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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 세자 대광현 등이 내투하다
일자
925년 12월 미상 (음)
○12월. 거란이 발해(渤海)를 멸망시켰다.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이었다. 당(唐)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에 고구려(高句麗) 사람인 대조영(大祚榮)이 요동(遼東)으로 달아나 점유하였다. 당 예종(睿宗)이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하니, 이로 인하여 스스로를 발해국(渤海國)이라 부르고, 부여(扶餘)·숙신(肅愼) 등 10여 나라를 병합하였다. 문자와 예악(禮樂), 관부(官府)의 제도가 있었으며, 5경(京) 15부(府) 62주(州)에 영토는 사방 5,000여 리(里)이며, 인구는 수십만이었다. 우리의 경계와 인접해 있었으며, 거란과는 대대로 원수지간이었다. 거란의 군주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한 채 멸망시키고, 동단국(東丹國)으로 바꾸었다. 그 세자(世子) 대광현(大光顯)과 장군(將軍) 신덕(申德)·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공부경(工部卿) 대복모(大福謩)·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검교 개국남(檢校 開國男) 박어(朴漁)·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 등 그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전후로 도망쳐 온 자들이 수만호(戶)였다. 왕이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여, 대광현에게 ‘왕계(王繼)’라는 성과 이름을 내려주면서 그를 왕실의 적(籍)에 붙이고, 〈자기 조상의〉 제사를 받들도록 허락하였다. 보좌하는 신료들에게도 모두 작위(爵位)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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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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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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