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北夷의 索離國036036 索離國 『論衡』에는 ‘橐離’,『魏略』에는 ‘槀(高, 豪)離’,『搜神記』에는 ‘槀離’,『梁書』에는 ‘橐離’,『法苑珠林』에는 ‘寧禀離’,『翰苑』夫餘條에는 ‘橐離’로『御覽』卷781 所引에는 ‘膏離’로 되어 있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인『論衡』의 ‘橐離’가 후대에 자형이 근사한 ‘槀離’로 오기되거나 음을 빌린 ‘索’으로 표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索’은 蒙古語의 境界를 뜻하는 ‘sacha’와 같은 말로 이해되고 있으며,(白鳥庫吉,「朝鮮古代地名考」p. 59) ‘索離’를 퉁구스어의 ‘黑國’의 의미로 보기도 한다.
≪參考文獻≫
『論衡』2「吉驗篇」
『三國志』卷30「東夷傳」所引『魏略』
『搜神記』14.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法苑珠林』21「歸信篇」述意部.
『翰苑』夫餘條 所引『後漢書』
『太平御覽』卷781 夫餘條.
白鳥庫吉,「朝鮮古代地名考」『白鳥庫吉全集』卷3, 1970, 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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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이 출타중에 그의 侍女가 後[宮]에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王이 돌아와서 그녀를 죽이려 하자 侍女가 말하기를,
“지난번 하늘에 크기가 달걀만한 氣가 있어 저에게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대로 임신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王이 그녀를 [옥에] 가두었는데, 그 뒤에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王이 그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리게 하였으나, 돼지가 입김을 불어주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굿간에 옮겼으나 말도 역시 그와 같이 해주었다. 王이 그 아이를 神異하게 생각하여 그 어머니가 거두어 기르도록 허락하고, 이름을 東明이라 하였다.
東明이 장성하여 활을 잘 쏘니 王이 그의 용맹함을 꺼리어 다시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東明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掩㴲水037037 掩㴲水 『論衡』에는 ‘掩㴲水’,『魏略』에는 ‘施掩水’,『梁書』에는 ‘淹滯水’,『隋書』에는 ‘淹水’로 되어 있는데, 朱蒙神話에 나오는 淹水(奄利大水)와 같이 ‘큰 물’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되며, 松花江 또는 그 지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參考文獻≫
「廣開土王陵碑文」
『三國史記』卷13「高句麗本紀」1 始祖 東明聖王條.
『三國遺事』卷 1「紀異」1 高句麗條.
『論衡』2「吉驗篇」
『三國志』卷30「東夷傳」所引『魏略』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隋書』卷81「東夷列傳」百濟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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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모두 모여 물 위에 떠올랐다. 東明은 그걸 밟고 물을 건너서 夫餘에 도착하여 王이 되었다.038038 東明神話 『後漢書』의 ‘初北夷索離國王出行 …… 因至夫餘而王之焉’의 東明神話는『三國志』와는 달리 本文에 기술되고 있는데,『三國志』所引『魏略』과는 다른 자료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조>
『三國志』夫餘傳 註 31)
東明神話
夫餘의 建國始祖를 말해주는 기록으로는 1C 末 後漢의 王充에 의해 찬술된 『論衡』을 비롯하여『三國志』所引『魏略』·『搜神記』·『梁書』·『隋書』·『北史』·『法苑珠林』등의 中國文獻에 散見되고 있다.
