다. 경사(京師)의 4품 관리 1인을 보내어 홍려소경(鴻臚少卿)의151151 홍려소경(鴻臚少卿)唐代에 빈객과 凶禮·喪葬의 일을 주로 관장하는 鴻臚寺의 통판관으로, 정원은 2인, 관품은 종4품상에 해당했다.닫기 일을 대신하여 감호하게 했으며, 의장(儀仗)과152152 의장(儀仗)儀衛 혹은 집회 등에 쓰일 武器·깃발·양산·부채 등의 기물을 의미한다(『晉書』 五行志上).닫기 악대를 무덤까지 보내어서 다녀오도록 했다. 5품의 관리 1인이 부절(符節)을 지니고 조서를 주면서 애도하고 제사를 올렸다. 3일 동안 정사를 보지 않았으며, 시신을 넣은 관이 도착한 날에는 5품 이상의 관리들로 하여금 집에 조문하도록 했다. 총애하여 내려준 것의 후함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화를 더하였고, 애도하며 보낸 것의 성대함은 고금에 비할 바가 없었다. 공적과 쌓은 행적을 생각하여 시호를 양공(襄公)이라 하였고, 노원(露元) 원년(679) 12월 26일 임신일에 낙양(洛陽) 망산(邙山)의 들판에서 하관하였으니 예에 맞는 것이었다. 상주(喪主)인153153 애자(哀子)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들을 哀子라 한다(『儀禮』 士喪禮).닫기 위위사경(衛尉寺卿)154154 위위사경(衛尉寺卿)禁中 경비와 천자의 의장 등을 맡은 관청인 衛尉寺의 장관이다. 卿은 정원 1인으로 관품은 從3品이다.닫기 헌성(獻誠)은 일찍이 집안의 가르침을 받들어 어린 나이에 조정의 관복에 인끈을 드리웠다. 전후로 배수받은 관직은 주유(周瑜)와 노숙(魯肅)이155155 주유(周瑜)와 노숙(魯肅)周魯는 곧 三國 東吳의 名臣인 周瑜와 魯肅을 가리킨다. 周瑜는 廬江郡 사람으로 字는 公瑾이다. 孫堅때부터 그를 모셨으며, 손견의 아들 孫策과 동갑으로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섬겨 장강 하류 지방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00년 손책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 孫權을 보필하여 赤壁大戰에서 火攻으로 魏軍을 대파하였다. 한편 魯肅은 徐州 臨淮郡 東城縣 사람으로 字는 子敬이다. 노숙은 동오 진영 내에서 劉備와 동맹을 맺어 함께 曹操에 맞설 것을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이후 贊軍校尉로서 주유를 보좌하여 조조의 군대를 赤壁에서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양자 모두 東吳 정권 하에서 큰 총애를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닫기 총애 받은 것만큼 융숭하였으며, 죽은 이를 알고 살아있는 이를 아는 자들이 조문하고 증여한 은혜가 더욱 많았다. 남풍과 같은 부모의 은혜를 생각함에 씀바귀를 씹는 듯 고통스러워하였고,156156 부모의 ~ 고통스러워하였고茹荼는 씀바귀를 먹는다. 즉 쓴 풀을 씹는 듯이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였다는 의미이다(唐 駱賓王 「疇昔篇」). 吹棘는 『詩經』에 나오는 “吹彼棘薪”에서 인용된 표현으로, 남풍이 대추나무를 성장시키듯이 어머니가 훌륭하게 아들 형제들을 길러주셨음을 비유한 것이다(『詩經』 國風 第3 邶風 凱風). 즉 茹荼吹棘은 돌아가신 부모의 키워준 은혜를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닫기 이슬이 풀잎을 적시는 사랑을 떠올림에 맨발로 서리를 밟듯 시리고 아파했다.157157 천상유로(踐霜濡露)踐霜은 맨발로 서리를 밟듯 시리고 아픈 것이며, 濡露은 劉禹錫의 「送僧元暠東游」에 의하면 ‘풀잎을 적신 이슬’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권덕영, 2021b, 301~302쪽).닫기 해와 달이 번갈아 이지러지고 작아지듯이158158 해와 달이 ~ 애통해하고迭微는 해와 달이 번갈아 이지러지고 작아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詩經』 國風 邶風의 “日居月諸 胡迭而微 心之憂矣 如匪澣衣 靜言思之 不能奮飛.”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이다. 이 글에서 迭微之顯傾은 문맥상 해와 달이 번갈아 이지러지고 작아지는 하늘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 천남생의 무덤이 무너지거나 변형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으로 생각된다.닫기 드러나고 기울어질 것을 애통해하고, 장사가 배를 지고 달아나듯이 감춰지고 옮겨질 것을159159 장사가 ~ 옮겨질 것을『莊子』 內篇 大宗師에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것으로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그물을 못에 감추고서 그것으로 단단히 감추었다고 여기고, 한밤중에 장사가 그것을 메고 도망가도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닫기 슬퍼하였다. (세월이) 위나라 봉분의 오랜 옻칠을 훼손하고 한나라 능묘의 흰색 바탕위의 그림을160160 후소(後素)『論語』 八佾의 ‘繪事後素’라는 표현에서 인용된 것으로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흰색 바탕위에 그린 그림의 의미로 볼 수 있다.닫기 떨어뜨린다. 푸른 옥돌에 새겨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니161161 전방(傳芳)美名을 전하다(『晉書』 元帝紀論).닫기 황천에162162 황로(黃壚)黃泉을 의미함(『淮南子』 覽冥訓).닫기 이르러서도 영원하고 굳건할 것이다. 그 사(詞)에 이르기를.
