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
권용(權鏞)은 초명이 권일(權鎰)이다. 일찍이 합포만호(合浦萬戶)가 되었는데, 군리(軍吏)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아 금과 은을 사서 그릇을 주조한 뒤 함부로 전령을 맡은 기병[傳騎]을 동원하여 사사로이 재물을 운반하였다. 원호(元顥)가 합포만호를 대신하게 되어 권용이 했던 일을 모두 갖춰 식목도감(式目都監)에 보냈고, 경상도찰방(慶尙道察訪) 김한구(金漢丘)도 감찰사(監察司)에 문서를 보내고 거민(居民)도 또한 〈권용을〉 고소하였으나 감찰사는 〈권용의 잘못을〉 덮고서 〈죄를〉 묻지 않았다. 공민왕(恭愍王)이 사신으로 갔던 이들을 불러 백성의 고통을 널리 물어서 그 상황을 알고는 〈권용을〉 순위부(巡衛府)에 하옥하고 정환(鄭桓)에게 명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정환 또한 우물쭈물하며 죄를 다스리지 못하자, 왕이 노하여 석말도사(石抹都事)를 불러 이르기를, “권용의 족당(族黨)이 나라에 가득차서 사람들이 감히 그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데 너는 능히 다스릴 수 있겠느냐? 다스리지 못하겠다면 바로 아뢰라.”라고 하였다. 석말도사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한참을 있다가 아뢰기를, “권용은 욕심이 많고 더러운 사람이니 감히 끝까지 다스리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후에 〈권용이〉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자 운암사(雲岩寺)의 승려가 도당(都堂)에 말하기를, “공들은 임금님과 함께 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나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감옥을 책임지게 했는데 죄수가 달아난다면 누가 그 잘못을 책임져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권용이 말하기를,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니 자신의 본성을 살펴[見性] 깨달음을 이룬다[成道] 라고 하는데, 스님도 견성(見性)을 하였습니까?” 라고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견성을 했는지 못했는지는 하는 것은 말을 들으면 아는 것이므로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여러 재상들이 권용이 실언(失言)하였다고 하였다. 후에 아들 권진(權瑨)이 왕을 시해하자 〈권용은〉 먼 고을로 편배(編配)되었는데, 우왕[辛禑]이 사람을 보내 권용을 죽였다.