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해양현(海陽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무진주(武珍州)【노지(奴只)라고도 한다.】로, 신라(新羅)가 백제를 차지하고 도독(都督)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무주(武州)로 고쳤다. 진성왕(眞聖王) 6년(892)에 견훤(甄萱)이 습격하여 점거해서는 후백제(後百濟)라 칭하였으며, 얼마 후 도읍(都邑)을 전주(全州)로 옮겼다. 뒤에 후고려왕(後高麗王) 궁예(弓裔)가 태조(太祖)를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수군[舟師]을 인솔하여, 고을의 경계 지역을 공략하여 평정하게 했는데, 성주(城主) 지훤(池萱)은 견훤의 사위로서 굳게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다. 태조 23년(940)에 광주(光州)라고 불렀다. 성종(成宗) 14년(995)에 자사(刺史)로 강등하였다가, 뒤에 또 해양현령관(海陽縣令官)으로 강등하였다. 고종(高宗) 46년(1259)에 김인준(金仁俊)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지익주사(知翼州事)로 승격시켰다가, 뒤에 승격시켜 광주목(光州牧)이 되었다. 충선왕(忠宣王) 2년(1310)에 다시 강등시켜 화평부(化平府)가 되었다. 공민왕(恭愍王) 11년(1362)에 무진부(茂珍府)로 고쳤다가【혜종(惠宗)의 이름을 피하여 무(武)를 무(茂)로 고쳤다.】, 〈공민왕〉 22년(1373)에 다시 광주목이 되었다. 별호(別號)는 광산(光山)이며, 또 익양(翼陽)으로 부르기도 한다. 무등산(無等山)【무진악(武珍岳)이로도 하고,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하며 신라에서 소사(小祀)로 하였고, 고려(高麗)에서는 나라의 제사[國祭]를 지냈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