삼악(三岳)에서163163 삼악(三岳)동쪽 바다에서 신선이 산다는 3군데의 산으로 蓬萊山·方丈山·瀛洲山을 가리킨다(권덕영, 2021b, 263쪽).닫기 신선이 사는 곳과164164 신부(神府)仙府. 즉 신선이 사는 곳(唐 駱賓王 「遊靈公觀」詩).닫기 십주(十洲)에서165165 십주(十洲)道教에서 말하는 大海中에 神仙이 산다는 10군데의 섬. 혹은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地境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唐, 盧照鄰 『贈李榮道士』詩).닫기 선인이 사는 뜰에서166166 선정(仙庭)仙人이 사는 곳. 仙境을 의미함(漢 劉向 「列仙傳」 邛疏).닫기 곡왕(谷王)이167167 곡왕(谷王)강과 바다의 별칭. 百穀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唐 杜審言 「春日江津遊望」詩).닫기 호걸을 낳았고, 산신(山神)이168168 산기(山祇)山神을 의미한다(南朝 宋 顏延之 「車駕幸京口侍遊曲阿後湖作」詩).닫기 신령스러운 것을 잉태하였구나. 나라의 씨줄을 크게 꾀하고, 사람의 도리를 크게 이었으며,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죄를 의논하고 형벌을 공정히 하였도다. 그 첫 번째. 이러한 사람이169169 이인(伊人)이사람. 그 사람을 의미하는 지시어(『詩』 秦風 蒹葭).닫기 때때로 나와서 가문을 잇고, 복을 쌓았으니, 봉황의 새끼처럼 날쌔고 뛰어났으며, 천리마의 새끼처럼 기개가 범상치 않았구나. 냇물이 모이는 곳에서 지혜를 감추고, 산이 우뚝 솟은 곳에서 어짊을 품고 있었으니, 주목(州牧)에게는 칼을 바쳐 올렸고, 교옹(橋翁)에게는 신을 주워주었도다.170170 교옹수리(橋翁授履)『史記』에 나오는 張良과 관련된 고사이다. 秦代에 張良이 초나라 땅 下邳로 들어가서 이름을 바꾸고 은둔하고 있었다. 그가 다리를 건너려는데 웬 노인이 신발을 벗어서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장량에게 신발을 주어오라고 부탁하였다. 장량이 신발을 주어서 신겨주자, 노인이 『太公兵法』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고 한다(『史記』 卷55 留侯世家 第25).닫기 그 두 번째. 소관(消灌)에서171171 소관(消灌)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닫기 힘쓰고 위무하였으며, 추로(鄒盧)에서 의지함을 깊이하여, 문장으로 권력을 잡았고172172 집병(執柄)권력을 잡다(『韓非子』 外儲說右上).닫기 무력으로 지위를 잡았구나. 자형수(紫荊樹)의173173 형수(荊樹)紫荊樹를 가리킨다. 옛날 田眞과 동생 두 사람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堂前의 紫荊樹 한그루가 남았으므로, 세 사람이 이를 세 조각으로 나눠 갖기로 하고 다음날 나무를 자르려고 가보니, 나무가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말라있었다. 이에 전진이 크게 놀라서 동생들과 나무를 자르지 않기로 하니, 나무가 곧 잎이 무성해졌다. 이에 형제들이 감동하여 자시 재산을 합쳐서 살았다는 고사가 있다(吳均, 『績齊諧記』 紫荊樹). 천남생과 여러 형제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닫기 주변에서 물수리 같은 자가 일어나고, 갈대가 있는 냇가에 기러기가 잠겨있으니, 슬픔을 당하여 눈물을 닦았고,174174 반몌(反袂)옷소매를 이용해 눈물을 닦다. 울음을 형용한 것(『公羊傳』 哀公14年).닫기 또 한스러워하며 거처를 옮겼도다. 그 세 번째. 인주(麟洲)에175175 인주(麟洲)十洲 중에서 西海의 중앙에 있는 것을 鳳麟洲 혹은 麟洲라고 한다(『藝文類聚』 卷78에 인용된 南朝 梁 陶弘景의 「水仙賦」).닫기 그늘을 드리우자, 황궁에176176 봉궐(鳳闕)皇宮 혹은 朝廷을 의미(唐 楊炯 「從軍行」).닫기 정성을 바쳤고, 조정의 명으로 영예를 빛내고, 천자의 위엄으로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토벌했구나. 도적을 멸함에 천문을 관측하고, 군사를 움직임에 달을 헤아리니, 오랑캐가 춤추면서 귀순하여 정성을 다했고,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와 (황제를) 알현하였도다. 그 네 번째. 활을 당기자 마주대하여 울었고,177177 만호대읍(彎弧對泣)춘추시대 楚王이 활의 명인인 養由基에게 원숭이를 쏘게 하니, 활을 쏘기도 전에 원숭이가 기둥을 안고 울부짖어 이를 養由號猨이라 하였다(『淮南子』 說山訓). 淵男建이 사로잡혀서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할 것이다(권덕영, 2021b, 218쪽).닫기 조정에 호소하며178178 규혼(叫閽)吏民이 朝廷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함을 이르는 표현(唐 杜甫 「奉留赠集贤院崔于二学士」).닫기 황제에게 비니, 갑자기 가을의 씀바귀를 옮겨서 다시 봄의 산앵두나무를 꽃피웠도다. 옥소리를 내며 높은 지위에 올랐고, 구슬을 품고서 (황제의) 근처에서 호위했으며, 보검에는 연꽃무늬를 펼쳤고, 향목(香木)으로 만든 수레에는179179 향거(香車)香木으로 만든 수레. 화려한 수레를 의미함(唐 盧照鄰 「行路難」詩).닫기 아름다운 계수나무가 그려졌도다. 그 다섯 번째. 가벼운 수레를 타고 나가 위무하였고, 곱게 짠 비단옷을 입고180180 중금(重錦)곱게 짠 견직물을 가리킨다(『左傳』 閔公2年).닫기 일찍이 출유(出遊)했으니, 수혈(穟穴)에서 부침이 있었으나,181181 수혈(穟穴)고구려의 國東大穴 즉 隧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饗帝列東盟之祠 延神宗穟穴之醮”(『翰苑』 蕃夷部 高麗條). 본문에서는 고구려, 혹은 고구려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高質墓誌」와 「李他仁墓誌」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닫기 단주(亶洲)를182182 단주(亶洲)동쪽 바다에 있다는 설화상의 섬으로 신선이 산다고 전한다(『史記』 秦始皇本紀). 본문에서는 고구려땅을 의미한다.닫기 황제의 땅으로 만들었구나.183183 제봉(提封)提封이라고도 쓴다. 疆域, 즉 중국의 영토‧판도를 의미한다(隋 薛道衡 「老氏碑」).닫기 넉넉한 위엄과 우러를만한 은혜로서 숭상하며 복종하였는데, 처음에 휘장을 두르고 왔던 굴대가 갑자기 황망하게 가는 끌채가 되었도다. 그 여섯 번째. 검을 들고 갑옷을 입고서 황제를 지켰으나, [황제께서] 비고(鼙鼓)의 소리를 듣고 슬퍼하며 애도하셨구나. 구원(九原)은184184 구원(九原)墓地를 의미한다(唐 皎然 「短歌行」).닫기 의장이 갖춰졌고,185185 용위(容衛)古代의 儀仗. 侍衛를 의미한다(隋煬帝 「獻歲宴宮臣」詩).닫기 삼하(三河)에서 병사들이 지켰도다. 남쪽으로 소실(少室)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태사(太史)에 임하였으니, 바다는 황천으로 통하고 산은 무덤을 따라 일어나는구나. 그 일곱 번째. 서리와 이슬은 해마나 쌓이고, 세월은 나날이 흘러가는데, 무덤은 둥글고 달은 가득 찼으며, 들판은 텅 비었고 바람은 거칠도다. 어두운 저승에186186 유양(幽壤)地下. 九泉의 아래. 저승을 의미한다(『晉書』 禮志上).닫기 기리는 글을 새기고, 단단한 옥돌에 글을 써서 묻으니, 천년동안 환하게 빛날 것이라, 일대의 무덤이여. 그 여덟 번째.

註 001
무릇 옥을 ~ 아름답게 한다 : “돌이 玉을 감추고 있으면 山이 빛나며,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냇물이 아름답게 된다(石韞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이다(晉 陸機, 「文賦」).
註 002
자개(紫蓋) : 紫色의 수레 덮개. 帝王의 儀仗의 하나로서 帝王의 車駕를 가리키는 표현이다(南朝 梁 沉約, 「齊故安陸昭王碑文」).
註 003
등휘(騰輝) : 눈부시게 빛남(唐 寒山 「詩」의 203).
註 004
화헌(華軒) : 富貴한 자가 탄 華美한 수레(南朝 梁 江淹 『雜體詩』 效左思「詠史」).
註 005
오양(奧壤) : 비옥한 땅(『晉書』 孝武帝紀).
註 006
각저(角氐) : 角과 氐는 각각 東方 蒼龍七宿의 제1, 제3의 星宿 이름이다.
註 007
경수(景宿) : 수많은 별들(晉 左思 「吳都賦」).
