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 常用十月 節校勘 090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又祭虎以爲神.註 145 其邑落相侵犯, 輒相罰責生口牛馬, 名之爲責禍. 殺人者償死. 少寇盜. 作矛長三丈, 或數人共持之, 能步戰. 樂浪檀弓註 146出其地. 其海出班魚皮,註 147
黃山曰, 班, 當作魵. 說文, 魵, 魚也. 出薉邪頭國. 爾雅釋魚, 魵, 鰕. 郭注, 出穢邪頭國. 薉·穢, 皆卽濊也. 土地饒文豹, 又出果下馬,註 148 漢 桓時獻之.
高句麗의 貊弓과 함께 중국에 잘 알려진 활의 일종이다. 東夷의 활들이 대개 그렇듯이 短弓일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短弓은 보통 활채의 길이가 80cm 內外이며 활채가 크게 휜 彎弓의 형태를 띠고 있다. 三國의 활은 유물과 벽화유적 등으로 보아 모두 彎弓이다. 『晋書』에는 肅愼도 檀弓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日本에는 檀木으로 만든 弓으로 인한 地名도 있었다. 檀木은 동북아시아 諸民族이 신성시한 나무이다. 그러나 檀弓이라는 명칭이 활에 사용된 재료 때문인지 혹은 宗敎的 의미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조>
『晋書』肅愼傳 註 32)
檀弓
肅愼이 사용한 활을 말하는데 그 크기가 4尺 가까이 되는 큰 활이었기 때문에 아주 强弓이었다. 張守節의 『史記正義』를 보면, ‘肅愼國記云 肅愼 其地在夫餘國東北河(可)六十日行 其弓四尺强勁弩 射四百步 今之靺鞈(鞨)國方有此矢’라 하여 그 활이 강하고 굳세어 4百步를 쏘는데, 靺鞨族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晋書』에서는 활의 길이가 3尺 5寸이라고 하였으나, 『三國志』挹婁傳에서는 ‘그 활의 길이는 4寸이고 힘세기가 弩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山海經』肅愼氏之國條에서도 보면 ‘其人皆工射 弓長四尺 勁彊 箭以楛爲之 長尺五寸’이라 하여 활의 길이가 4寸이고 힘이 세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檀弓은 큰 활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隋書』靺鞨傳과 『北史』勿吉傳에서 檀弓은 角弓 3尺으로 바뀌는데, 이는 肅愼·挹婁 시대에 사용하던 檀弓이 勿吉·靺鞨 시대에 角弓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參考文獻≫
『史記正議』
『三國志』卷30 「東夷傳」挹婁條.
『隋書』卷81 「東夷列傳」靺鞨條.
『北史』卷94 「列傳」勿吉國條.
『山海經』卷17 「大荒北經」肅愼氏之國條, 郭璞 注.
≪參考文獻≫
金基雄, 「三國時代의 武器小考-考古學資料를 中心으로-」『韓國學報』5, 1976.
日本에는 檀木으로 만든 弓으로 인한 地名도 있었다. 檀木은 동북아시아 諸民族이 신성시한 나무이다. 그러나 檀弓이라는 명칭이 활에 사용된 재료 때문인지 혹은 宗敎的 의미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조>
『晋書』肅愼傳 註 32)
檀弓
肅愼이 사용한 활을 말하는데 그 크기가 4尺 가까이 되는 큰 활이었기 때문에 아주 强弓이었다. 張守節의 『史記正義』를 보면, ‘肅愼國記云 肅愼 其地在夫餘國東北河(可)六十日行 其弓四尺强勁弩 射四百步 今之靺鞈(鞨)國方有此矢’라 하여 그 활이 강하고 굳세어 4百步를 쏘는데, 靺鞨族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晋書』에서는 활의 길이가 3尺 5寸이라고 하였으나, 『三國志』挹婁傳에서는 ‘그 활의 길이는 4寸이고 힘세기가 弩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山海經』肅愼氏之國條에서도 보면 ‘其人皆工射 弓長四尺 勁彊 箭以楛爲之 長尺五寸’이라 하여 활의 길이가 4寸이고 힘이 세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檀弓은 큰 활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隋書』靺鞨傳과 『北史』勿吉傳에서 檀弓은 角弓 3尺으로 바뀌는데, 이는 肅愼·挹婁 시대에 사용하던 檀弓이 勿吉·靺鞨 시대에 角弓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參考文獻≫
『史記正議』
『三國志』卷30 「東夷傳」挹婁條.
『隋書』卷81 「東夷列傳」靺鞨條.
『北史』卷94 「列傳」勿吉國條.
『山海經』卷17 「大荒北經」肅愼氏之國條, 郭璞 注.
≪參考文獻≫
金基雄, 「三國時代의 武器小考-考古學資料를 中心으로-」『韓國學報』5, 1976.
臣松之按: 果下馬高三尺, 乘之可于果樹下行, 故謂之果下. 見博物志·魏都賦.
