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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沃沮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의
○ [東沃沮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고]구려에 臣屬케 되었다. [고]구려는 그 [지역 인물] 중에서 大人을 두고 使者註 118로 삼아 [토착 渠帥와]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大加로 하여금 租稅를 통괄 수납케하여, 貊·布·魚·鹽·海草類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동옥저 사람)을 奴僕처럼 대우하였다.
註) 118
이 使者는 高句麗의 官階名이며, 高句麗 初期에는 大加 아래 소속되어 있었다.
高句麗는 때에 따라 정복지의 집단의 長이나 유력자를 使者로 임명하여 조세수취를 담당케 하는 간접지배양식을 택하기도 하였는데, 沃沮의 경우가 그 一例이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2)
使者
그 명칭에서 보듯 行政的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인으로서 뒷날 고구려 관계조직상에서 兄과 함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초기에는 族長家系보다 하위의 身分 出身으로 임명되었던 것 같다. 또한 高句麗 官階에서 兄이 族長的인 性格을 지녔던 것이라면 使者는 行政的인 官僚로서 成長한 存在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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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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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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