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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호경을 살리고 호경은 산신이 되다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이르기를, “이름이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불렀다. 백두산(白頭山)에서부터 두루 돌아다니다가 부소산(扶蘇山)의 왼쪽 골짜기에 이르러 장가를 들고 살림을 차렸는데 집은 부유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활을 잘 쏘아 사냥을 일삼았는데 하루는 같은 마을 사람 아홉 명과 평나산(平那山)에서 매를 잡았다. 마침 날이 저물어 바위굴에서 하룻밤을 묵으려 하는데 호랑이 한마리가 있어 굴 입구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열 사람이 서로에게 말하기를, ‘범이 우리 무리를 잡아먹으려 하니 시험 삼아 관(冠)을 던져 〈호랑이가〉 잡는 것의 임자가 맞서기로 하자.’라고 하고, 드디어 모두 던지자 호랑이가 호경의 관을 움켜잡았다. 호경이 나가 호랑이와 싸우려고 하였는데, 호랑이는 갑자기 보이지 않고 굴이 무너져 아홉 명은 모두 빠져 나오지 못하였다. 호경이 돌아가 평나군(平那郡)에 알리고, 되돌아와 아홉 명의 장사를 지내려고 먼저 산신에게 제를 올렸는데 그 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과부로서 이 산을 다스린다. 다행히 성골장군을 만나, 부부가 되어서 함께 신정(神政)을 다스리고자 하니 이 산의 대왕으로 봉하기를 청한다.’라고 하고, 말을 마치자 호경과 함께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평나군의 백성들은 그 때문에 호경을 봉하여 대왕으로 삼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으며, 아홉 사람이 함께 죽었다 하여 산 이름을 고쳐 구룡산(九龍山)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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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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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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