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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濊에는] 大君長이 없고 漢代 이래로
○ [濊에는] 大君長이 없고註 138 漢代 이래로 侯·邑君·三老註 139의 관직이 있어서 下戶를 통치하였다. 그 나라의 노인들은 예부터 스스로 일컫기를 ‘[高]句麗와 같은 종족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의 성질은 조심스럽고 진실하며 욕심이 적고 廉耻가 있어, 남에게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언어와 예절 및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지만 의복은 다르다. 남녀가 모두 曲領註 140을 입는데, 남자는 넓이가 여러 치 되는 銀花를 옷에 꿰매어 장식한다.
註) 138
東濊 地域의 제집단들을 통할하는 보다 큰 政治的 세력이 형성되어 있지 못함을 뜻한다. 各 邑落 별로 나뉘어져 자치적으로 生活하였음을 말해준다. 漢과 高句麗는 이들 읍락의 內部의 일은 자치에 맡기고, 그 渠帥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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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39
漢이 토착사회의 크기에 따라 그 지역의 우두머리에게 부여한 職名이다. 侯는 不耐濊와 같은 縣 크기의 집단의 郡長에게, 邑君·三老는 韓의 邑借·不例에 대응될만한 보다 소규모 공동체의 長에게 各各 준 칭호이다. 三老는 원래 戰國時代 以來 縣 아래의 조직인 鄕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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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40
혹은 圓領이라고도 하며 목둘레를 둥글게 한 옷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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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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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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