夫餘建國 始祖神話인 東明神話에 대한 종래의 견해는 이를 夫餘의 建國始祖神話로 인정하지 않고, ‘橐離’ 또는 ‘槀離’의 字形이나 音이 ‘高句麗’ 또는 ‘句驪’와 비슷하다는 점과,『三國史記』「高句麗本紀」의 ‘始祖東明聖王 姓高氏 諱朱蒙 一云鄒牟 一云衆解’ 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高句麗의 始祖인 朱蒙과 同一人物인 것처럼 이해하여 왔으나(那珂通世, 「朝鮮古史考」p.101; 李丙燾, 「夫餘考」p.217), 『隋書』·『北史』등의 文獻記錄이나 神話의 유형구조면에서 보더라도 高句麗의 朱蒙神話와는 구별되는 독립적인 神話로 생각된다.(李玉, 「朱蒙硏究」; 李福揆, 「夫餘建國始祖神話考」)즉, 夫餘 建國者인 東明의 誕生說話에는 日光에 의한 感精出誕이라고 하는 蒙古·滿洲에 널리 퍼져 있는 이른바 ‘感精型’神話의 요소만 있는데 비하여 朱蒙說話에는 北方系의 日光感精要素와 南方海洋諸族의 卵生要素가 복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東明神話와 朱蒙神話는 별개의 建國神話로 파악되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三國史記』나 『三國遺事』등 國內文獻에는 夫餘의 建國神話로서의 東明神話는 전해지지 않고, 東明神話를 본뜬 朱蒙神話가 高句麗의 建國神話로서 전해질 뿐이다. 夫餘의 建國神話로는 北扶餘의 解慕漱神話와 東扶餘의 金蛙神話만이 나오고 있어 中國文獻에서 전하는 東明神話와는 그 내용이 전혀 달라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東明神話가 맺고 있는 北方民族神話와의 관련성, 후대의 주몽신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이들 전체의 관계를 통해 제기되어지는 民族의 이동상황, 夫餘의 聯盟王國에 대한 性格의 재규명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3「高句麗本紀」1 始祖 東明聖王條.
『三國遺事』卷2「紀異」2 高句麗條.
『論衡』卷2「吉驗篇」
『搜神記』卷14.
『後漢書』卷85「東夷列傳」夫餘條.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所引『魏略』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 및 百濟條.
『北史』卷94 百濟條.
『法苑珠林』卷21「歸信篇」11 述意部.
朴斗抱, 「民族英雄 東明王說話考」『國文學硏究』1, 1968.
朴時仁, 「東明王 卵生移住說話의 연구」『서울大論文集』12, 1969.
李 玉, 「朱蒙 硏究」『韓國史硏究』7, 1972.
李丙燾, 「夫餘考」『韓國古代史硏究』1976.
李福揆, 「夫餘建國始祖神話考」『人文科學硏究』1, 1982.
李殷昌, 「高句麗神話의 考古學的 硏究-三國遺事의 朱蒙神話를 中心으로-」『韓國傳統文化硏究』창간호, 1985.
홍기문, 『조선 신화 연구-조선 사료 고증-』1964, 사회과학원 출판사.
那珂通世, 「朝鮮古史考」『史學雜誌』5編 9號, 1894.
池內宏, 「高句麗の建國傳說と史上の事實」『滿鮮史硏究』(上世篇), 1951.
白鳥庫吉, 「夫餘國の始祖東明王の傳說に就いて」『白鳥庫吉全集』卷5, 1970.
李成市, 「梁書高句麗傳と東明王傳說」『中國正史の基礎的硏究』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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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36
索離國 : 『論衡』에는 ‘橐離’,『魏略』에는 ‘槀(高, 豪)離’,『搜神記』에는 ‘槀離’,『梁書』에는 ‘橐離’,『法苑珠林』에는 ‘寧禀離’,『翰苑』夫餘條에는 ‘橐離’로『御覽』卷781 所引에는 ‘膏離’로 되어 있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인『論衡』의 ‘橐離’가 후대에 자형이 근사한 ‘槀離’로 오기되거나 음을 빌린 ‘索’으로 표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索’은 蒙古語의 境界를 뜻하는 ‘sacha’와 같은 말로 이해되고 있으며,(白鳥庫吉,「朝鮮古代地名考」p. 59) ‘索離’를 퉁구스어의 ‘黑國’의 의미로 보기도 한다.
≪參考文獻≫
『論衡』2「吉驗篇」
『三國志』卷30「東夷傳」所引『魏略』
『搜神記』14.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法苑珠林』21「歸信篇」述意部.
『翰苑』夫餘條 所引『後漢書』
『太平御覽』卷781 夫餘條.
白鳥庫吉,「朝鮮古代地名考」『白鳥庫吉全集』卷3, 1970, 岩波書店.
註 037
掩㴲水 : 『論衡』에는 ‘掩㴲水’,『魏略』에는 ‘施掩水’,『梁書』에는 ‘淹滯水’,『隋書』에는 ‘淹水’로 되어 있는데, 朱蒙神話에 나오는 淹水(奄利大水)와 같이 ‘큰 물’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되며, 松花江 또는 그 지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參考文獻≫
「廣開土王陵碑文」
『三國史記』卷13「高句麗本紀」1 始祖 東明聖王條.
『三國遺事』卷 1「紀異」1 高句麗條.
