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열전 권제12
최린
최린(崔璘)은 재능과 도량이 크고 넓어, 어려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 구애받지 않고 호협(豪俠)한 이들과 어울려 노름판과 술판을 멋대로 노닐었다. 나이가 서른 즈음 되서야 비로소 분발하여 글을 읽기 시작하여 강종(康宗) 때에 과거에 급제하고 대간(臺諫)을 거쳤다. 고종(高宗) 때 나주부사(羅州副使)가 되어 나갔는데 당시 원율(原栗) 사람인 이연년(李延年)이 스스로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라 일컫고서 많은 사람들을 산림(山林)에 불러 모아 여러 주군(州郡)을 공격하여 노략질하니 최린이 지휘사(指揮使) 김경손(金慶孫)과 함께 그들을 격파하였다. 그 공으로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뛰어올랐으며, 여러 차례 승진하여 참지정사(叅知政事)가 되었다. 몽고(蒙古)가 대군(大軍)을 일으켜 침입하자, 재추(宰樞)들이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몽고로 보내 회군(回軍)을 빌게 하자고 간청하였다. 왕이 윤허하지 않자 최린이 홀로 왕의 앞으로 나가서 아뢰기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귀천(貴賤)이 없이 모두 똑같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식과 사별(死別)한 사람도 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 아들 하나를 아끼십니까? 지금 민(民)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열에 두셋뿐입니다. 몽고가 돌아가지 않으면 백성들은 〈봄에 논밭을 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추수하는〉 삼농(三農)의 때를 잃고 모두 적에게 투항하게 될 것이니 겨우 강화(江華) 하나 지키는 것으로 어떻게 나라를 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다.
재추들은 복야(僕射) 김보정(金寶鼎)에게 안경공을 모시고 가게 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최린에게 대신하게 하였다. 이보다 먼저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이 몽고에 인질로 가서 있었는데 안경공이 또 도착하니 황제가 영녕공의 친동생이 인질로 온 것으로 여기고 예(禮)로써 매우 후대하였다. 그런데 황려현(黃驪縣) 사람 민칭(閔偁)이 몽고 황제에게 참소하여 말하기를, “왕준은 왕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또 고려에서 이현(李峴)의 일족을 모두 죽였으며 〈몽고에〉 항복한 성(城)의 관리들도 모두 죽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왕준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난번에 왕자라 칭했는데 어째서이냐?”라고 하였다. 〈왕준이〉 대답하기를, “신은 어려서 궁중에서 자라나 왕을 아버지로 왕후를 어머니로 여겼기 때문에 친아들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사신인 최린이 바로 이전에 저를 인질로 보낸 사람이니 청컨대 그에게 물으소서.”라고 하였다. 황제가 최린에게 묻자 대답하여 아뢰기를, “왕준은 왕의 애자(愛子)이지 친자(親子)는 아닙니다. 전에 올린 표문(表文)을 조사하여 보면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몽고 황제가 이르기를, “애자와 친자는 다른 것인가?”라고 하니, 최린이 아뢰기를, “애자란 남의 아들을 길러서 자기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만약 직접 낳은 아들이라면 어찌 달리 ‘사랑하는’이라고 칭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황제가 전에 올렸던 표문을 조사하여 보니 모두 애자라고 씌어 있었으므로 드디어 다시 묻지 않았다.
〈최린은〉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일찍이 지공거(知貢擧)를 2번 맡아 인재를 얻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고종〉 43년(1256)에 죽으니 시호를 문경(文景)이라 하였다. 숨이 끊어질 때 처자(妻子)들이 울며 말하기를,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살란 말입니까?”라고 하자, 최린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오랑캐가 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뒷날 과연 몽고 군사들에게 모두 살해되었다.
디지털역사자료 인용방법
닫기
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오류신고
닫기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이트 하단의 ‘오류신고’ 메뉴를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자료명
고려사
자료위치
자료상세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