註 008
지부(之罘) : 지금의 山東省 煙台市 북쪽의 之罘島에 있는 산 이름으로 동쪽 바다에 있는 名山으로 여겨졌다. 진시황이 이곳에 올라서 돌을 깎아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史記』 秦始皇本紀).
註 009
유순한 지경(地境) : 중국 상고시대 이래로 동쪽에 군자가 사는 나라가 있고, 그곳 사람들은 천성이 유순하고 인자하다고 여겼다(『後漢書』 東夷傳 序文). 이에 ‘柔順之境’은 東夷族이 사는 동방지역을 의미한다고 본다(권덕영, 2021b, 224쪽).
註 010
남상(濫觴) : 술잔에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을 의미하며, 큰 강도 결국 그 시초는 술잔이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荀子』 子道篇).
註 011
조두(俎豆) : 중국 고대 祭器의 이름이다. 『三國志』 東夷傳 夫餘條에 의하면 “음식을 먹고 마심에 모두 俎豆를 사용한다”고 하였고, 同書 동이전 序에서도 “비록 오랑캐의 나라이지만 俎豆를 쓰는 예절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동방 지역에 잔존한 중국 고대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註 012
금수(錦繡) :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사물을 의미한다(唐 劉禹錫 「酬樂天見貽賀金紫之什」詩).
註 013
낭묘(廊廟) : 廊肆. 宮殿의 외곽 건물과 太廟. 즉 朝廷을 가리킨다(『國語』 越語 下). 본문에서는 관직에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註 014
원융(元戎) : 큰 兵車(『詩』 小雅 6月). 혹은 大軍을 의미하기도 한다(『史記』 三王世家). 본문에서는 큰 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015
수주(隨珠) : 隨侯之珠라고도 한다. 옛날 춘추시대의 隨侯가 길가에 있던 큰 뱀을 구해주고 받았다는 신령한 구슬로 진귀한 물품을 의미한다(『淮南子』 覽冥訓).
註 016
초벽(楚璧) : 춘추시대 楚의 卞和가 얻은 和氏璧을 가리킨다(『韓非子』 和氏).
註 017
단혈(丹穴) :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단사(丹砂)를 내는 산의 동굴. 이러한 산을 丹山이라 하며 여기에 鳳凰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山海经』 南山经).
註 018
구포(九苞) : 鳳의 아홉 가지 특징으로, 이후 鳳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다(『初學記』 卷30 所引 「論摘衰聖」).
註 019
청전(靑田) : 『初學記』 卷30에 인용된 「永嘉郡記」에 의하면 靑田은 永嘉郡 洙沐溪에서 9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한 쌍의 白鶴이 해마다 새끼를 길러 내보낸다는 전설이 있다(권덕영, 2021b, 226쪽).
註 020
속이 빈 뽕나무에서 ~ 탄생시켰고 : 옛날에 有侁氏가 뽕을 따다가 속이 빈 뽕나무(空桑)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하여 임금에게 바쳤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은의 名臣인 伊尹이었다는 고사가 있다(『吕氏春秋』 本味).
註 021
건정(乾精) : 하늘의 精氣(『三國志』 魏志 明帝紀).
註 022
홍원(洪源) : 大業의 시발점(漢 蔡邕 「釋誨」)
註 023
금추(金樞) : 北鬥의 제1星인 天樞星을 가리킨다. 군주의 지위를 비유한 표현이다.
註 024
연무(延袤) : 길게 이어져있다. 뻗어있다(『史記』 蒙恬列傳).
註 025
양야양궁(良弓良冶) : 우수한 대장장이 아들은 반드시 가죽 옷 꿰매는 것을 익히고, 뛰어난 궁사의 아들은 반드시 箕 만드는 일을 익힌다(“良冶之子必學爲裘 良弓之子必學爲箕”)는 문구에서 인용한 표현. 先代의 전통 혹은 家業을 훌륭하게 계승하는 모습을 이른다(『禮記』 學記).
註 026
병검(兵鈐) : 兵權을 말한다(唐玄宗 「端午三殿宴群臣詩」序).
註 027
계루(桂婁) : 고구려의 초기 5部 가운데 하나인 桂婁部를 가리킨다.
註 028
봉산(蓬山) : 蓬山은 동방의 蓬萊山을 가리킨다(『山海經』 海內北經).
註 029
이윤(伊尹)과 ~ 굳건한 것이었다 : 伊霍은 伊尹과 霍光을 가리킨다. 伊尹은 殷代의 인물로 이름은 伊이고, 尹은 관직 이름이다. 일명 摯라고도 한다. 湯王의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으며, 夏를 멸하고 은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은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편 霍光은 前漢代의 河東 平陽 사람으로 字는 子孟이다. 霍去病의 이복동생으로 漢武帝 때 奉車徒尉가 되어 신임이 두터웠으며, 後元 2년(기원전 87)에 大司馬大將軍이 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20여 년 동안 한 치의 허물도 없었다고 하며, 선제가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모셔놓은 麒麟閣에서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다(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이회문화사). 한편 確乎는 굳세고 높은 모습을 의미한다(『易』 乾).
註 030
이궐(貽厥) : 『詩經』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有聲」에서 “公詒厥孫謀, 以燕翼子”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詒厥’ 즉 ‘貽厥’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책이나 도움을 뜻한다.
註 031
연익(宴翼) : 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책이나 도움(『詩經』 大雅 文王之什의 「文王有聲」).
註 032
패추(沛鄒) : 문맥상 『三國志』 동이전에 보이는 고구려의 관직인 沛者와 古鄒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구려에서의 관작과 봉작을 포함한 여러 벼슬을 의미할 것이다(권덕영, 2021b, 230쪽).
註 033
순영(荀令) : 荀令君, 즉 荀彧을 가리킨다. 颍川 颍阴 사람으로 자는 文若이다. 曹魏의 曹操가 북방을 통일할 때 큰 공을 세운 모략가이자 功臣으로서 ‘王佐之才’로도 불렸다. 주로 軍國事務를 처리하여 荀令君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註 034
위개(衛玠) : 西晉 河東 安邑 사람으로 자는 叔寶이다. 衛恒의 아들로 예쁘게 생겨서 보는 사람마다 玉人이라 칭송했다. 그의 장인이었던 驃騎將軍 王濟가 번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위개와 함께 여행하면 마치 밝은 구슬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사람을 환히 비추어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晉書』 卷36 衛玠傳).
註 035
옥수(玉粹) : 玉의 순수한 아름다움(晉 孫綽 「至人高士傳贊」).
註 036
도겸(陶謙)의 ~ 잇듯이 : ‘綴陶謙之帛’은 後漢末의 군웅인 陶謙이 나이 열넷에 이미 비단을 이어 깃발을 만들고 竹馬를 타고 놂에 邑內 아이들이 따랐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後漢書』 卷73 列傳 第63 陶謙 所引 ‘吳書’), 천남생이 어릴 적부터 군사적 재능과 지도력이 있었음을 표현한 문구이다.
註 037
표치(標置) : 高自標置. 즉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다, 자부하다는 의미이다(『晉書』 卷75 列傳 第45 劉惔傳).
註 038
제자(提蔗) : 曹魏의 曹丕의 『典論』 自敍에 曹丕가 奮威將軍 鄧展과 무예를 겨루기 위해 안주삼아 먹던 사탕수수막대기로 겨루어 그의 팔과 얼굴을 쳤다고 한다. 이에 의거해 提蔗는 곧 무예가 뛰어남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31쪽).