惠棟曰, 博物志云, 海出斑魚皮, 陸出文豹. 管子揆度篇云, 發朝鮮之文皮. 又輕重甲篇云, 發朝鮮不朝, 請文皮𣮇服, 而以爲幤乎. 一豹之皮, 容金而金也, 然後八千里之發朝鮮, 可得而朝也. 爾雅太府云, 東北之美者, 有斥山之文皮焉. 郭璞云, 虎豹之屬, 皮有褥綵者, 是文皮, 卽文豹之皮也. 劉逵魏都賦注云, 漢廐, 舊有樂浪所獻果下馬, 高三尺, 以駕輦車. 明, 黃洪憲, 朝鮮國紀云, 產果下馬·長尾雞·貂豽·海豹皮. 姜西溟曰, 定張車·果下馬, 皆宮內所用.
註) 146
高句麗의 貊弓과 함께 중국에 잘 알려진 활의 일종이다. 東夷의 활들이 대개 그렇듯이 短弓일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短弓은 보통 활채의 길이가 80cm 內外이며 활채가 크게 휜 彎弓의 형태를 띠고 있다. 三國의 활은 유물과 벽화유적 등으로 보아 모두 彎弓이다. 『晋書』에는 肅愼도 檀弓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日本에는 檀木으로 만든 弓으로 인한 地名도 있었다. 檀木은 동북아시아 諸民族이 신성시한 나무이다. 그러나 檀弓이라는 명칭이 활에 사용된 재료 때문인지 혹은 宗敎的 의미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조>
『晋書』肅愼傳 註 32)
檀弓
肅愼이 사용한 활을 말하는데 그 크기가 4尺 가까이 되는 큰 활이었기 때문에 아주 强弓이었다. 張守節의 『史記正義』를 보면, ‘肅愼國記云 肅愼 其地在夫餘國東北河(可)六十日行 其弓四尺强勁弩 射四百步 今之靺鞈(鞨)國方有此矢’라 하여 그 활이 강하고 굳세어 4百步를 쏘는데, 靺鞨族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晋書』에서는 활의 길이가 3尺 5寸이라고 하였으나, 『三國志』挹婁傳에서는 ‘그 활의 길이는 4寸이고 힘세기가 弩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山海經』肅愼氏之國條에서도 보면 ‘其人皆工射 弓長四尺 勁彊 箭以楛爲之 長尺五寸’이라 하여 활의 길이가 4寸이고 힘이 세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檀弓은 큰 활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隋書』靺鞨傳과 『北史』勿吉傳에서 檀弓은 角弓 3尺으로 바뀌는데, 이는 肅愼·挹婁 시대에 사용하던 檀弓이 勿吉·靺鞨 시대에 角弓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參考文獻≫
『史記正議』
『三國志』卷30 「東夷傳」挹婁條.
『隋書』卷81 「東夷列傳」靺鞨條.
『北史』卷94 「列傳」勿吉國條.
『山海經』卷17 「大荒北經」肅愼氏之國條, 郭璞 注.
≪參考文獻≫
金基雄, 「三國時代의 武器小考-考古學資料를 中心으로-」『韓國學報』5, 1976.
日本에는 檀木으로 만든 弓으로 인한 地名도 있었다. 檀木은 동북아시아 諸民族이 신성시한 나무이다. 그러나 檀弓이라는 명칭이 활에 사용된 재료 때문인지 혹은 宗敎的 의미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조>
『晋書』肅愼傳 註 32)
檀弓
肅愼이 사용한 활을 말하는데 그 크기가 4尺 가까이 되는 큰 활이었기 때문에 아주 强弓이었다. 張守節의 『史記正義』를 보면, ‘肅愼國記云 肅愼 其地在夫餘國東北河(可)六十日行 其弓四尺强勁弩 射四百步 今之靺鞈(鞨)國方有此矢’라 하여 그 활이 강하고 굳세어 4百步를 쏘는데, 靺鞨族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晋書』에서는 활의 길이가 3尺 5寸이라고 하였으나, 『三國志』挹婁傳에서는 ‘그 활의 길이는 4寸이고 힘세기가 弩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山海經』肅愼氏之國條에서도 보면 ‘其人皆工射 弓長四尺 勁彊 箭以楛爲之 長尺五寸’이라 하여 활의 길이가 4寸이고 힘이 세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檀弓은 큰 활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隋書』靺鞨傳과 『北史』勿吉傳에서 檀弓은 角弓 3尺으로 바뀌는데, 이는 肅愼·挹婁 시대에 사용하던 檀弓이 勿吉·靺鞨 시대에 角弓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參考文獻≫
『史記正議』
『三國志』卷30 「東夷傳」挹婁條.
『隋書』卷81 「東夷列傳」靺鞨條.
『北史』卷94 「列傳」勿吉國條.
『山海經』卷17 「大荒北經」肅愼氏之國條, 郭璞 注.
≪參考文獻≫
金基雄, 「三國時代의 武器小考-考古學資料를 中心으로-」『韓國學報』5,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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