『論衡』2「吉驗篇」
『三國志』卷30「東夷傳」所引『魏略』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隋書』卷81「東夷列傳」百濟條.
註 038
東明神話 : 『後漢書』의 ‘初北夷索離國王出行 …… 因至夫餘而王之焉’의 東明神話는『三國志』와는 달리 本文에 기술되고 있는데,『三國志』所引『魏略』과는 다른 자료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조>
『三國志』夫餘傳 註 31)
東明神話
夫餘의 建國始祖를 말해주는 기록으로는 1C 末 後漢의 王充에 의해 찬술된 『論衡』을 비롯하여『三國志』所引『魏略』·『搜神記』·『梁書』·『隋書』·『北史』·『法苑珠林』등의 中國文獻에 散見되고 있다.
夫餘建國 始祖神話인 東明神話에 대한 종래의 견해는 이를 夫餘의 建國始祖神話로 인정하지 않고, ‘橐離’ 또는 ‘槀離’의 字形이나 音이 ‘高句麗’ 또는 ‘句驪’와 비슷하다는 점과,『三國史記』「高句麗本紀」의 ‘始祖東明聖王 姓高氏 諱朱蒙 一云鄒牟 一云衆解’ 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高句麗의 始祖인 朱蒙과 同一人物인 것처럼 이해하여 왔으나(那珂通世, 「朝鮮古史考」p.101; 李丙燾, 「夫餘考」p.217), 『隋書』·『北史』등의 文獻記錄이나 神話의 유형구조면에서 보더라도 高句麗의 朱蒙神話와는 구별되는 독립적인 神話로 생각된다.(李玉, 「朱蒙硏究」; 李福揆, 「夫餘建國始祖神話考」)즉, 夫餘 建國者인 東明의 誕生說話에는 日光에 의한 感精出誕이라고 하는 蒙古·滿洲에 널리 퍼져 있는 이른바 ‘感精型’神話의 요소만 있는데 비하여 朱蒙說話에는 北方系의 日光感精要素와 南方海洋諸族의 卵生要素가 복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東明神話와 朱蒙神話는 별개의 建國神話로 파악되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三國史記』나 『三國遺事』등 國內文獻에는 夫餘의 建國神話로서의 東明神話는 전해지지 않고, 東明神話를 본뜬 朱蒙神話가 高句麗의 建國神話로서 전해질 뿐이다. 夫餘의 建國神話로는 北扶餘의 解慕漱神話와 東扶餘의 金蛙神話만이 나오고 있어 中國文獻에서 전하는 東明神話와는 그 내용이 전혀 달라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東明神話가 맺고 있는 北方民族神話와의 관련성, 후대의 주몽신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이들 전체의 관계를 통해 제기되어지는 民族의 이동상황, 夫餘의 聯盟王國에 대한 性格의 재규명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3「高句麗本紀」1 始祖 東明聖王條.
『三國遺事』卷2「紀異」2 高句麗條.
『論衡』卷2「吉驗篇」
『搜神記』卷14.
『後漢書』卷85「東夷列傳」夫餘條.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所引『魏略』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 및 百濟條.
『北史』卷94 百濟條.
『法苑珠林』卷21「歸信篇」11 述意部.
朴斗抱, 「民族英雄 東明王說話考」『國文學硏究』1, 1968.
朴時仁, 「東明王 卵生移住說話의 연구」『서울大論文集』12, 1969.
李 玉, 「朱蒙 硏究」『韓國史硏究』7, 1972.
李丙燾, 「夫餘考」『韓國古代史硏究』1976.
李福揆, 「夫餘建國始祖神話考」『人文科學硏究』1, 1982.
李殷昌, 「高句麗神話의 考古學的 硏究-三國遺事의 朱蒙神話를 中心으로-」『韓國傳統文化硏究』창간호, 1985.
홍기문, 『조선 신화 연구-조선 사료 고증-』1964, 사회과학원 출판사.
那珂通世, 「朝鮮古史考」『史學雜誌』5編 9號, 1894.
池內宏, 「高句麗の建國傳說と史上の事實」『滿鮮史硏究』(上世篇), 1951.
白鳥庫吉, 「夫餘國の始祖東明王の傳說に就いて」『白鳥庫吉全集』卷5, 1970.
李成市, 「梁書高句麗傳と東明王傳說」『中國正史の基礎的硏究』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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