註 039
절포(截蒲) : 부들의 잎을 잘라서 글씨를 쓴다는 의미. 前漢代에 臨淮太守 등을 지낸 路溫舒는 밖에서 양을 치고 있는 동안에도 연못의 부들을 채취하여 잎을 잘라 엮어 글자판을 만들고 글씨연습을 했다고 전한다(『漢書』 卷51 路溫舒傳). 본문에서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권덕영, 2021b, 231쪽).
註 040
탄(誕) : 訛라고도 하며, 『神異經』 西南荒經에 나오는 전설상의 사악한 짐승 명칭이다(권덕영, 2021b, 231쪽).
註 041
우착(禹鑿) : 禹의 治水工程 가운데 黃河의 治水를 언급한 것이다. 그는 龍門山을 뚫고 물을 大夏로 통하게 하여 九河를 소통시켰고, 九曲에 둑을 쌓아 막혀있던 물길을 터서 바다로 흘러가게 했다고 전한다(『史記』 卷87 李斯列傳).
註 042
경파(驚波) : 아슬아슬한 높은 파도(漢 張衡 「西京賦」).
註 043
천경(天經) : 天의 常道. 혹은 孝, 禮 등을 가리킨다.
註 044
만경(萬頃) : 地面이나 水面이 아주 넓음을 일컫는 말이다.
註 045
구인(九仞) : 1仞은 8尺(약 2.4m)이며, 九仞은 매우 높은 것을 표현한 말이다.
註 046
선인(仙人) : 先人은 고구려 초기부터 멸망기까지 존재했던 관등의 하나이다. 7세기 고구려의 관제를 기록한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고구려의 최고위 관등은 大對盧, 최하위 관등은 선인이라고 하였다. 즉 고구려 말기에는 귀족 자제가 관직 경력을 처음 시작하면서 받는 최말단의 관등이라고 할 수 있다.
註 047
부임(父任) : 아버지의 음덕으로 관직에 임용되었음을 말한다(『漢書』 汲黯傳).
註 048
입진(入榛) : 荷戟入榛의 줄임말이다. 揚雄의 둘째아들인 揚信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는데, 양웅이 『周易』 大壯卦의 “숫양이 뿔로 들이받기를 좋아해서 울타리를 받다가 뿔이 걸려 꼼짝도 못한다”는 뜻의 ‘羝羊觸蕃’과 비슷한 말을 찾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서서 “어찌 창을 매고 덤불속으로 들어간다(荷戟入榛)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조언했다고 한다(『太平御覽』 卷388 「劉向別傳」). 천남생이 양신에 버금가는 영특함과 지혜로움이 있었음을 비유한 것이다(권덕영, 2021b, 233쪽).
註 049
천공기대(天工其代) : “天工人其代之”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으로,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대신하여 한다. 즉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書』 皐陶謨).
註 050
결애(結艾) : 관복에 매는 녹색의 인끈을 艾綬라고 하였다(『後漢書』 卷33 朱馮虞鄭周列傳 第23 馮魴).
註 051
중리소형(中裏小兄) : 中裏는 裏內 혹은 禁中의 의미를 지닌 고구려 특유의 관칭으로서, 국왕의 近侍 업무를 수행하는 국왕 직속의 官僚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武田幸男, 56~57쪽).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小兄은 일명 失支로서 고구려의 관등 가운데 10번째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의 正7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
註 052
중리대형(中裏大兄) : 大兄은 고구려 후기의 관등이다.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大兄은 일명 纈支로 여러 관등 가운데 7번째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의 正5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
註 053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 : 位頭大兄은 고구려 후기의 관등으로 皂衣頭大兄이라고도 한다. 『翰苑』 所引 高麗記에 의하면 고구려의 관등 가운데 5번째에 해당하며, 중국의 從3品에 비견된다고 하였다. 위두대형 이상의 관등소지자들은 고구려의 중앙에서 국가의 주요 국사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특권계층이었다고 생각된다(武田幸男, 365~367쪽).
註 054
막리지(莫離支) : 고구려의 제2관등인 太大兄으로서 각 귀족집단을 대표하는 유력 가문의 대표자가 보유한 관등이었다고 생각된다(임기환, 287~292쪽).
註 055
태막리지(太莫離支) : 大莫離支라고도 한다. 기존의 막리지에서 분화한 관명으로 연개소문 집권기에 처음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 관등은 太大兄을 넘지 않으나, 종전의 막리지보다 상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집권적 관직으로 생각된다(임기환, 307쪽).
註 056
원수(元首) : 국가의 최고 領導者. 국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陳毅 「開國小言」詩).
註 057
아충(阿衡) : 본래 商代의 官名으로 保衡이라고도 한다. 국가의 보필 임무를 맡는 재상을 이르는 말이다(『書』 太甲上 ; 『世說新語』 政事)
註 058
선주(先疇) : 조상이 물려준 農土. 즉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산을 의미한다(『文選』 班固 「西都賦」).
註 059
나도(蘿圖) : 지도와 호적을 나열하다.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淮南子』 覽冥訓).
註 060
호시(楛矢) : 楛木으로 만든 화살이라는 의미로, 중국 동북의 肅愼이 중국왕조에 공물로 바쳤던 물품이다(『國語』 魯語下). 본문에서는 東夷, 즉 고구려의 朝貢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061
건기(褰期) : 騫期. 즉 약속한 기한을 어김을 의미한다(晉 劉琨 「扶風歌」).
註 062
화악(花萼) : 꽃의 구성 부분인 꽃받침의 총칭이다. 꽃과 꽃받침은 모두 한줄기에서 나왔으므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 표현으로도 쓰였다(唐 李白 「贈從弟洌」詩).
註 063
도해(桃海) : 盤桃 혹은 蟠桃가 자라는 바다를 의미한다. 『論衡』 訂鬼에 인용된 『山海經』에 의하면, 蟠桃는 바다 위에 있는 도삭산(度朔山) 위의 큰 복숭아나무이다. 본문에서는 동방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생각된다.
註 064
팔조(八條) : 箕子의 8조 禁法이다. 『三國志』 東夷傳 濊條의 ‘八條之敎’라는 표현이나, 「李他仁墓誌銘」의 ‘八條之國’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중국에서 기원해 전래된 요동(고구려)지역의 法敎와 道理, 혹은 그 지역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
註 065
소장(蕭墻) : ‘季孫의 근심거리가 전유에 있지 않고 병풍 안에 있다’(季孫之憂 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는 문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蕭墻之內는 내부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다(『論語』 季氏).
註 066
내관(內款) : 귀순 혹은 항복을 의미함(『南齊書』 氐傳).
註 067
중집(中執) : 『書』 大禹謨에 나오는 執中과 같은 의미로 보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中庸의 道를 의미한다(권덕영, 2021b, 237쪽).
註 068
희중(羲仲)의 새로운 관직 : 中國 古代 傳說上의 왕인 堯가 羲仲에게 嵎夷로 가서 살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史記』 卷2 「夏本紀」 嵎夷旣略條 索隱), 이때의 嵎夷는 곧 동쪽 땅을 지칭한 것이다. 羲仲之新官은 곧 천남생이 고구려 지역을 관장할 수 있는 새로운 직위를 의미하는 것이다(권덕영, 2021b, 237쪽).
