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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립학교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
(1) 선교학교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
선교학교의 설립목적은 선교와 개화에 있었기 때문에, 선교학교의 설립이념은 기독교 교육과 근대정신에 있었다. 즉 선교학교에서는 기독교 교육을 실시함과 동시에 남녀평등·신생활방식·민주주의정신을 교육시켰던 것이다.
선교학교는 교리시간이나 기타 종교행사를 통해서, 종교적 감화를 주고 미신자를 입교시키고 신자학생의 신앙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애국정신도 육성하고자 하였다. 1906년에 설립된 천주교 학교인 삼애학교(三愛學校)와 성제학교(聖濟學校)의 교육목적을 보면, 삼애학교는 첫째 천주를 사랑함이요, 둘째는 임금을 사랑함이요, 세째는 사람을 사랑함을 목표로 하였다.註 017 성제학교도 이와 마찬가지였는데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함을 교육목적으로 하여 종교교육과 동시 애국정신을 육성함을 설립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선교학교는 서양문물을 교육하여 민족사회의 개화와 근대화에 기여함을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개화, 즉 근대화는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선교학교는 근대적인 서양과학·외국어·세계지리·역사를 가르쳐 의식의 확대와 근대화를 기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선교학교는 새 시대의 인간을 양성함을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봉건적인 구습과 전통적인 관행을 탈피하여 새 시대에 적합한 새 정신 새 능력을 갖춘 인간을 육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것이다. 즉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회인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선교학교는 자주정신 육성을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자주정신과 자주능력을 육성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주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2) 민립학교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
민립의 사립학교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민립학교는 무엇보다도 민족사회의 개화와 근대화를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선진국가의 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하려는 개화사상가들의 교육론과 이에 동조하는 선각자들에 의해 민립학교가 설립된 만큼 근대지향적인 교육을 가장 중요한 설립이념과 교육방침으로 하였다. 또한 민족주의정신에 입각하여 민족보전과 구국을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그런데 근대지향정신과 민족주의정신은 동시에 교육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근대화는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것이며, 근대국가 건설은 외세침략으로부터의 국권수호·민족보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근대국가를 건설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화, 곧 근대화를 이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립학교는 이와 같은 근대 지향정신과 민족주의정신에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그런데 개화기 초기에는 보다 더 근대지향성이 강조되었으나, 점차 국가민족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민족주의정신이 강렬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1906년 이후는 교육구국을 설립이념으로 하였으니,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적 의지의 일단으로 민립학교가 설립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개화사상가와 민족주의자들이 표방했던 부국강병과 자강을 통한 외세의 극복과 봉건체제를 해체시키고, 근대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자강적 민족주의·개화 자주독립의 민족적 의지를 구체화 시키고 실천하기 위한 것을 민립학교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는 아와 같은 민족적 염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재양성이 시급하다고 여겨, 민족의식이 투철한 민족적 지도자와 인재를 양성함을 중요한 설립이념으로 하였던 것이다. 근대국가 건설과 외세극복을 위해서는 인재양성을 중요한 설립이념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산 안창호가 대성학교의 교육방침을 네 가지에 두었는데, 즉 첫째 건전한 인격의 함양, 둘째 애국정신에 강한 민족운동자 양성, 세째 국민으로서 실력을 구비한 인재의 육성, 네째 강장한 체력의 훈련 등이었다.註 018
즉 안창호는 민족운동을 추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대성학교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 사립학교의 설립이념이기도 하였다.

註 017
『경향신문』, 1907년 6월 14일자.바로가기
註 018
주요한, 앞 책, pp.80, 82.바로가기
※ 본서의 내용은 각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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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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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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