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가락과 율동은 [中國의] 鐸舞와 흡사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귀신을 믿기 때문에 國邑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서 天神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天君’173173 天君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參考文獻≫
李丙燾, 「三韓問題의 硏究」『韓國古代史硏究』1976.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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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부른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別邑이 있으니 그것을 ‘蘇塗’174174 蘇塗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參考文獻≫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哲埈, 「韓國古代政治의 性格과 中世政治思想의 成立過程」『東方學志』10, 1969; 「三國時代의 禮俗과 儒敎思想」『大東文化硏究』6·7, 1971(『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許回淑, 「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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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한다. [그곳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으로 도망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적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이 蘇塗를 세운 뜻은 浮屠와 같으나,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다르다.

註 173
天君 :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參考文獻≫
李丙燾, 「三韓問題의 硏究」『韓國古代史硏究』1976.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註 174
蘇塗 :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參考文獻≫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哲埈, 「韓國古代政治의 性格과 中世政治思想의 成立過程」『東方學志』10, 1969; 「三國時代의 禮俗과 儒敎思想」『大東文化硏究』6·7, 1971(『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許回淑, 「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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