註 069
칭병(稱兵) : 군사를 일으키다. 武力을 사용하다(『禮記』 月令).
註 070
경예(鯨鯢) : 무고하게 살해된 사람을 의미한다(漢 李陵 「答蘇武書」).
註 071
장연(長筵) : 폭이 넓은 대나무 좌석. 길게 늘어선 연회석을 가리킨다(三國魏 曹植 「名都篇」).
註 072
고복(顧復) : 부모의 養育함을 의미한다(『詩』 小雅 蓼莪).
註 073
공기(共氣) : 同胞의 兄弟를 의미한다(『文選』 謝莊 宋孝武宣貴妃誄)
註 074
성분(星分) : 산산이 흩어지다(『魏書』 崔浩傳).
註 075
함담(銜膽) : 각고의 노력으로 분발하다. 臥薪嘗膽한다는 의미(『晉書』 姚興載記上).
註 076
오골(烏骨) : 고구려의 烏骨城을 가리킨다. 현재의 遼寧省 丹東市 鳳城縣 일대에 있는 鳳凰山城에 해당한다.
註 077
치심(馳心) : 마음으로 향해가는 것이 마치 車馬가 달리는 것과 같음을 의미(三國 魏 曹植 「上責躬應詔詩表」).
註 078
칙궁(飭躬) : 자신의 처신을 바르게 하도록 항상 경계하는 것을 의미함(『漢書』 宣帝紀).
註 079
광림(曠林) : 『左傳』 召公 元年條의 故事에서 인용한 것이다. 중국 전설상의 五帝중의 하나인 帝嚳(高辛氏)에게 閼伯과 實沈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살던 곳이 曠林이다.두 아들은 형제간에 서로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싸웠으며, 결국 요임금이 알백으로 하여금 商丘로 옮겨가 辰星을 모시게 했다고 한다. 고구려에서 남생의 형제들이 싸운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註 080
홍지(洪池)에서 ~ 탐냈던가? : 『左傳』 桓公 10年條의 故事를 인용한 것이다. 춘추시대 때 虞를 다스리던 虞公은 아우인 虞叔이 가진 名玉을 몹시 탐냈다. 우공은 名玉을 받고난 뒤에 또다시 우숙에게 그가 가진 寶劍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숙은 형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결국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켜서 우공을 쳤다. 이 일로 우공은 洪池로 도망쳤다. 천남생이 동생들에게 배반당해 변방을 떠도는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권덕영, 2021b, 240쪽).
註 081
청구(靑丘) : 靑邱라고도 한다. 중국왕조 입장에서 동방의 東夷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표현이다(『呂氏春秋』 卷22 求人).
註 082
단간(丹懇) :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唐 劉禹錫, 「代賀赦吳少誠複官爵表」).
註 083
환도산(丸都山)에 ~ 않았으나 : 正始 6년(245) 曹魏의 毋丘儉이 고구려를 공격하였을 때, 魏軍이 丸都之山에 새기고, 不耐之城에 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三國志』 卷28 毌丘儉傳). 丸山은 곧 丸都山이며, ‘丸山未銘’은 아직 관구검의 원정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註 084
득래(得來)는 ~ 드러냈고 : 魏 毌丘儉의 고구려 침입 때, 고구려의 沛者 得來가 동천왕에게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이에 탄식하여, “장차 이 땅에 쑥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하고 말하며 마침내 굶어죽었다. 관구검은 고구려 왕성에 이르러 그의 분묘를 파괴하거나 분묘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지 못하도록 명을 내리고 그의 처자를 풀어주었다고 한다(『三國志』 卷28 毌丘儉傳).
註 085
양수(梁水)에 ~ 없었을 때 : 梁水는 현재의 太子河로 비정된다. 遼寧省 동부에서 발원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本溪, 遼陽을 지나 遼河에 합류되는 강이다. 『新唐書』 卷220 列傳 第145 東夷 高麗에도 “少遼出遼山西 亦南流 有梁水出塞外 西行與之合”의 梁水와 동일한 강으로 보인다. ‘梁水無孼’에서 언급된 양수의 재앙은 3세기 전반에 요동에 있었던 公孫淵 세력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권덕영, 2021b, 241쪽).
註 086
중모(仲謀)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孫權을 가리킨다. 孫堅의 둘째 아들로 200년에 형 孫策이 죽자 그 뒤를 이어 周瑜 등의 보좌를 받아 나라를 지켜내고 江南 경영에 힘썼다.
註 087
특진(特進) : 당의 文散官으로 관품은 정2품에 해당한다.
註 088
태대형(太大兄) : 고구려 후기의 관등명이다. 제1위인 大對盧 다음으로 높은 관등으로서 異稱은 莫何何羅支이다.
註 089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摠管) : 平壤道 방면을 원정하는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임시관직이다. 摠管은 군진이나 행군의 군사를 통솔하는 무관이며, 大摠管은 이 여러 총관들을 거느리는 최고위 사령관이다. 당의 고구려 정벌과 관련하여 임시로 주어진 직위일 것이다.
註 090
사지절안무대사(使持節按撫大使) : 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大使는 節度使 휘하의 장군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특수임무를 띤 官人에게 붙인 명칭으로 볼 수 있다.
註 091
대총관(大摠管) : 大摠管은 이 여러 총관들을 거느리는 최고위 사령관이다.
註 092
계필하력(契苾何力) : 당나라 때의 무장으로, 본래 鐵勒部 사람이다. 당 태종 貞觀 6년(632)에 주민 천여 명을 이끌고 당나라에 귀순했다. 645년 당 태종의 요동 정벌 시에도 참전했으며, 乾封 원년(666)에 요동도행군대총관이 되어 천남생을 앞세워 遼水의 南蘇城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평양을 함락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舊唐書』 권109 契苾何力傳)
註 093
원문(轅門) : 田獵할 때나 戰陣을 베풀 때에 드나드는 곳에 수레를 뒤집어 놓아 수레의 끌채를 서로 향하게 하여 만들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 표현. 軍營 혹은 陣營의 門을 의미한다(『史記』 卷7 項羽本紀 第7).
註 094
사지절요동대도독(使持節遼東大都督) : 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遼東大都督은 遼東大都督府를 통괄하는 관직명으로 大都督府의 장관인 都督의 관품은 종2품이며 정원은 1인이었다.
註 095
상주국(上柱國) : 당의 최고위 勳官으로 관품은 정2품에 해당한다.
註 096
현도군개국공(玄兔郡開國公) : 唐代의 사료에 의하면 玄兔郡은 고구려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代稱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여기서도 어느 한정된 지역을 가리키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開國公은 唐代 9等爵의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新唐書』卷46 百官1 尙書省 吏部에는 9등작의 명칭이 王, 嗣王·郡王, 國公, 開國郡公, 開國縣公, 開國縣侯, 開國縣伯, 開國縣子, 開國縣男 순서로 되어 있다. 개국공은 4번째인 開國郡公에 해당하며 관품은 정2품이었다.
註 097
소맥(小貊) : 佟佳江으로 비정되는 小水 인근의 貊人 집단을 小水貊이라고 한다. 小貊은 바로 이 小水貊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의 小貊은 문맥상 고구려를 가리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용례는 「泉獻誠墓誌」에서도 나타난다(권덕영, 2021b, 245쪽).
