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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고 마심에 모두 俎豆를 사용하고,
○ 음식을 먹고 마심에 모두 俎豆를 사용하고, 會合을 할 때에는 술잔을 주고(拜爵) 술잔을 닦는(洗爵) 禮가 있으며, 出入시에는 [主客 사이에] 揖讓하는 禮가 있다.
殷曆 正月에 지내는 祭天行事는 國中大會로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迎鼓’라 하였다.註 041 이 때에는 刑獄을 중단하고 죄수를 풀어 주었다.
國內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外國에 나갈 때에는 비단옷·繡놓은 옷·모직옷을 즐겨 입고, 大人은 그 위에다 여우·삵괭이·원숭이·희거나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갓옷을 입으며, 또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하였다.註 042 통역인이 이야기를 전할 때에는 모두 꿇어 앉아서 손으로 땅을 짚고 가만가만 이야기한다.
註) 041
高句麗의 東盟, 東濊의 舞天과 같은 秋收感謝祭로 夫餘語의 漢字표기로 보는 경우가 있으나, 맞이궂(迎神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북(鼓)을 활과 화살처럼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신비력을 지녔다고 믿어 왔던 濊貊系사회의 풍속으로 미루어 보아, 夫餘의 迎鼓는 이를 반영한 宗敎的 祭儀였다고 생각된다.
한편, 迎鼓는 殷正月에 행해졌다고 하는데, 夫餘가 殷曆을 채용하였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殷曆이 丑月을 歲首로 하였으므로 12月에 祭天行事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보여진다. 夫餘가 高句麗나 東濊와는 달리 추수감사제를 12月에 행한 것은 아마도 수렵사회의 전통을 이어온 때문으로 생각된다.
≪參考文獻≫
金宅圭, 「迎鼓考-民俗文學硏究試圖의 一端-」『國語國文學硏究』2, 1958.
梁在淵, 「魏志東夷傳에 나타난 祭天意識과 歌舞」『魏志東夷傳의 諸問題』1979.
李亨求, 「文獻資料上으로 본 우리나라의 甲骨文化」『道原柳承國博士華甲紀念論文集: 東方思想論攷』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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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42
『魏書』高句麗傳에서는‘黃金出自夫餘 珂則涉羅所産’ 이라 하여 夫餘가 金의 産地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모자를 金·銀으로 장식했다는 것으로 보아 夫餘의 金·銀細工業이 매우 발전된 수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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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
  • 사회>의례>제사>천지신
  • 사회>사회조직>신분>복식(옷·관모·혁대·장식구·신발·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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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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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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