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가 七枝刀·七子鏡 및 여러 보물을 바침(百濟의 久氐와 함께 千熊長彦이 歸國)
52년 가을 9월 丁卯 초하루 丙子 久氐 등이 千熊長彦을 따라와서 七枝刀註 001 1자루와 七子鏡註 002 1개 및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 그리고 (백제왕의) 啓에 “우리나라 서쪽에 시내가 있는데 그 근원은 谷那鐵山
註 003으로부터 나옵니다. 7일 동안 가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멉니다. 이 물을 마시다가 문득 이 산의 철을 얻어서 성스러운 조정에 길이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손자 枕流王
註 004에게 ‘지금 내가 통교하는 바다 동쪽의 귀한 나라는 하늘이 열어준 나라이다. 그래서 天恩을 내려 바다 서쪽을 나누어 우리에게 주었으므로 나라의 기틀이 길이 굳건하게 되었다. 너도 마땅히 우호를 잘 다져 土物을 거두어 공물을 바치는 것을 끊이지 않는다면 죽더라도 무슨 한이 있겠느냐’라 일러두었습니다”라 하였다. 이 이후로 해마다 계속하여 조공하였다.
7개의 가지가 달린 칼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백제에서 바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백제의 近肖古王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일본 奈良縣 天理市 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는 이른바 七枝(支)刀가 바로 이것인데 이 刀面의 양쪽에 모두 69자의 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칼은 泰和 4년에 백제왕이 倭의 侯王에게 下賜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 백제와 倭國과의 친교관계를 짐작케 해주는 것이다. 이 泰和 4년을 일본 학계에서는 東晉의 太和 4년(369)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北魏 太和 4년(480)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銘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註) 001
7개의 가지가 달린 칼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백제에서 바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백제의 近肖古王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일본 奈良縣 天理市 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는 이른바 七枝(支)刀가 바로 이것인데 이 刀面의 양쪽에 모두 69자의 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칼은 泰和 4년에 백제왕이 倭의 侯王에게 下賜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 백제와 倭國과의 친교관계를 짐작케 해주는 것이다. 이 泰和 4년을 일본 학계에서는 東晉의 太和 4년(369)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北魏 太和 4년(480)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銘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註) 002
註) 003
국가명
- 백제(百濟)
주제분류
- 정치>외교>사신>조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