註 098
소연지막(巢䴏之幕) : 『春秋左氏傳』 襄公 29년조의 ‘猶燕之巢於幕上’이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으로 장막 위에 지어진 제비둥지. 즉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당시 고구려가 처했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45쪽).
註 099
『三國志』 東夷傳 東沃沮條에서는 고구려가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唐 章懷太子 李賢의 注에서는 蓋馬가 玄菟郡의 縣名으로 그 山이 지금의 平壤城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문맥상 고구려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다.
註 100
사공(司空)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 : 李勣은 당나라의 장수로 본래 河北省 離狐 사람이다. 자는 懋功이며 본성은 徐氏이다. 수나라 말에 李密 휘하에 있다가 이후 당 고조에 투항하였다. 고조로부터 英國公에 봉해졌고 李姓을 하사받았다. 乾封元年(667)에 요동대총관에 임명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舊唐書』 卷67 열전17 李勣). 한편 司空은 太尉·司徒와 함께 三公이라 총칭되었던 관직으로 정원 1인, 정1품에 해당한다. 삼공은 천자를 보좌하여 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리고 나라를 평온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唐六典』 卷1 三師三公尙書都省).
註 101
도지(塗地) : 肝脑涂地를 줄인 말. 간과 뇌가 흙에 범벅이 된다는 것으로 전란 중 사람이 죽고 참혹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나타낸다(『史記』 劉敬叔孫通列傳).
註 102
조(趙)나라의 ~ 하였겠는가 : 韓信은 淮陰縣 사람으로, 秦末에 난세가 되자 처음에 項羽의 진영에 들어갔으나, 나중에 劉邦의 진영에 가담하였다. 한신은 해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유방의 군사를 지휘하여 魏, 趙, 齊 등의 군사들을 자주 격파하였다. 특히 趙나라와의 싸움에서 한신은 불과 2만의 군사로 배수진을 치고 그 10배인 조나라를 제압했는데, 이때 다른 부대가 조나라 군사들을 유인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기병들이 조나라 성으로 들어가 깃발을 뽑아버리고 한나라 깃발을 세움으로써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왔다고 한다(『史記』 卷92 淮陰侯列傳).
註 103
업성(鄴城)의 ~ 것이다 : 袁譚은 후한말의 群雄인 袁紹의 長子이다. 원소가 조조에게 패하여 陣中에서 죽자, 장자인 원담은 동생 원상과 후계다툼을 벌였고, 이때 원담이 패하여 平原郡으로 달아났다. 원담은 거듭된 원상의 공격을 피해 조조의 구원을 받았다. 이후 조조는 원담과 더불어 원상을 공격했으며, 특히 원상의 거점인 鄴縣으로 가서 성을 포위했는데, 당시 성을 지키던 심배의 조카 審營이 밤에 성문을 열어 조조의 군사를 불러들임으로써 함락되었다고 한다(『三國志』 魏書 董二袁劉傳 建安7년 10월조). 본문에서는 당이 평양성을 함락시키는데 고구려측의 내분을 이용했음을 가리킨다.
註 104
고장(高藏) : 고구려의 제28대 왕인 寶藏王을 가리킨다.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당으로 왔으며, 677년에 遼東都督 朝鮮郡王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靺鞨과 통모하여 반란을 획책하였다가 발각되었고, 681년 邛州로 유배된 후 이듬해에 사망했다(『舊唐書』 卷199上 列傳 第149上 東夷 高麗).
註 105
소산(巢山)과 잠해(潛海) :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오랑캐가 있는 멀고 궁벽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註 106
제봉(隄封) : 提封이라고도 쓴다. 疆域, 즉 중국의 영토‧판도를 의미한다(隋 薛道衡 「老氏碑」).
註 107
오부(五部)와 삼한(三韓) : 모두 고구려, 혹은 고구려인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註 108
신첩(臣妾) : 통치 혹은 관할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는 영토로 편입된 곳을 의미한다(『商君書』 錯法).
註 109
단의(斷恩) : 私的인 은혜를 끊다(『禮記) 喪服四制).
註 110
정백(鄭伯)의 ~ 같았고 : 鄭伯은 춘추시대 鄭의 莊公을 가리킨다. 鄭의 제후인 武公과 부인인 武姜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이 莊公이며, 동생이 共叔段이었다. 어머니인 武姜은 장공을 미워하여 동생인 共叔段을 왕위에 앉히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무강과 공숙단은 京 지역에서 세력을 키우며 鄭의 장공을 치려고 했으나, 결국 鄢 지역에서 장공의 토벌을 당하여 멀리 달아났다(『春秋左氏傳』 隱公 元年). 得儁은 적을 사로잡은 勇士. 혹은 승리를 의미한다(『左傳』 莊公11年). 본문에서는 천남생이 동생들인 남건‧남산과 벌인 전쟁에서 이겼음을 의미한다(권덕영, 2021b, 250쪽).
註 111
기자(箕子)가 ~ 보답한 것 : 箕子는 姓은 子, 이름은 胥余이며, 箕 지역에 封해져서 箕子라고 한다. 紂王의 폭정에 대해 간언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 척을 하여 幽閉되었다. 훗날 주나라 무왕에 의해 殷이 멸망한 뒤 석방되었는데, 이때 무왕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洪範九疇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후 기자는 遺民을 이끌고 周를 벗어나 북방으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疇庸은 공로에 보답하다는 뜻이다(『文選』 任昉 爲範尚書讓吏部封侯第一表).
註 112
음지(飲至) : 凱旋의 공을 축하하는 연회(唐 郭澹 「喜陸侍禦破石埭草寇東峰亭賦詩」).
註 113
헌첩(獻捷) : 전쟁 후 얻은 戰果를 바치는 것(『南朝梁』 任昉 奏弹曹景宗).
註 114
중혼(重閽) : 겹겹이 둘러싸인 宮門. 본문에서는 황제를 가리킨다(『梁書』 皇後傳 高祖丁貴嬪).
註 115
주공(周公)이 ~ 추방한 것 : 蔡叔은 周 武王의 동생으로, 춘추시대 蔡國의 시조이다. 기원전 1043년 무왕이 죽은 뒤 成王이 즉위하였는데 나이가 어려서 周公 姫旦이 섭정이 되었다. 이때 蔡叔은 불만을 품고 武庚 등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주공은 召公 姫奭 등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진압하였으며, 蔡叔은 멀리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史記』 卷4 周本紀第4).
註 116
공공(共工) : 전설 속의 인물. 堯임금의 신하로 驩兜‧三苗‧鯀과 함께 四凶으로 불렸다. 治水를 잘못하여 舜임금이 幽陵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史記』 卷1 五帝本紀 第1 帝堯).
註 117
가벼이 ~ 하였으니 : 실제로 남건이 유배된 곳은 黔州 지역이었다. 유배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註 118
우제(友悌) : 兄弟간의 우애를 가리킨다(唐 白居易 「和答詩」·和‘陽城驛’).
註 119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 좌·우위 대장군은 각각 정원 1인으로 관품은 정3품이다. 궁정의 경비와 호위에 관한 법령을 통령하여 의장대를 감독하고 각 조의 직무를 총괄하는 일을 관장한다(『唐六典』卷24 諸衛府).
註 120
변국공(卞國公) : 國公은 唐代 9等爵의 명칭 가운데 하나로 3등급에 해당한다(『新唐書』卷46 百官1 尙書省 吏部). 이때 卞國은 한반도 三韓의 하나인 卞(弁)韓을 지칭한다고 생각된다.
