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王의 姓은 金氏이고 貴人의 姓은 朴氏이며,409409 王姓金 貴人姓朴 奈勿王 이후의 王姓은 金氏였다. 비록 奈勿系(奈勿王~眞德女王)·武烈系(武烈王~宣德王)·元聖系(元聖王~孝恭王)로 系統은 다르지만 金氏만이 王이 되고 있다.
神德王(53대)·景明王(54대)·景哀王(55대)이 朴氏이긴 하나 王姓을 金氏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貴人姓이 朴氏라는 것은 中古代의 王妃姓을 뜻하는 것이다. 즉, 智證王妃(延帝夫人)가 朴氏인 이후 法興王妃(保刀夫人)·眞興王妃(思道夫人) 역시 朴氏였으니, 이는 聖骨의 한 조건으로 될 수 있었다.
이러한 朴氏王妃는 王族에 대한 非王族(貴族)을 대표하는 계층을 의미하며, 專制王權을 수립하려는 하나의 과도적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외에 朴氏는 거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다만 聖德王 13년의 入唐賀正使로 파견된 朴祐나 景哀王 4년의 入唐使인 朴術洪 등의 기록만이 있다.
神德王 등 羅末의 3명의 王이 朴氏라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즉, 金氏의 王統下에서 朴氏가 ‘國人推戴’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그 세력이 비대해졌다는 점을 뜻하며, 그러한 사실은 魏膺이 上大等으로 임명되는 데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羅末의 朴氏王을 中古代의 그것과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다만 朴氏가 貴族이었음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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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에게는 姓은 없고 이름만 있다. 食器는 버드나무로 만든 杯를 사용하는데, 구리나 질그릇을 쓰기도 한다. 정월 초하룻날은 서로 축하하며,410410 元日相慶 元日(正月 1日)에 相慶하는 기록이 국내문헌에는 없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眞德王 五年 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 賀正之禮始於此’라 하여 百官의 賀正之禮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高官의 관례에 불과한 것이다.
『册府元龜』「外臣部」에도 ‘每正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群官 其日 拜日月神’이라 하고 있으니, 元日相慶은 고위귀족층의 관례인 듯 싶다.
<참조>
『隋書』新羅傳 註 17)
每正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群官
『三國史記』「新羅本紀」에는 ‘眞德王五年 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 賀正之禮始於此’라 하여 新正賀禮를 처음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王이 宴會를 베풀었다면 群臣의 賀禮를 받았을 것이니 아마도 상당히 일찍부터 그러한 慣行이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眞德王 5년의 新正賀禮는 중국식의 법제로서 공식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5「新羅本紀」5 眞德女王 5年條.
『册府元龜』卷959「外臣部」土風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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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에는 日月神에게 절을 올린다.
남자는 褐袴를 입는다. 여자는 긴 襦를 입는데,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꿇어 앉아 손을 땅에 짚고 공손히 절한다.411411 見人必跪 則以手据地爲恭 이것은『三國志』高句麗傳의 ‘跪拜申一腳’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三國志』夫餘傳에서는 ‘譯人傳辭 皆跪 手據地竊語’라 하여 이를 美化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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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바르거나 눈썹을 그리지 않고, 모두 치렁치렁한 머리를 틀어 올려 구슬과 비단으로 꾸민다. 남자는 머리를 깎아 팔고 검은 모자를 쓴다.
市場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모두 婦女들이 한다. 겨울에는 집 안에 부엌을 만들고, 여름에는 음식물을 얼음 위에 둔다. 가축 가운데 羊은 없고, 나귀와 노새는 적으며, 말은 많다. 말의 몸집은 크지만 잘 달리지를 못한다.

註 409
王姓金 貴人姓朴 : 奈勿王 이후의 王姓은 金氏였다. 비록 奈勿系(奈勿王~眞德女王)·武烈系(武烈王~宣德王)·元聖系(元聖王~孝恭王)로 系統은 다르지만 金氏만이 王이 되고 있다.
神德王(53대)·景明王(54대)·景哀王(55대)이 朴氏이긴 하나 王姓을 金氏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貴人姓이 朴氏라는 것은 中古代의 王妃姓을 뜻하는 것이다. 즉, 智證王妃(延帝夫人)가 朴氏인 이후 法興王妃(保刀夫人)·眞興王妃(思道夫人) 역시 朴氏였으니, 이는 聖骨의 한 조건으로 될 수 있었다.
이러한 朴氏王妃는 王族에 대한 非王族(貴族)을 대표하는 계층을 의미하며, 專制王權을 수립하려는 하나의 과도적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외에 朴氏는 거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다만 聖德王 13년의 入唐賀正使로 파견된 朴祐나 景哀王 4년의 入唐使인 朴術洪 등의 기록만이 있다.
神德王 등 羅末의 3명의 王이 朴氏라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즉, 金氏의 王統下에서 朴氏가 ‘國人推戴’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그 세력이 비대해졌다는 점을 뜻하며, 그러한 사실은 魏膺이 上大等으로 임명되는 데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羅末의 朴氏王을 中古代의 그것과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다만 朴氏가 貴族이었음은 뚜렷하다.
註 410
元日相慶 : 元日(正月 1日)에 相慶하는 기록이 국내문헌에는 없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眞德王 五年 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 賀正之禮始於此’라 하여 百官의 賀正之禮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高官의 관례에 불과한 것이다.
『册府元龜』「外臣部」에도 ‘每正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群官 其日 拜日月神’이라 하고 있으니, 元日相慶은 고위귀족층의 관례인 듯 싶다.
<참조>
『隋書』新羅傳 註 17)
每正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群官
『三國史記』「新羅本紀」에는 ‘眞德王五年 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 賀正之禮始於此’라 하여 新正賀禮를 처음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王이 宴會를 베풀었다면 群臣의 賀禮를 받았을 것이니 아마도 상당히 일찍부터 그러한 慣行이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眞德王 5년의 新正賀禮는 중국식의 법제로서 공식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5「新羅本紀」5 眞德女王 5年條.
『册府元龜』卷959「外臣部」土風條.
註 411
見人必跪 則以手据地爲恭 : 이것은『三國志』高句麗傳의 ‘跪拜申一腳’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三國志』夫餘傳에서는 ‘譯人傳辭 皆跪 手據地竊語’라 하여 이를 美化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제분류
사회>사회조직>신분>복식(옷·관모·혁대·장식구·신발·가죽)
문화>풍속·놀이>풍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