註 121
검교우우림군(檢校右羽林軍) : 檢校는 대리한다는 의미로 정식 관직이 아닌, 임시로 맡는 대리 관직에 붙인 용어이다. 右羽林衛는 황제에 속한 관부인 18위(衛) 가운데 하나로 玄武門에 주둔하며 황제를 시위하고 궁궐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通典』 卷28, 職官10, 左右羽林軍 ; 『唐六典』 卷25 「諸衛府」).
註 122
장내공봉(仗內供奉) : 仗內는 殿中과 뜻이 같다. 궁은 仗衛로 호위로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쓴 것으로 보인다. 供奉官은 황제의 좌우에서 侍奉하는 近臣을 가리킨다. 당대에는 中書·門下 兩省 및 御史臺의 관을 供奉官이라 칭하였으며, 조회 시에 별도로 하나의 班을 구성하며 황제에게서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하였다(『唐六典』 卷2 尙書吏部).
註 123
강례(降禮) : 예절을 평상의 规定 보다 낮춘다(『左传』 哀公27年). 즉 제왕이 자신에 대한 예우절차를 간략하게 하여 禮遇한다는 의미.
註 124
등단(登壇) : 壇場에 오르다. 즉 고대의 會盟‧祭祀‧帝王의 즉위‧장수 임명 등에 壇場을 설치하여ㅑ 성대한 의식을 집전하는 것을 말한다(『三國志』 魏志 臧洪傳).
註 125
환규(桓珪) : 6가지 瑞節 가운데 하나로, 朝聘의 예를 행할 때, 公爵의 작위를 가진 자가 소지하였던 符節이다(『周禮』 春官 大宗伯).
註 126
중황(中黃) : 황제를 의미(『文選』 張協 七命).
註 127
우림(羽林) : 본래는 危星과 虛星의 남쪽에 있는 별이름인데(『史記』 天官書), 본문에서는 천남생이 역임한 檢校右羽林軍과 관련된 표현으로 생각된다(권덕영, 2021b, 253쪽).
註 128
태미성(太微星)과 자미성(紫微星) : 太紫는 곧 太微星과 紫微星을 말한다. 天子의 宮殿을 상징하는 별자리이다(권덕영, 2021b, 253쪽).
註 129
연로(輦輅) : 황제의 수레, 곧 황제를 지칭한다(南朝 宋 顏延之 「赭白馬賦」 ; 『舊唐書』 肅宗紀贊).
註 130
편번(便繁) : 便蕃이라고도 한다. 거듭, 혹은 빈번함을 의미한다(『左傳』 襄公11年).
註 131
진심 : 성의를 의미한다(『書』 盤庚下).
註 132
강부(襁負) : 아이를 포대기로 싸서 업다(晋 左思 「魏都赋」).
註 133
전천(奠川) : 『書經』 禹公篇의 ‘奠高山大川’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제사의 대상인 山川의 자리를 정하여 세운다는 의미이다(권닥영, 2021b, 254쪽).
註 134
안동부(安東府) :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軍政機關인 安東都護府를 가리킨다. 휘하에 9도독부 42주 100현을 두어 고구려 고지를 관장케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 등의 반발로 676년 2월에는 치소를 遼東城(현 遼陽)으로 옮겼고, 그 이듬해에 다시 新城(현 撫順)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 移置를 거듭하였다. 천남새이 사망한 677년에는 新城에 소재하였을 것이다. 이후 安史의 난의 영향으로 761년 최종 폐지되었다(津田左右吉, 1964, 『津田左右吉全集』 제12권, 岩波書店).
註 135
태형(台衡) : 재상과 대신들(唐 楊炯 「爲劉少傅等謝敕書慰勞表」).
註 136
사군(四郡) : 기원전 108∼기원전 107년에 前漢 武帝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에 설치한 4개의 郡名이다. 樂浪郡·臨屯郡·眞番郡‧玄菟郡을 가리킨다.
註 137
구종(九種) : 九夷라고도 한다. 『後漢書』 列傳 東夷傳에 따르면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 9개의 東夷 집단을 九夷라고 지칭하였으며, 「豆善富墓誌銘」 등에서 九種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본문에서는 고구려 지역 혹은 그 주민을 가리킬 것이다.
註 138
무공(懋功) : 큰 공을 의미함(『宋書』 武帝紀中).
註 139
총명(寵命) : 은혜를 더하여 특별히 내린 任命(晋 李密 「陈情事表」).
註 140
애영(哀榮) : 죽은 후에 영광스러운 총애를 받는 것(『論語』 子張).
註 141
영오(穎悟) : 총명함. 이해력이 뛰어남(『晉書』 王戎傳).
註 142
비산(秘算) : 몰래 가슴 속에 품은 謀略(晉 葛洪 『抱樸子』 漢過).
註 143
황복(荒服) : 京師에서 2천~2천 5백리 떨어진 변방의 먼 지역. 즉 天子의 감화가 미치지 않는 먼 나라(『書』 禹貢).
註 144
절풍(折風) : 『三國志』 東夷傳 高句麗條에 “小加는 折風을 쓰는데, 그 모양이 弁과 같다.”라고 하였다. 고구려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註 145
영서(永逝) : 영원히 사라지다. 죽음을 의미함(『史記』 司馬相如列傳).
註 146
흥언(興言) : 告諭하다. 알려주다(晉 左思 「魏都賦」).
註 147
연솔(連率) : 周代 十國 제후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의미로 連帥라고도 한다. 이후 지방의 고위 장관을 두루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漢書』 王莽傳 ; 『後漢書』 馬援傳).
註 148
사지절대도독(使持節大都督) : 使持節은 군사권을 행사할 때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며 내린 최고위 符節로서 秩 2천석 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大都督은 大都督府를 통괄하는 관직명으로 大都督府의 장관인 都督의 관품은 종2품이며 정원은 1인이었다. 「泉獻誠墓誌」에는 천남생이 使持節遼東大都督을 추증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註 149
병주자사(幷州刺史) : 幷州는 지금의 山西省 太原市 일대를 가리킨다. 刺史는 州의 장관으로 정원 1인이며, 上州의 자사는 종3품, 中州는 정4품상, 下州는 정4품하에 해당했다.
註 150
동원(東園)의 비기(秘器) : 東園은 官署의 이름이다. 秦漢代에 두었으며, 陵墓의 器物과 장례 물품을 제조하거나 공급하는 곳이었다. 少府에 속했다. 『漢書』 卷93 董賢傳과 『漢書』 卷81 孔光傳에서도 장례시에 ‘東園祕器’를 지급한 사례들이 보인다.
註 151
홍려소경(鴻臚少卿) : 唐代에 빈객과 凶禮·喪葬의 일을 주로 관장하는 鴻臚寺의 통판관으로, 정원은 2인, 관품은 종4품상에 해당했다.
註 152
의장(儀仗) : 儀衛 혹은 집회 등에 쓰일 武器·깃발·양산·부채 등의 기물을 의미한다(『晉書』 五行志上).
註 153
애자(哀子) : 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들을 哀子라 한다(『儀禮』 士喪禮).
註 154
위위사경(衛尉寺卿) : 禁中 경비와 천자의 의장 등을 맡은 관청인 衛尉寺의 장관이다. 卿은 정원 1인으로 관품은 從3品이다.
註 155
주유(周瑜)와 노숙(魯肅) : 周魯는 곧 三國 東吳의 名臣인 周瑜와 魯肅을 가리킨다. 周瑜는 廬江郡 사람으로 字는 公瑾이다. 孫堅때부터 그를 모셨으며, 손견의 아들 孫策과 동갑으로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섬겨 장강 하류 지방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00년 손책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 孫權을 보필하여 赤壁大戰에서 火攻으로 魏軍을 대파하였다. 한편 魯肅은 徐州 臨淮郡 東城縣 사람으로 字는 子敬이다. 노숙은 동오 진영 내에서 劉備와 동맹을 맺어 함께 曹操에 맞설 것을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이후 贊軍校尉로서 주유를 보좌하여 조조의 군대를 赤壁에서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양자 모두 東吳 정권 하에서 큰 총애를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註 156
부모의 ~ 고통스러워하였고 : 茹荼는 씀바귀를 먹는다. 즉 쓴 풀을 씹는 듯이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였다는 의미이다(唐 駱賓王 「疇昔篇」). 吹棘는 『詩經』에 나오는 “吹彼棘薪”에서 인용된 표현으로, 남풍이 대추나무를 성장시키듯이 어머니가 훌륭하게 아들 형제들을 길러주셨음을 비유한 것이다(『詩經』 國風 第3 邶風 凱風). 즉 茹荼吹棘은 돌아가신 부모의 키워준 은혜를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註 157
천상유로(踐霜濡露) : 踐霜은 맨발로 서리를 밟듯 시리고 아픈 것이며, 濡露은 劉禹錫의 「送僧元暠東游」에 의하면 ‘풀잎을 적신 이슬’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권덕영, 2021b, 301~302쪽).
註 158
해와 달이 ~ 애통해하고 : 迭微는 해와 달이 번갈아 이지러지고 작아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詩經』 國風 邶風의 “日居月諸 胡迭而微 心之憂矣 如匪澣衣 靜言思之 不能奮飛.”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표현이다. 이 글에서 迭微之顯傾은 문맥상 해와 달이 번갈아 이지러지고 작아지는 하늘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 천남생의 무덤이 무너지거나 변형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으로 생각된다.
註 159
장사가 ~ 옮겨질 것을 : 『莊子』 內篇 大宗師에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라는 문구에서 인용된 것으로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그물을 못에 감추고서 그것으로 단단히 감추었다고 여기고, 한밤중에 장사가 그것을 메고 도망가도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註 160
후소(後素) : 『論語』 八佾의 ‘繪事後素’라는 표현에서 인용된 것으로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흰색 바탕위에 그린 그림의 의미로 볼 수 있다.
註 161
전방(傳芳) : 美名을 전하다(『晉書』 元帝紀論).
註 162
황로(黃壚) : 黃泉을 의미함(『淮南子』 覽冥訓).
註 163
삼악(三岳) : 동쪽 바다에서 신선이 산다는 3군데의 산으로 蓬萊山·方丈山·瀛洲山을 가리킨다(권덕영, 2021b, 263쪽).
註 164
신부(神府) : 仙府. 즉 신선이 사는 곳(唐 駱賓王 「遊靈公觀」詩).
註 165
십주(十洲) : 道教에서 말하는 大海中에 神仙이 산다는 10군데의 섬. 혹은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地境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唐, 盧照鄰 『贈李榮道士』詩).
註 166
선정(仙庭) : 仙人이 사는 곳. 仙境을 의미함(漢 劉向 「列仙傳」 邛疏).
註 167
곡왕(谷王) : 강과 바다의 별칭. 百穀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唐 杜審言 「春日江津遊望」詩).
註 168
산기(山祇) : 山神을 의미한다(南朝 宋 顏延之 「車駕幸京口侍遊曲阿後湖作」詩).
註 169
이인(伊人) : 이사람. 그 사람을 의미하는 지시어(『詩』 秦風 蒹葭).
註 170
교옹수리(橋翁授履) : 『史記』에 나오는 張良과 관련된 고사이다. 秦代에 張良이 초나라 땅 下邳로 들어가서 이름을 바꾸고 은둔하고 있었다. 그가 다리를 건너려는데 웬 노인이 신발을 벗어서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장량에게 신발을 주어오라고 부탁하였다. 장량이 신발을 주어서 신겨주자, 노인이 『太公兵法』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고 한다(『史記』 卷55 留侯世家 第25).
註 171
소관(消灌) :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註 172
집병(執柄) : 권력을 잡다(『韓非子』 外儲說右上).
註 173
형수(荊樹) : 紫荊樹를 가리킨다. 옛날 田眞과 동생 두 사람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堂前의 紫荊樹 한그루가 남았으므로, 세 사람이 이를 세 조각으로 나눠 갖기로 하고 다음날 나무를 자르려고 가보니, 나무가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말라있었다. 이에 전진이 크게 놀라서 동생들과 나무를 자르지 않기로 하니, 나무가 곧 잎이 무성해졌다. 이에 형제들이 감동하여 자시 재산을 합쳐서 살았다는 고사가 있다(吳均, 『績齊諧記』 紫荊樹). 천남생과 여러 형제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註 174
반몌(反袂) : 옷소매를 이용해 눈물을 닦다. 울음을 형용한 것(『公羊傳』 哀公14年).
註 175
인주(麟洲) : 十洲 중에서 西海의 중앙에 있는 것을 鳳麟洲 혹은 麟洲라고 한다(『藝文類聚』 卷78에 인용된 南朝 梁 陶弘景의 「水仙賦」).
註 176
봉궐(鳳闕) : 皇宮 혹은 朝廷을 의미(唐 楊炯 「從軍行」).
註 177
만호대읍(彎弧對泣) : 춘추시대 楚王이 활의 명인인 養由基에게 원숭이를 쏘게 하니, 활을 쏘기도 전에 원숭이가 기둥을 안고 울부짖어 이를 養由號猨이라 하였다(『淮南子』 說山訓). 淵男建이 사로잡혀서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할 것이다(권덕영, 2021b, 218쪽).
註 178
규혼(叫閽) : 吏民이 朝廷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함을 이르는 표현(唐 杜甫 「奉留赠集贤院崔于二学士」).
註 179
향거(香車) : 香木으로 만든 수레. 화려한 수레를 의미함(唐 盧照鄰 「行路難」詩).
註 180
중금(重錦) : 곱게 짠 견직물을 가리킨다(『左傳』 閔公2年).
註 181
수혈(穟穴) : 고구려의 國東大穴 즉 隧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饗帝列東盟之祠 延神宗穟穴之醮”(『翰苑』 蕃夷部 高麗條). 본문에서는 고구려, 혹은 고구려 지역을 막연히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高質墓誌」와 「李他仁墓誌」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註 182
단주(亶洲) : 동쪽 바다에 있다는 설화상의 섬으로 신선이 산다고 전한다(『史記』 秦始皇本紀). 본문에서는 고구려땅을 의미한다.
註 183
제봉(提封) : 提封이라고도 쓴다. 疆域, 즉 중국의 영토‧판도를 의미한다(隋 薛道衡 「老氏碑」).
註 184
구원(九原) : 墓地를 의미한다(唐 皎然 「短歌行」).
註 185
용위(容衛) : 古代의 儀仗. 侍衛를 의미한다(隋煬帝 「獻歲宴宮臣」詩).
註 186
유양(幽壤) : 地下. 九泉의 아래. 저승을 의미한다(『晉書』 禮志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